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에게 흙을 밟으며 놀 시간과 꽃친구를 선물해줬습니다. 키즈카페를 갔을 때보다 더 즐거워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딸아이에게 흙을 밟으며 놀 시간과 꽃친구를 선물해줬습니다. 키즈카페를 갔을 때보다 더 즐거워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춘래불사춘. 씁쓸하지만, 요즘 우리 세상에 딱 맞는 말입니다. 수그러드는 듯했던 코로나19 사태가 최근 이태원 클럽 등 유흥가를 중심으로 다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는데요.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 중 하나인 육아가정에겐 없는 힘까지 빼앗아 가는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 하나쯤이야’하는 생각이 누군가에겐 하루라도 빨리 멈추고 싶은 고통의 시간을 연장시키는 일이 됩니다. 부디 조금만 더 참고, 배려하고, 조심하며 모두 다 함께 코로나19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길 바랍니다.

코로나19의 시대, 우리 사회는 정말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덩달아 예전엔 미처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죠.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자유로운 야외활동입니다. 평범했던 일상 속 산책, 그리고 주말 나들이가 이제는 무척 조심스러워졌죠.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왜 하필이면 이때 코로나19 사태가 들이닥쳤는지 더욱 야속하기만 합니다. 두 돌이 성큼 다가온 딸아이는 요즘 한창 뛰어놀기 시작할 때인데요. 겨울이 가고 봄이 다가옴과 동시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맘껏 뛰어노는 것이 어렵게 됐습니다. 간간이 공원이나 놀이터에서 놀기는 합니다만, 답답한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키즈카페의 최신식 장난감 못지않게 나무와 꽃, 개미도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키즈카페의 최신식 장난감 못지않게 나무와 꽃, 개미도 좋아합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딸아이가 화창한 봄은 물론 한창 뛰어놀 시기를 만끽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씁쓸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풍족하고 윤택한 생활과 놀이를 누리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자연과 참 멀어져있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더군요.

요즘 대형 쇼핑몰에 가보면, 아이들 놀이시설이 정말 화려합니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나 책, 영상콘텐츠의 수준도 과거와는 비교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달해있습니다.

‘라떼는 말이야’입니다만, 제가 어린 시절만 해도 만화는 TV를 통해 정해진 시간 맞춰서 보거나, 비디오를 빌려야 볼 수 있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보고 싶은 영상을 즐길 수 있죠. 놀이시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어렸을 땐 놀이터와 동네 골목길 정도가 전부였는데요, 요즘은 키즈카페와 각종 실내 체육·놀이시설이 대세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누리는 이러한 것들이 반드시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이들이 자연에서 뛰노는 시간이 부쩍 줄어든 것은 분명 사실이고, 저는 이것이 아이들의 신체·정서 발달에 긍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키즈카페를 뒤덮고 있는 푹신한 매트가 아닌 돌과 나무의 촉감을 느껴보고, 영상 속 캐릭터가 아닌 꽃과 개미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 역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하지 않을까요.

물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숲 체험’ 프로그램과 심지어 ‘숲 유치원’ 등도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생기고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은, 거꾸로 아이들이 평소에 자연과 멀어져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씁쓸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끝에, 저부터 무언가 실행에 옮겨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평소였다면 키즈카페나 놀이터로 향했을 아이와의 발걸음을 자연으로 옮겨봤습니다. 마침 저희 집 근처엔 차로 약 10여분 떨어진 곳에 산과 이어지는 꽤나 큰 공원이 하나 있었는데요, 거기엔 아이들이 나무 사이를 뛰놀며 자연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도 조성돼있었습니다.

딸아이의 반응은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습니다. 나무뿌리에도 올라서보고, 쭈그려 앉아 기어가는 개미도 살펴보고, 나뭇가지로 흙바닥을 긁적이며 한참을 재밌게 놀더군요. 키즈카페에 갔을 때보다 훨씬 더 즐거워보였습니다.

나름의 노력을 들여 만든 옥상꽃밭에 딸아이는 기대 이상으로 좋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나름의 노력을 들여 만든 옥상꽃밭에 딸아이는 기대 이상으로 좋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내친김에 한걸음 더 나아가보기로 했습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저희가 사는 빌라 옥상엔 자그마한 텃밭 공간이 마련돼 있었는데요.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 방치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텃밭 공간 일부를 활용해 딸아이에게 작은 꽃밭을 만들어주기로 했죠.

이번에도 딸아이의 반응은 저에게 보람을 안겨줬습니다. 한창 말이 늘어날 시기에 ‘꽃친구’라며 신이 나서 자그마한 물조리개로 연신 꽃에 물을 주더군요. 장난감 모종삽으로 흙을 뒤적거리며 놀기도 하고요.

딸아이에게 자연이란 ‘절친’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은 얼마 전 또 하나의 경험을 통해 더욱 확신하게 됐는데요. 그 경험은 비슷한 또래의 두 아이를 키우는 친구네와 함께 한 시골집 나들이였습니다. 주위가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있고, 그 흔한 편의점도 몇 km를 가야 나오는 그런 곳이었죠.

한적한 시골마을을 산책하며 수백 마리의 개미가 바삐 움직이는 개미집도 보고, 맑은 개울에 발을 담근 채 다슬기를 손에 얹어보기도 했습니다. 저녁 땐 어마어마한 개구리 소리를 울음소리를 듣고, 실제 개구리를 보기도 했죠. 딸아이에겐 모두 태어나 처음 하는 경험이었습니다.

반응은 역시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퍽이나 인상 깊었는지 집으로 돌아와 며칠이 지나서도 계속해서 개미와 개구리를 이야기하더군요.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은 있습니다만, 앞으로도 저는 크고 작은 노력을 계속 기울여보려 합니다.

그리고 제 이야기에 공감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우선 할 수 있는 것부터 실행에 옮겨보시길 강력 추천 드립니다. 거창한 삼림욕장이나 숲체험장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이들이 흙을 밟고, 나무를 만지고, 개미를 살펴볼 공간이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베란다나 옥상 등을 활용해 꽃과 채소를 심어보는 일 역시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들어가는 비용이나 노력에 비해 아이들에게 주는 즐거움과 영감은 키즈카페 그 이상일 겁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