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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공유’가 답이다
[공간, ‘공유’가 답이다 ⑧] 후암주방, 3평 공간에 담긴 ‘진정한 가치’
2020. 04. 29 by 서종규 기자 seojk1136@sisaweek.com

4차산업혁명시대의 핵심 가치 중 하나인 ‘공유경제’는 이미 우리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인 ‘공간’의 개념과 가치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할 대목이다.

공간은 전통적으로 ‘한정적인 자원’을 대표해왔으며, 소유개념에 기반한 한계가 뚜렷했다. 모두가 필요로 하나, 모두가 소유할 수는 없었던 것이 공간이었다. 또한 누군가에 의해 소유됨으로써 공간의 활용과 가치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살인적인 집값과 각종 주거문제도 결국은 한정된 공간을 소유하는데서 비롯된 문제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공간이 지닌 한계를 깨트리는데 있어 공유경제가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누군가가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그 가치 또한 무궁무진해지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력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뿌리내리고 있는 공유경제 모델들을 통해, 다가올 미래 우리의 공간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 수 있는 해법을 찾아본다.

서울 후암동에 위치한 후암주방은 배달 플랫폼이 아닌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공유주방이다./사진=서종규 기자
서울 후암동에 위치한 후암주방은 배달업체와 소상공인이 아닌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공유주방이다./사진=서종규 기자

시사위크=서종규 기자  ‘먹방’ ‘쿡방’ 등 음식 관련 콘텐츠들의 등장이 줄을 잇고 있다. 개인 크리에이터들이 자신만의 공간에서 직접 조리한 음식과 배달음식 등을 먹으며 구독자와 소통하는 방식의 콘텐츠다.

1인가구의 증가와 이른바 ‘혼밥족’ ‘혼술족’이 늘며 이 같은 콘텐츠는 더욱 인기를 끌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개인만의 공간이 없을 경우 크리에이터들은 콘텐츠 생산이 불가능 할 것이고, 혼밥족들은 조리가 불가능해 배달음식에만 의존해야 할 것이다. 고시원, 원룸, 셰어하우스 등에 거주하는 청년들 또한 개인만의 조리 공간을 확보할 수 없는 경우가 다수다.

실제 이 같은 1인가구는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1인가구 수는 2010년 414만2,000가구에서 2018년 578만8,000가구로 늘었다. 2018년 기준 전체 가구 수 대비 1인가구 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29.2%에 달한다.

다만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18년 ‘주택이외거처’에 거주하는 가구 수는 92만 가구에 달한다. 2010년 35만4,000가구 대비 159% 급증한 수치다.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주택의 요건에는 ‘한 개 이상의 방과 부엌’이 포함돼 있다. 주택이외거처에는 상업용 오피스텔, 숙박업소의 객실, 기숙사 등 주방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주거형태 등이 포함된다. 

이에 개인의 조리공간을 보유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공유주방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배달업체와 소상공인들의 부담을 덜고자하는 공유주방과는 달리 주방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주거형태에 거주하는 등 조리공간 확보가 어려운 개인을 대상으로 주방을 공유하는 곳이다.

후암주방은 건축 전문가들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공유주방이다./사진=서종규 기자
후암주방은 건축 전문가들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공유주방이다./ 사진=서종규 기자

◇ 건축가들의 아이디어… 후암주방의 탄생

예를 들어 주방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거처에 거주하는 남자가 연인에게 고백을 하려 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남자는 직접 만든 음식으로 연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겠지만, 조리 공간, 식사 공간 등의 확보가 어려울 것이다. 주거환경이 녹록지 못한 많은 청년들이 한번쯤 고민해봤을 법한 문제다.

후암주방은 개인 조리공간에 대한 고민을 가진 이들에게 주방이라는 공간을 공유하는 공유주방이다. 특히 후암주방은 도시건축 전문가들이 모여 설립한 ‘도시공감협동조합건축사무소’가 설립, 운영하는 공유주방으로, 2016년 지역민들의 공유공간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 후암’의 첫 번째 공유공간이다.

사실 후암주방을 운영하는 도시공감협동조합건축사무소는 공유경제의 가치만을 좇는 곳은 아니다. 일반적인 건축사무소와 마찬가지로 통상적인 업무로 수익을 올리는 조직이다. 하지만 도시공감협동조합건축사무소의 건축 전문가들은 마을을 공유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아이디어를 지니고 있었고, 이 같은 아이디어를 후암동에 실현한 것이다.

도시공감협동조합건축사무소 관계자는 “공유경제를 표방하기 보다는 건축 전문가들이 지니고 있던 아이디어를 공간적으로 풀기 위한 방안으로 공유공간의 운영을 선택했다”며 “주거환경이 마땅치 못한 개인이 집에서 하기 어려운 것들을 공유공간에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라고 설명했다.

도시공감협동조합건축사무소는 후암주방은 3평 남짓의 작은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의 경험은 결코 작지 않다고 말한다./사진=서종규  기자
도시공감협동조합건축사무소는 후암주방은 3평 남짓의 작은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나오는 가치는 결코 작지 않다고 말한다./사진=서종규 기자

◇ ‘수익성’보다는… ‘공유’ 자체의 가치 추구

무엇보다 후암주방은 수익성을 떠나 공간의 ‘공유’ 그 자체가 이뤄지는 곳이다. 도시공감협동조합건축사무소가 프로젝트 후암의 일환으로 후암주방을 열 당시에도 마을 내 공유공간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뒀다는 설명이다.

배달업체들이 입점하는 공유주방과 다른 개인 공유주방을 선택한 것 또한 이 같은 이유다. 월세 등으로 수익을 올리는 기업형 공유주방과 달리 서울 내 본인의 자가를 갖추지 못한 개인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조리공간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도시공감협동조합건축사무소는 회사 측에 공유주방 협업을 제안하는 경우도 다수 있다고 전했다. 그럴 때마다 사무소는 개인 공유주방 사업에 대한 노하우를 제공해 줄 뿐,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권장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도시공감협동조합건축소 관계자는 “사실 회사 차원에서 수익성을 보고 후암주방 등 공유공간 조성에 나선 것은 아니다”라며 “공유라는 특별한 가치를 실현시킬 수는 있지만, 개인 공유주방은 사업적으로 매력적인 아이템은 아닌 점에 권장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후암주방에서는 이전 손님이 남기고 간 재료를 다음 손님이 사용하는 공유도 이뤄진다./사진=서종규 기자
후암주방에서는 이전 손님이 남기고 간 재료를 다음 손님이 사용하는 공유도 이뤄진다./사진=서종규 기자

후암주방에서는 공간의 공유 외에도 다른 공유들도 이뤄진다. 후암주방은 주방, 싱크대 등 기본적인 조리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칼, 도마 등 조리도구를 비롯해 소금, 후추 등 간단한 조미료 등을 제공한다. 특히 공유주방을 이용했던 손님이 놓고 간 재료들을 다음 손님이 이용하는 등의 공유도 이뤄진다. 실제 방문 전 주방 내 남은 요리재료를 확인하는 손님들도 다수라는 설명이다.

도시공감협동조합건축사무소는 프로젝트 후암의 일환으로 후암주방을 비롯해 서재와 휴식공간 등을 공유하는 후암서재, 후암거실, 후암가록, 후암별채 등의 공유공간을 조성해 운영 중이다. 주방 외 공유공간 또한 수익을 내기 위한 사업은 아니다. 도시공감협동조합건축사무소의 공간을 보는 철학이 담긴 사업이다.

도시공감협동조합건축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큰 돈이 되지 않아도 우리의 생각과 철학을 지속하기 위한 버팀목으로 프로젝트 후암이 불리길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