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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TV] “정자도 늙는다”… 황정음의 사이다 발언, 사실일까
2020. 07. 09 by 이민지 기자 sisaweek@daum.net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던 KBS2TV '그놈이 그놈이다' 맞선장면 / KBS2TV '그놈이 그놈이다' 방송화면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던 KBS2TV '그놈이 그놈이다' 맞선장면 / KBS2TV '그놈이 그놈이다' 방송화면

시사위크=이민지 기자  올해 나이 34세, 비혼주의 현주(황정음 분)는 엄마(황영희 분)의 거부할 수 없는 제안으로 맞선 자리에 나선다. 아니다 다를까, 맞선남이 애써 돌려서 말하는 워너비 신부 조건을 듣고 있자니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이에 현주가 “저도 그래요. 남자가 조신하게 살림하면서 아이 잘 키우고 내 부모에게 잘하면 되지. 돈 버는 게 무슨 유세라고. 요구하는 거 많은 남자들은 딱 질색이예요”라며 반박에 나서자 맞선은 막장으로 치닫는다.

맞선남은 “주제 파악이 그렇게 안 되시나. 오늘 결혼하고 내일 아이 낳아도 노산인데, 하루하루 늙어가는 난자 걱정도 하셔야죠. 남자들은 늙은 여자 딱 질색입니다”라고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고, 현주는 “난자만 늙고 정자는 안 늙나봐요. 제 난자가 34살이면. 그쪽 정자는 43살인데 괜찮겠어요?”라고 저격해 통쾌함을 날린다. 7일 방영된 KBS2TV 새 월화드라마 ‘그놈이 그놈이다’의 한 장면이다.

여성의 난자가 나이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40대 중후반에 이르면 여성들은 난소의 노화로 인해 배란 및 호르몬 분비가 저하되면서 ‘폐경’과 함께 ‘갱년기’를 경험한다. 반면 남성의 정자가 나이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이에 “난자만 늙고 정자는 안 늙나봐요” 황정음의 사이다 대사에 대한 시청자들의 궁금증이 쇄도하고 있는 상황. 과연 황정음의 말처럼 정자도 나이듦에 영향을 받을까.

◇ 어홍선 원장 “정자도 나이를 먹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자도 ‘나이가 든다’. ‘건강한’ 정자는 일반적으로 △정자의 농도 △정자 활동성 △정자의 형태(기형정자) 등의 기준으로 판단한다. 세계보건기구(WHO/2010)에서는 정자검사 정상의 기준을 △정액양 1.5mL 이상 △정자 수 1,500만/ mL 이상 △정자 운동성(활동성) 40% 이상 △정상형태 정자 4% 이상으로 두고 있다. 즉, 운동성 강한 정자를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가 ‘건강한 정자’의 관건인 것.

물론 여성처럼 ‘폐경’을 맞진 않지만, 남성의 정자도 나이의 영향을 무시할 순 없다. 9일 어비뇨기과 어홍선 원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나이를 먹으면 남성들의 정자 운동성이 떨어지게 된다”며 “다만 남성들의 경우 나이가 들어도 정자가 나올 수 있기(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임신 가능성이 존재한다. 정자 1마리만 나와도 임신 가능성이 존재한다. 80대, 90대 남성들이 임신을 시켰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수록 정자의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어홍선 원장은 “원래 인체 세포는 20대부터 노화가 시작된다. 생활주기를 보면 40~50대부터 정자의 운동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또한 40대부터 남성의 발기력이 떨어지게 된다”며 “여성에게 갱년기가 있듯, 남성도 갱년기가 있다. 여성의 경우 생리가 끊겨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남성은 일상생활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보니 알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남성의 경우 발기력이 떨어지게 되고, △우울증 △키가 작아짐 △집중력 저하 등을 경험하게 된다. 혈액검사를 통한 남성 호르몬 수치 확인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여성의 난자가 나이에 영향을 받듯, 정자도 나이의 영향을 받을까
여성의 난자가 나이에 영향을 받듯, 정자도 나이의 영향을 받을까

◇ 난임·불임의 원인 절반은 ‘남성’

극중 맞선남의 “오늘 결혼하고 내일 아이 낳아도 노산인데, 하루하루 늙어가는 난자 걱정도 하셔야죠”라는 대사는 난임·불임에 대해 바라보는 사회적 관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시대가 변해도 난임·불임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여성에게 묻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난임·불임에 대한 책임이 여성에게만 있다는 선입견은 완벽한 오류다.

전문가들은 난임·불임 책임의 ‘절반’은 남성에게 있다고 말한다. 세계보건기구는 “난임의 책임 50%는 남성에게 있다”고 꼬집어 말했으며, 올해 1월 대한남성난임대책개발위원회 소속 서태주 비뇨의학과 대표원장은 ‘저출산 시대의 남성 난임, 어떻게 극복하나’ 토론회에서 “난임 부부 중 33%는 남성에게, 20%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원인이 있다”며 “난임의 약 50%가 남성적 요인에게 기인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난임 진단을 받은 남성은 2014년 4만8,992명에서 2018년 6만7,270명으로, 5년 사이에 1만8,278명 증가했다. 반면 여성 난임은 2014년 16만1,731명으로 최고치를 달성한 이후 2018년 13만5,268명으로 감소했다. 남성의 경우 ‘성기능 불구’라는 사회적 낙인에 대한 불안감이 큰 만큼 숨어있는 난임 환자가 더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더욱이 늦게 결혼하는 ‘만혼’이 일반화되는 추세는 난임의 확률을 높인다. 이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해당된다. 앞서 말했듯 나이가 들수록 정자의 활동성과 개체 수가 적어지고, 이는 곧 난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전 세계적으로 ‘만혼’ 추세가 이어짐에 따라 정자와 난임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며, ‘정자 냉동보관’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럿거스대 의대, 바이오메디컬대학원 공동연구팀은 “35세 이후에 결혼하는 만혼 남성의 경우 만혼 여성보다 태어날 미래의 아이는 물론 배우자의 건강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결혼이 늦을 것 같고 나중에 아이를 원한다면 35세 이전 정자를 냉동 보관해 놓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만혼’ 외에도 불규칙한 식습관, 환경 호르몬, 스트레스 증가 등의 원인으로 전반적인 정자 건강이 과거에 비해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난임을 한 쪽의 결함이 아닌 ‘부부의 문제’로 바라보고 개선함이 필요해 보인다. 현주와 맞선남의 대사 이면에 숨겨져 있는 메시지도 어쩌면 난임을 바라보는 사회적 선입견의 해소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