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범찬희 기자  불교에서 자주 언급되는 사자성어 가운데 ‘비승비속’(非僧非俗)이라는 말이 있다. 승려도 속인도 아닌 사람을 일컫는 말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함을 지적할 때 자주 쓰인다. ‘어중간’이라는 명사에서 미루어 알 수 있듯, 인용되는 사례를 보니 주로 긍정보단 부정에 가까운 뉘앙스다.

혹독한 이데올로기 분쟁을 겪은 탓일까. 굳이 종교 용어를 끌어내지 않아도 ‘중간’을 불허하는 표현을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니편내편’ ‘피아식별’ ‘회색분자’ 등이 그렇다. 이들 단어는 중간지대를 허용하지 않고 양자택일 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또 “어중간하면 손해”라는 말은 당사자로 하여금 능동적인 대처에 나설 것을 노골적으로 주문하고 있다.

기업에서도 ‘어중간’은 결코 미덕이 아닌 것 같다. 흔히 기업 규모를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팽배한 탓에 국가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중견기업이 소외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미증유의 팬데믹 사태로 기로에 선 중견 면세업체들이 정부의 무관심 속에 점점 벼랑 끝으로 밀려나고 있다.

정부의 면세업 지원 정책을 보고 있노라면 중견업체들은 ‘아웃 오브 안중’이다. 초점이 중소기업과 대기업, 단 두 곳에만 맞춰져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당초 임대료 감면 대상을 중소기업에만 한정하려다 형평성 지적이 제기되자 뒤늦게 지원 대상으로 확대키로 했다. 이후에도 정부의 중견기업 홀대는 계속됐다. 지난 15일 임대료 추가 인하 방안 등을 논의하는 자리에 소위 면세 ‘빅3’(롯데‧신라‧신세계)만이 초대됐다. SM, 엔타스 등 중견 면세사업자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이들 중견 면세업체들은 중소기업 못지않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SM면세점은 임대료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인천공항 T1 입점을 포기했다. 또 코로나19를 이겨내지 못하고 지난달을 끝으로 5년간 운영해 온 시내면세점의 문을 닫았다. 영업점이 반토막이 나면서 염원인 흑자 달성은 언감생심이 됐다. 엔타스듀티프리도 지난 3년간 영업손실을 이어오고 있다.

면세업은 대기업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할 만큼 빈익빈 부익부가 극심한 업종이다. 건설업처럼 중견이라는 타이틀만 보고 ‘갑’에 가깝다고 오해해선 안 된다. 입국장 면세점 입점의 기회를 중견 업체들에게 부여했던 문재인 정부의 따뜻한 보살핌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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