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시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시스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더불어민주당과 진보 진영 일부 인사들이 ‘윤미향 사태’를 촉발시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뜻을 왜곡‧폄하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어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윤미향 사태’는 야당이나 언론이 아닌 이용수 할머니가 “수요집회에서 받은 성금이 할머니들한테 쓰이지 않고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겠다”며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회계 문제 등을 짚으며 수요시위 불참을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정의연의 회계 부정 문제와 이곳 이사장을 지낸 윤미향 민주당 당선인의 기부금 유용 의혹 등이 꼬리를 물고 제기됐다.

그럼에도 여당을 이끌고 있는 이해찬 대표는 최근 제기되는 각종 의혹을 ‘신상털기’나 ‘사사로운 일을 과장한 것’으로 치부하며 윤 당선자를 옹호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최근에 빚어지고 있는 일련의 현상을 보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들이 매우 많다”며 “이런 식으로는 성숙한 민주사회로 발전할 수가 없다”면서 사실상 윤 당선인을 둘러싼 합리적 의혹 제기도 ‘비상식’으로 규정했다.

윤 당선인이 8년 전인 2012년 제19대 총선 출마를 선언한 이용수 할머니를 강하게 만류한 사실이 알려지자 우상호 의원은 이 할머니의 분노는 자신의 국회의원 출마를 막아선 윤 당선인이 정작 본인이 국회에 진출해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논리의 주장을 펼쳤다.

우 의원은 지난 27일 민주당 당선인 워크숍에서 기자들과 만나 “할머니의 분노는 ‘내가 정치를 하고 싶었는데 나를 못 하게 하고 네가 하느냐, 이 배신자야’로 요약할 수 있다”며 “(윤 당선인이) 할머니의 분노를 유발한 것이 동기”라고 주장했다. 이어 “다른 할머니들은 윤 당선인이 국회의원이 되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좋다고 하는데, 이분은 특이하게 배신을 프레임으로 잡았다”며 “윤 당선인이 관두기 전에는 해결이 안 된다. 다른 분들은 정치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이용수 할머니에 호응하지 않는 것”이라며 윤 당선인을 옹호했다.

최민희 전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윤 당선인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에 대한 할머니의 거부감이 솔직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밝혔고, 이 할머니가 ‘모금 뒤 배가 고파서 윤 당선인에게 밥을 사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 말에 대해서는 “(밥 값에) 기부금을 쓰면 안 된다”며 윤 당선인을 적극 옹호했다.

방송인 김어준씨는 이용수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 이후 가자평화인권당 최용상 대표를 배후로 지목하며 “누군가가 자신의 입장을 반영한 왜곡된 정보를 이 할머니에게 줬다고 개인적으로 결론을 내렸다”며 배후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이용수 할머니는 지난 2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배후설에 대해 “전부 내가 혼자 한 것이며 나는 치매도 아니고 바보도 아니다”라고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이 할머니의 문제 제기를 윤 당선인의 국회 진출을 시기해 나온 것으로 치부한 점과 배후설 등은 정의연의 회계 부정 문제, 윤 당선인의 기부금 착복 의혹 등 본질을 호도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여권 일각의 이 같은 대응은 ‘조국 사태’ 대응 방식과 흡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국 정국’에서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비판하는 세력을 '검찰 개혁' 반대 세력으로 몰아세우며 공격을 가했고, 무조건적으로 조 전 장관을 옹호하기에 급급했다. ‘윤미향 사태’에서는 의혹 제기 목소리를 “친일 세력의 최후 공세”로 규정하며 ‘친일 프레임’으로 방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해 여권 내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표창원 의원은 지난 22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대해 “나는 박근혜 정부 당시 조그만 의혹이 있어도 강하게 이를 비판했기 때문에 비리 의혹을 받는 정부 인사를 옹호하는 상황이 힘들었다”며 “어떤 상황에도 조국 전 장관을 지지하고, 논리와 말빨로 지켜주는 도구가 된 느낌이 드니 ‘내 역할은 여기까지’란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역시 지난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인적 쇄신론에 불을 당겼던 이철희 의원도 지난 26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정의연 문제도 그렇고, 한명숙 전 총리 재조사 이야기도 그렇고 가진 권력에 맞는 행보는 아니다”며 “정의연 문제도 여당에 아픈 대목이다. 윤미향 당선인을 공천한 민주당 잘못이 크다. 그런 단체 활동은 정치화시키면 안 된다. 민주당이 결자해지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여권이 합리적 문제 제기도 정치 공세로 몰아세우거나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규정하며 억지 논리를 펼치면서까지 논란 당사자를 옹호하기에 급급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철저히 진영 논리가 정치권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29일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대한민국의 상식과 양심, 정의마저도 진영 논리의 볼모가 된 지 오래다”며 “민주당은 지금 그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치권은 기본적으로 진영 논리로 움직인다”며 “이용수 할머니가 민주당을 공격하면 적의 편이 되는 것이고, 미래통합당 입장에선 민주당의 비판을 받는 사람은 자신들의 편이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는 지난 27일 YTN에 출연해 우상호 의원의 언급에 대해 “할머니를 두 번, 세 번, 네 번 죽이는 것이다. 이런 식의 접근방법은 정말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고 부당한 것”이라며 “그동안 말만 하면 도덕 찾고 정의 찾고 윤리 찾았던 사람들이 궁지에 몰리면 어떤 한 사람을 프레임을 가지고 몰고 들어가려고 한다는 건 그게 바로 적폐고 반드시 청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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