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누군가는 몰래 촬영하고, 누군가는 소비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온라인 공간으로 퍼지는 젠더 폭력. 우리는 이것을 ‘디지털 성범죄’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의 디지털 성범죄는 생각보다 자주, 많이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두려움. 무엇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디지털 성범죄가 사라지지 않는 현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편집자주]

이른 바 'n번방' 사건으로 인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강화돼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아동·청소년과 관련된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해외국가에 비해 우리나라의 처벌 수위는 현저히 낮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픽사베이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처벌’의 사전적 정의는 “나쁜 행실이나 불법행위에 벌칙 등을 가해 그러한 행동을 반복하게 될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또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법적인 의미로는 국가 권력에 의한 형벌권의 발동을 의미한다. 사전적 정의처럼 법적인 처벌은 범죄자가 그 행동을 다시 하지 않도록 억제하도록 해 범죄의 예방과 사회보전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법적인 처벌은 범죄의 경중에 따라 작게는 벌금에서부터 크게는 징역까지 매우 넓은 범위로 구성돼 있다. 작은 범죄는 반성 및 개선 가능성이 크고 사회에 대한 위협이 적다고 보기 때문에 비교적 낮은 수위의 처벌이 내려진다. 반면 살인과 같이 국민들에게 큰 위협을 주거나 대규모 금융사기처럼 사회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범죄의 경우 중범죄로 분류해 높은 수위의 처벌을 가한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가장 큰 ‘중범죄’로 인식되는 아동·청소년 성범죄의 경우 그 죄질에 비해 처벌 수위가 지나치게 낮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특히 이번에 전 국민에게 엄청난 분노와 충격을 안겨준 ‘텔레그램 성 착취방’ 사건이 수면 위로 터져 나오면서 아동·청소년과 관련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훨씬 크게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아동·청소년 음란물 제작자 유기징역 평균 2년… 그마저도 집행유예가 64.2%

실제로 우리나라는 디지털 성범죄 처벌 자체가 상당히 ‘느슨’한 상태다. 2018년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로 검거된 사람은 1만1,746명이다. 이 중 구속된 사람은 271명으로, 전체 통계의 2.3%에 불과했다.

특히 아동·청소년 대상 성 착취물 제작 및 소지자에 대한 처벌은 매우 빈약했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7년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추세와 동향분석 결과’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한 성범죄자의 최종심 유기징역 평균 형량은 징역 2년에 그쳤다. 이 중 징역형을 받은 경우는 6.4%에 그쳤으며, 집행유예가 무려 64.2%에 달했다. 

아울러 현행법상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소지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고 있다. 심지어 단순 시청자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

텔레그램 성 착취방 사건의 피의자들 역시 ‘솜방망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면서 전 국민의 분노가 더욱 더 커지고 있다. 법조계 역시 n번방 사건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 재발 방지를 위한 법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달 30일 최근 성명을 통해 국회에 디지털 성범죄의 근절을 위한 즉각적이고도 실질적인 법률안 개정 및 신설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뉴시스 

사회적 공분을 산 텔레그램 성 착취방 사건의 피의자들 역시 ‘솜방망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초대 운영자 ‘갓갓’의 뒤를 이어 n번방을 운영하던 ‘와치맨’ A씨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구형했다. A씨는 지난해 10월 이미 공중화장실에서 여성을 몰래 촬영한 영상 등을 게시한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한 혐의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처벌 수위가 너무 낮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법조계 역시 n번방 사건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 재발 방지를 위한 법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대한변협)는 최근 성명을 통해 국회에 디지털 성범죄의 근절을 위한 즉각적이고도 실질적인 법률안 개정 및 신설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대한변협은 “그동안 텔레그램 내 성착취 사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심각성을 알리며 입법청원을 했다”며 “그럼에도 국회는 최근에 통과한 ‘성폭력처벌법 개정 법률안’에서 ‘딥페이크’(인공지능을 이용해 영상의 얼굴을 조작하는 행위)를 제작·반포하는 행위만을 처벌 대상에 포함하는 데 그쳤다”고 밝혔다.

이어 “26만명에 이르는 성 착취방 참가자들 중 상당수는 텔레그램과 같은 기능을 하는 또 다른 플랫폼을 찾아 이동하고 있다”며 “현행 법령과 시스템으로는 제2, 제3의 ‘박사’, ‘갓갓’, ‘와치맨’의 출현을 막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 해외, 아동 음란물 최대 종신형… 대법 양형위도 새로운 양형기준 마련 나서

반면 미국 등 해외에서는 아동·청소년과 관련된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훨씬 엄중한 처벌을 내리고 있다. 

이는 지난해 10월 아동 성 착취 영상을 게재한 다크웹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사건을 통해 비교가 가능하다. 웰컴 투 비디오의 운영자로 잡힌 한국인 B씨의 경우 한국 법원에서 1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이용자들의 형량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쳤다. 

반면 미국에서는 아동·청소년 대상 음란물을 제작했을 시 초범이라 하더라도 15년 이상 30년 이하의 징역이 선고된다. 재범은 25년 이상 50년 이하이며 누범의 경우 35년 이상에서 최대 종신형까지 징역형이 선고된다. 영국의 경우 아동을 성폭행하는 영상을 제작해 공개한 혐의로 22년형이 선고된 사례도 있다. 우리나라에 비해 매우 엄격한 기준이다.

아동 음란물 소지자 처벌도 우리나라보다 엄중한 판결이 나왔다. 미국에서 웰컴 투 비디오 사이트에서 영상을 한 번 다운받은 사람의 경우 징역 5년 10개월과 보호관찰 10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1,000여건을 다운받은 사람이 징역 4개월, 70여건을 받은 사람이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0일 전체회의를 열고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범죄(청소년성보호법 제11조)의 양형기준을 논의했다. 양형위는 “이러한 형량이 국민 법 감정과 동떨어져 있었으며 법조계 안팎에서도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기에 이번에 새로운 양형 기준 마련에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뉴시스

이에 따라 우리나라 대법원도 칼을 빼들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0일 전체회의를 열고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범죄(청소년성보호법 제11조)의 양형기준을 논의했다. 이를 통해 범죄의 형량 범위와 감경·가중 양형인자, 집행유예 기준 등을 정했다. 양형기준이란 법관이 형량을 정할 때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을 말한다. 주요 범죄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 차이를 줄이기 위한 것이다. 

이날 논의 대상이 되는 청소년성보호법 제11조는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제작·수입 또는 수출한 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리 목적 판매의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배포는 7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

양형위에 따르면 지난 2014년 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청소년성보호법 11조 위반으로 처벌받은 50건 중 44건(88%)이 집행유예를 받았다. 6건(12%)만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양형위는 “이러한 형량이 국민 법 감정과 동떨어져 있었으며 법조계 안팎에서도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기에 이번에 새로운 양형 기준 마련에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특히 디지털 성범죄가 온라인 공간을 활용한다는 특성상 범행 방법이 매우 다양한 점, 피해가 빠르게 확산해 회복이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할 계획이다. 

양형위의 101차 회의의 구체적 결정 내용은 오는 22일께 발표되며 양형기준안이 의결될 경우 국회 등 관계기관의 의견 조회를 마친 후 공청회를 열어 확정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새로운 양형 기준 마련이나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안 강화 등의 조치가 텔레그램 성 착취방 사건과 같은 아동·청소년 음란물 범죄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안 강화는 일단 해당 범죄를 감소시키는데 효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그것과 함께 경찰의 수사기법 등의 발전도 동반돼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n번방 사건처럼 온라인 상의 비밀방에서 진행되는 활동은 발각되기가 힘들어 이곳에 경찰이 잠입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해 준다거나 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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