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훈이 영화 ‘사냥의 시간’(감독 윤성현)으로 돌아왔다. /넷플릭스
이제훈이 영화 ‘사냥의 시간’(감독 윤성현)으로 돌아왔다. /넷플릭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이제훈에게 영화 ‘사냥의 시간’(감독 윤성현)은 그야말로 치열한 도전이었다. 매 순간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았고, 도망가고 싶었다.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회피하지 않았다. 힘들수록 더 부딪히고, 더 치열하게 연기했다. 그렇게 이제훈은 또 성장했다.

2007년 개봉한 영화 ‘밤은 그들만의 시간’(감독 조은경)으로 데뷔한 이제훈은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오다, 2011년 윤성현 감독의 영화 ‘파수꾼’을 통해 충무로가 주목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극 중 기태 역을 맡아 흡입력 있는 연기로 인물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제32회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을 비롯해 그해 신인상 6관왕을 휩쓸었다.

이후 영화 ‘고지전’(2011) ‘건축학개론’(2012), ‘파파로티’(2013),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2016), ‘박열’(2017), ‘아이 캔 스피크’(2017) 등과 드라마 ‘시그널’(2016), ‘여우각시별’(2018) 등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24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사냥의 시간’ 속 이제훈의 활약도 호평을 얻고 있다. ‘사냥의 시간’은 새로운 인생을 위해 위험한 작전을 계획한 네 친구들과 이를 뒤쫓는 정체불명의 추격자, 이들의 숨 막히는 사냥의 시간을 담아낸 추격 스릴러다.

윤성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이제훈뿐 아니라 안재홍‧최우식‧박정민‧박해수 등 충무로 대세 배우들이 활약했다. 지난 2월 한국 영화 최초로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 섹션에 공식 초청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파수꾼’ 이후 9년 만에 윤성현 감독과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추게 된 이제훈은 ‘사냥의 시간’에서 새로운 인생을 위해 위험한 계획을 설계하는 준석으로 분했다. 목표를 위해 거침없이 나아가고, 의리와 패기로 친구들을 이끄는 인물이다. 이제훈은 방황하는 청춘의 얼굴부터 극한의 상황에서 느끼는 폭발적인 감정 연기까지 완벽 소화하며 다채로운 매력으로 극을 이끈다.

이제훈이 ‘사냥의 시간’을 향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넷플릭스
이제훈이 ‘사냥의 시간’을 향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넷플릭스

최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화상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시사위크>와 만난 이제훈은 치열했던 ‘사냥의 시간’을 떠올리며 “다시는 못하겠다”고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작품을 향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드디어 공개가 됐다. 반응은 살펴봤나.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있는 그대로의 상황과 그 상황을 타개해가는 치기어린 젊은이들의 모습, 킬러에게 쫓기는 공포만 생각했다.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 내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받아들일 때 나는 도망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 마주하고 싸울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본 분들이 의미를 찾아내고 해석하며 의견을 내주는 부분이 기분이 좋았다. 같이 공감하고 느껴줘 기뻤다.

또 넷플릭스를 통해 190여 개국에 동시에 공개되지 않았나. 영화든 드라마든 국내 반응만 듣게 되는데, 이번에는 해외에서도 반응들이 쏟아져 나오니까 (반응들을) 보면서 즐기고 있다. 특히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는 해외 팬들이 많더라. 심리적인 압박감과 공포를 느끼면서 봤다는 평을 보면서 감독이 그리고자 하는 의도를 잘 파악한 것 같아 나도 놀라웠다. 영화를 보는 시각이 다양한데, 전 세계인의 이야기를 듣게 되니 신기하다.”

-극장 상영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앞으로도 상영 시스템에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가능하다면 개인이 갖고 있는 가장 큰 화면과 어두운 환경에서 큰 소리로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회가 된다면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극장에서 보여주고, GV나 이벤트를 하는 것도 기대한다. 넷플릭스가 하나의 플랫폼으로서 영화계에 주는 장점들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한다. 영화인들이 만들고자 하는 방향을 존중하고 끝까지 믿고 맡겨준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인 것 같다. 또 동시에 전 세계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사냥의 시간’도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반응을 보여주고 있는데, 한국영화가 이렇게 동시에 전 세계에 공개될 수 있다는 게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플랫폼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물론 넷플릭스가 1등이겠지만.(웃음)”

-윤성현 감독은 ‘사냥의 시간’을 두고 ‘헬조선에서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본인은 ‘사냥의 시간’을 어떤 영화로 정의하고 싶나. 
“정의한다기보다 인생을 살면서 어떤 선택을 하는 순간이 오지 않나. 그 선택들에 있어서 결과가 주어질 거다. 그 결과에 나는 순응할 것인지,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인지 혹은 회피하고 도망갈 것인지 앞으로 다음 스텝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만약 나에게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배우라는 것을 포기할 수 있겠냐고 물어본다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답하기) 어려운 것 같다. 결과에 맞서 싸우거나, 준석이처럼 돌아가서 대응할 수도 있겠지. 혹은 그 이상의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다 받아들이고 다시 도약할 시기를 기다리는 과정을 보낼 수도 있다. 그런 생각들을 ‘사냥의 시간’을 통해 하게 됐다. (윤성현) 감독의 의도인진 모르겠지만, 내가 연기를 하고 체험하고 영화를 보면서 느낀 소감은 그렇다.”

‘사냥의 시간’에서 불안한 청춘 준석을 연기한 이제훈 스틸컷. /넷플릭스
‘사냥의 시간’에서 불안한 청춘 준석을 연기한 이제훈 스틸컷. /넷플릭스

-윤성현 감독이 ‘사냥의 시간’을 내놓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파수꾼’ 이후 9년 만인데, 오랜 시간을 기다리며 함께할 만큼 이 작품에 끌린 이유가 무엇인가.
“단순히 친해서 이 작품을 택하기보다, ‘파수꾼’을 하면서 이 사람(윤성현 감독)의 영화를 대하는 태도와 자세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파수꾼’ 때 열악한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모든 것을 갈아 넣어 만들었었다. 그 순간이 있었기에 이후 작품들을 하는 데 있어서 엄청난 뿌리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나에겐 배우 인생에 있어 큰 뿌리를 내려준 사람이었기 때문에, 무엇이 됐든 함께 하면 너무 좋을 것 같았고 배우로서도 분명히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겨졌다. 

사실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 준석을 연기하는데 굉장히 힘들기도 했다. CG도 많았고, 사운드에도 굉장히 공을 들였다. 후반 작업을 하며 윤성현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세계관을 채우는 데 있어서 많은 것을 투영하고 시도하다 보니 과정이 길어졌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 영화에 대한 집념이 어마어마한 사람이구나, 내가 이런 사람과 함께 작업을 선택한 것이 역시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한국영화에 이런 영화가 있었나 생각해보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사냥의 시간’을 통해 보여줄 수 있어서 (윤성현 감독이)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고,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윤성현 감독이 ‘파수꾼’ 때보다 10배 더 힘들었다고 했는데, 본인은 어땠나.
“10배 힘들었다고 했나? 나는 그럼 곱하기2 하겠다. 20배 힘들었던 것 같다. ‘파수꾼’에서 기태라는 인물을 연기할 때 스스로 판단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내가 느끼고 표현하는 게 맞는지 판단을 하는 역량이 부족했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이 내게 디렉션을 주고 잘 만져준 부분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부분들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쫓기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을 연기하는 데 있어서 경험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상상력을 극대화할 수밖에 없었다. 매 장면 내가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지 계산이나 계획을 따로 하지 않았다. 나도 내가 그렇게 표현할 줄 몰랐다. 모든 과정이 체험하고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그런 것들이 켜켜이 쌓여 준석이라는 인물이 그려졌다.”

이제훈이 전 세계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넷플릭스
이제훈이 전 세계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넷플릭스

-아이디어도 많이 주고받았을 것 같다. 준석 캐릭터 혹은 작품 전반에 본인의 아이디어 더해진 부분이 있다면.
“일단 의상적인 부분이다. 밑바닥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거칠면서도 편안하고 자유로운 의상을 택했다. 하와이를 연상시키는 야자수 나무 타투를 하기도 했다. 또 시나리오에는 없는데, 우리끼리 만들어갔던 장면들이 꽤 많았다. 우리끼리 즐기면서 얘기하고 편안하게 나오는 부분들이 영화에 잘 녹여져 있더라. 그렇다보니 특별히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인물들의 관계성이 확 느껴지지 않았나 싶다.”

-또래 배우들과의 작업은 어땠나.
“‘왜 이렇게 안 하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렇게 젊은 에너지와 시너지로 똘똘 뭉쳐서 보여줄 수 있는 작품들이 앞으로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동년배 배우들이 많은데,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꿈꾸고 열심히 찾을 거고, 같이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한번 통하면 현장에 오는 게 행복하다. 일을 하러 간다는 생각이 안 든다. 정말 좋은 순간이었다.”

-공포에 질린 연기가 인상 깊었다. 단순히 감정이입으로 만들어진 장면 같지 않았는데, 어떤 감정과 생각을 갖고 연기했나.
“일차원적으로 학창시절 때 불량한 사람들한테 돈 뺏기고, 집 어디냐고 물어보면 쫄고 그랬던 경험들을 떠올렸다.(웃음) 또 한편으론 내가 지금 당장 죽을 수 있고, 낭떠러지에 서있다고 상상했다. 한 발만 내디디면 바로 굴러떨어진다. 물에 빠졌을 때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내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없는 상상을 매번 했고, 감정을 극한으로 내몰았다. 이게 맞나 솔직히 판단도 안 됐는데,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래서 나도 아 이렇게도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구나 경험한 영화였다. 진짜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촬영 기간에도 그만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었다. 그럼에도 더 하고 더 했다. 사이클처럼 반복되는 순간들이었다.”

-총기 액션이 많았는데, 촬영은 어땠나.
“공교롭게도 촬영 당시 예비군 훈련을 받았다. 2박 3일 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5일을 출퇴근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그전 해에 못가서 열 번 정도 예비군 훈련장에 가야 했다. 갈 때마다 실제 총알 다섯 발을 넣고 쏘는데, 그걸 열흘 정도 한 거다. 그래서 더 무섭더라. 내가 지금 쏘고 있는 총으로 누군가를 쏘기도 하고, 나를 방어하기도 하지 않나. 실제로 현실에서 존재한다면 미친 세상이 되겠다는 우려와 걱정이 되더라. 총이 주는 무서움과 공포를 리얼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프로페셔널한 모습으로 인한 통쾌함보다, 치기어린 아이들이 총을 다루는 모습을 통해 역으로 무서움을 보여주고자 했다”

-준석은 지옥에서 벗어나 하와이로 떠나고 싶어 한다. 이제훈에게 유토피아가 있다면, 어떤 곳이고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싶나.
“극장 하나 차리는 게 꿈이다. 그곳에서 넷플릭스를 봐도 너무 좋을 것 같고, 또 필름으로 상영하는 로망도 있다. 필름으로 틀어주는 독립영화들을 보며 꿈을 키운 ‘씨네 키드’다. 뉴욕에 가면 독립영화관들이 많은데 필름으로 영상을 틀어주는 곳이 굉장히 많다. 50~60년 전에 만든 필름을 그대로 상영한다. ‘사냥의 시간’ 크랭크업하자마자 바로 뉴욕에 갔다. 그때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힐링을 많이 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처럼 50년도 더 된 작품을 필름으로 상영해 주니 환상적이더라. 언젠가 내가 극장 차릴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그러고 싶다. 하루 종일 어떤 배우가 나오는 작품들만 보여주거나, 한 감독의 작품만 보여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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