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못 쓰게 되어 내다 버릴 물건이나, 내다 버린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명시된 ‘쓰레기’의 정의다. 하지만 우리가 ‘쓰레기’로 낙인찍어 내다 버리는 것들 중에는 ‘쓸모가 여전한’ 것들이 적지 않다. 실제 그렇게 버려진 쓰레기는 새로운 자원이 되거나 에너지로 재탄생해 새 생명을 얻기도 한다. 지구를 병들게 하는 원흉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지구를 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쓰레기의 역설’인 셈이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변화를 만들기 위해 실천하는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환경오염원 감소를 위한 해법과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2001년 당시 프리스턴대학교 학생이던 톰 재키에 의해 설립된 테라사이클은 세계 21개국에 진출한 글로벌 환경 스타트업체다. 지난 2017년 9월 출범한 한국지사는 아모레퍼시픽, 빙그레, 락앤락 등 국내외 유수 기업과 함께 친환경 캠페인 사업을 진행했다. / 테라사이클
2001년 당시 프리스턴대학교 학생이던 톰 재키에 의해 설립된 테라사이클은 세계 21개국에 진출한 글로벌 환경 스타트업이다. 지난 2017년 9월 출범한 한국지사는 아모레퍼시픽, 빙그레, 락앤락 등 국내외 유수 기업과 함께 친환경 캠페인 사업을 진행했다. / 테라사이클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업종을 막론하고 친환경이 대세로 자리 잡은 요즘, 부쩍 눈에 띄는 이름이 있다. 미국 뉴저지에 본사를 둔 글로벌 환경 스타트업인 ‘테라사이클’. 올해로 법인 설립 4년차에 접어든 테라사이클 한국지사(TerraCycle Korea)는 선(先) 진출국을 뛰어넘는 성과를 거두며 ‘막내의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곧 한국이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에코 비즈니스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 ‘업사이클’로 폐기물 없는 세상 꿈꾸는 글로벌 스타트업 

테라사이클 한국지사는 회사의 성격에 걸맞게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업사이클링 문화 시설인 서울새활용플라자에 둥지를 마련했다. 이 건물 2층 한 켠에 마련된 30여평 남짓한 공간이 테라사이클 한국지사에 소속돼 있는 직원 6명의 일터다. 한강 건너 잠실 롯데타워가 한 눈에 들어오는 가시거리를 자랑하는 테라사이클 사무실은 ‘스타트업’답게 자유로우면서도 실험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약속된 시간에 맞춰 사무실을 찾은 기자를 환대해 준 이지훈 팀장은 지난 2017년 4월 테라사이클에 합류해 현재 지사를 총괄하고 있다.

21개 국가에 진출해 있는 어엿한 글로벌 기업에서 한 지사를 책임지고 있는 이 팀장이 사회의 첫 발을 환경업에서 디딘 건 아니다. 금융 컨설팅 회사에서 보험회사와 은행을 상대하던 그의 운명을 바꾼 건 다름 아닌 봉사활동이다. 한 봉사단체에서 진행한 길거리 청소는 그에게 어떠한 문제의식을 불러 일으켰다. 이 팀장은 “2주일에 한 번 씩 혜화동에서 길거리 청소를 했는데 하루 만에 담배꽁초가 20ℓ 쓰레기봉투로 10봉지가 나오더라. 환경 개선의 필요성이 절실히 느껴서 관련 업종으로 이직을 알아보던 와중에 테라사이클 공고가 떴다”고 회고했다.

테라사이클 한국지사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했다. 순수 NGO가 아닌 영리기업인 만큼 기업의 숙명인 이윤을 창출해야 영속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테라사이클 한국지사에 대한 미국 뉴저지 본사의 총애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선배격인 캐나다와 브라질 지사의 매출이 한국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팀장은 “본사에서 지사 설립 6~7년이 넘은 국가보다 한국팀을 높게 평가하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비교적 작은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환경을 바꿔보자는 남다른 의지를 가지고 일해 준 팀원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지난 27일 테라사이클 한국지사가 위치한 서울 성동구 서울새활용플라자에서 기자와 만난 이지훈 팀장이 자사가 진행한 업사이클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금융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하던 이 팀장은 봉사활동을 계기로 환경업에 발을 디디게 됐다. / 사진=범찬희 기자
지난 27일 테라사이클 한국지사가 위치한 서울 성동구 서울새활용플라자에서 기자와 만난 이지훈 팀장이 자사가 진행한 업사이클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금융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하던 이 팀장은 봉사활동을 계기로 환경업에 발을 디디게 됐다. / 사진=범찬희 기자

◇ ‘남다른 기획력’ 테라사이클 문 두드린 기업들

테라사이클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재활용 캠페인 컨설팅’ 회사다. 예를 들어 구강용품 전문 업체에서 ‘칫솔을 줄넘기로 업사이클 해 학생들에게 기부하고 싶다’는 의뢰가 들어오면 해당 플랫폼을 구축해 주고 그에 대한 비용을 받는다. 칫솔을 줄넘기로 업사이클 해 줄 공장까지 직접 섭외한다. 칫솔모 때문에 재활용이 어려운 칫솔을 전혀 다른 성질인 줄넘기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테라사이클이 단순 재활용(리사이클)에 머물지 않고 디자인과 활용도를 업그레이드(업사이클)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이유다.

실제 미국에선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브랜드 충성심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Lays’나 ‘Kraft’ 과자 봉투로 만든 필통을 구매해 사용하고 있다. 업사이클이 기업과 환경이 ‘윈-윈’할 수 있는 대안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년여 간 P&G, 이마트, 록시땅, 아모레퍼시픽, 락앤락, 빙그레, 로레알 등 국내외 유수 기업들이 테라사이클을 찾은 것도 이런 배경들과 맞닿아 있다.

기업체 사이에서 ‘입소문’이 날 수 있었던 건 테라사이클만의 획기적인 기획력 덕분이다. 지난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빙그레와 함께 바나나맛 우유 공병을 재활용해 만든 ‘분바스틱’(분리배출이 쉬워지는 바나나맛우유 스틱)으로 크라우드 펀딩을 실시해 일주일 만에 2,100만원을 모았다. 목표치(3,000만원)가 달성되면 수익금 전액은 환경보호 단체에 기부된다.

이 팀장은 특히 아모레퍼시픽에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아모레퍼시픽은 한국이 테라사이클의 21번째 지사가 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지난 2016년 10월 아모레퍼시픽이 컴팩트 공병 캠페인을 진행하기 위해 미국 본사에 컨설팅 의뢰를 한 게 지사 설립의 시발점이다.

이 팀장은 “아모레퍼시픽은 국내에 컨택 포인트가 없는 상황에서 미국에 직접 의뢰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줬다. 그 덕에 한국에서 첫 직원 채용이 이뤄졌고 1년 뒤 정식 법인으로 출범할 수 있었다”면서 “이미 그린사이클 캠페인 등 높은 수준의 재활용 서플라이 체인을 도입했음에도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기 위해 테라사이클을 찾아준 것에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 “분리수거 꼼꼼히 하는 한국, 환경 의식 높아”

테라사이클의 대표적인 업사이클 제품들. 빙그레와 협업해 만든 '분바스틱'은 예상을 뛰어넘는 화재를 모으며 크라운드 펀딩 모집 일주일 만에 목표치에 근접한 성과를 거뒀다. 또 오랄비의 칫솔을 수거해 화분이나 줄넘기로 업사이클하고 록시땅의 화장품 공병을 슬림형 텀블러로 제작했다. / 사진=범찬희 기자
테라사이클의 대표적인 업사이클 제품들. 빙그레와 협업해 만든 '분바스틱'은 예상을 뛰어넘는 화재를 모으며 크라운드 펀딩 모집 일주일 만에 목표치에 근접한 성과를 거뒀다. 또 오랄비의 칫솔을 수거해 화분이나 줄넘기로 업사이클하고 록시땅의 화장품 공병을 슬림형 텀블러로 제작했다. / 사진=범찬희 기자

테라사이클 한국지사는 회사 비전인 ‘폐기물 없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새 비즈니스 모델 도입에 주력하고 있다. 담배꽁초를 활용한 업사이클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테라사이클 일본지사는 현지 담배기업 JTI와 협업해 꽁초의 필터 속 플라스틱(셀룰롤스 아세테이트)을 휴대용 재떨이로 제작해 편의점 고객에게 증정하는 행사를 가졌다.

꽁초 업사이클 사업을 위해서는 꽁초를 분리해 세척할 수 있는 관련 설비가 마련돼야 한다. 여러 국내 담배기업과도 소통했지만 아직 투자 의사를 비친 곳은 없다. 또 현재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에서만 운영 중인 제로웨이스트 온라인 유통 채널인 ‘루프’(LOOP)를 론칭하는 것도 중장기적 과제다.

이 팀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환경에 대한 경각심이 다소 느슨해지고 있는 것 같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그는 “코로나19로 일회용품 사용이 권장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카페에서 고객이 요청하면 테이크아웃이 아니어도 일회용컵 사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 글로벌 유가 하락으로 신제 플라스틱 생산 단가가 재생 플라스틱 단가 보다 떨어지는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라며 “기업 입장에서 재생원료를 사용할 이유가 사라지고 있는 셈”이라고 걱정했다.

그럼에도 한국의 친환경 산업의 미래를 밝게 전망했다. 이 팀장은 “감히 평가하건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환경 의식은 높은 편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서양권 국가들을 보면 분리수거 사후처리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기 때문인지 재활용 쓰레기를 ‘Recyclables’라는 하나의 통에 모아서 버린다”면서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들은 재질별로 분리해 버리고 있지 않은가. ‘1차 선별’이 사회의 상식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환경에 대한 인식이 깔려 있는 덕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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