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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항공산업
[위기의 항공산업 ④] ‘항공·방위산업 르네상스’ 골든타임 놓칠라
2020. 07. 09 by 정소현 기자 coda0314@sisaweek.com

경남도가 국산 소방헬기를 도입한다. 2015년 제주도에 이어 두 번째다. 가뜩이나 어려운 시기에 들려온 낭보라는 점에서 업계의 반가움이 크다. 하지만 두 번째 소방헬기 납품 계약을 맺기까지 무려 5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점은 곱씹어봐야 할 문제다. 국산헬기에 대한 정부 기관의 홀대가 예사롭지 않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시장에서의 안정적인 운용실적은 해외수출로도 직결된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구조라면 최첨단 고부가가치 사업이자 일자리창출 효과가 큰 항공산업의 미래는 장담하기 어렵다. 정부가 자국 전략산업 육성 차원에서 국산헬기 구매 및 보급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편집자주>

수리온은 250여개 협력업체가 제작에 참여한다. 1대를 수주할 경우 이들 업체의 일감 및 일자리가 창출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사진은 엔지니어들이 국산 헬기 ‘수리온’을 조립하고 있는 모습. / KAI
수리온은 250여개 협력업체가 제작에 참여한다. 1대를 수주할 경우 이들 업체의 일감 및 일자리가 창출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사진은 엔지니어들이 국산 헬기 ‘수리온’을 조립하고 있는 모습. / KAI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항공업계 전문가들은 국산헬기 운용확대를 위한 정부 차원의 제도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소방공무원이 지난 4월부터 국가직으로 전환됐다는 점은 다행스런 일이다. 이와 연계하여 소방헬기 운용효율화 관련 개선방안들이 마련되고 있어서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소방사무와 재정은 여전히 지자체에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 소방장비 중앙 일괄구매 전환… 소방헬기 구입은 여전히 지자체 주도

소방청은 지난해 말부터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에 맞춰 대형 재난 발생 시 대응 체계를 광역 단위에서 국가 단위로 전환하는 내용의 ‘국민 소방안전 강화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소방헬기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개선방안이 포함돼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소방청 발표에 따르면 전국 17개 항공대에서 운영하는 29대 소방헬기는 앞으로 국가에서 통합관리한다. 시·도별로 운영된 소방헬기를 국가가 통합 관리하면서 지휘체계를 일원화한다.

각 시·도가 개별 구매하던 소방·항공장비나 수리 부속 등도 중앙 일괄구매로 전환한다. 정부 주도의 소방장비 중앙(통합) 구매지원단을 설치해 규격을 표준화하고, 일괄 구매를 통한 가격과 성능 등 경쟁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장비의 품질개선을 위해 소방장비 국가인증제를 도입하며, 한국형 소방장비 개발·보급에도 힘쓰기로 했다. 이와 함께 각 시·도별 분산 운영되고 있는 소방헬기의 전국통합보험을 추진한다.

이 외에도 소방청과 지방소방본부는 소방헬기 다기종 운영에 따른 정비와 교육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방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 같은 움직임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다만 추진중인 방안들은 국내 항공업계에서 지적했던 ‘소방헬기 국산 우선구매’나 ‘중앙 일괄구매’등 국산 항공기 보급을 위한 방안과는 사실 거리가 멀다. ‘소방헬기 통합관리’ 방침은 지휘체계를 일원화해 대형재난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데 목적이 있고, ‘장비 중앙 일괄구매’도 부품에 국한된 사안으로, 소방헬기 다기종에 따른 예산절감 차원이다.

무엇보다 소방사무와 재정은 여전히 지자체에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에서 소방헬기와 같은 관용 항공기 구매는 기존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운영주체는 중앙부처인 소방청으로 통합되지만, 소방헬기 등 장비의 소유권은 시·도 본부에 있다.

최첨단 산업기술에 고부가가치사업인 항공우주산업은 높은 산업 파급 및 고용창출 효과가 있는 미래 핵심 먹거리 산업이다. 그러나 항공산업은 2016년 생산 51억불, 수출 25억불로 정점에 달한 후 정체 상태다. / 자료=KAI
최첨단 산업기술에 고부가가치사업인 항공우주산업은 높은 산업 파급 및 고용창출 효과가 있는 미래 핵심 먹거리 산업이다. 그러나 항공산업은 2016년 생산 51억불, 수출 25억불로 정점에 달한 후 정체 상태다. / 자료=KAI

◇ 법령 및 행정규칙 제·개정 통한 제도개선 절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정부가 관용 항공기 구매 조달시, 국산을 우선구매 하도록 법령 및 행정규칙 제·개정을 통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강해지고 있다.

함대영 금오공과대학교 교수는 지난해 10월 ‘서울 ADEX 행사’ 세미나에서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를 위한 구매의 경우에 국산헬기는 정부조달협정 적용대상에서 제외됐다”며 ‘공공기관에 대한 국산품 우선구매제도 법제화’를 통한 국내 운용 확대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 중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이 자국제품 우선 조달 정책을 통해 산업발전을 견인하고 있는 만큼 국내도 △자국제품 우선구매제도 관련 법규 구체화 △강제력 명시 △이행 및 관리 감독 등이 긴요하다는 설명이다.

항공전문가들은 정부조달·구매 계약과 관련된 법령(국가계약법 등)과 조세와 관련된 법령(조세특례제한법, 부가가치세법 등)을 국산품 우선 구매·조달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국산 소방헬기의 구매 확대를 위해서는 행정안전부령 제117호(소방청과 그 소속기관 직제시행 규칙)에 ‘지자체 소방헬기 구매업무 대행’ 조항을 추가하면 된다.

행정안전부령인 ‘소방안전교부세 교부기준’도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소방헬기 구매는 내국인 담배 개별소비세의 20%로 재원을 마련한다. 하지만 정작 외국산 헬기를 대부분 구매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내국인이 낸 세금을 외국 헬기 제작사가 가져가는 꼴이 된다. 때문에 지자체별 소방헬기 도입시 활용되는 소방안전교부세를 국산헬기 도입 검토 기관에 우선적으로 배부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 정부 정책융합 통해 항공우주산업 부흥 이끌어야

최첨단 산업기술에 고부가가치사업인 항공우주산업은 높은 산업파급·고용창출 효과가 있는 미래 핵심 먹거리 산업이다. 수리온 제작에는 250여개 이상의 협력업체가 참여한다. 1대를 수주할 경우 이들 업체의 일감 및 일자리가 창출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KAI 등 주요 항공 제조업체가 제품을 수주하면 나머지 부품 협력사들이 일을 나눠서 맡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자주국방과 4차 산업혁명에 선제 대응하는 차원에서 정부가 항공우주분야 정책을 확대하고 국산상품 우선 구매, 수출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항공우주산업은 현 정부가 적극 추진중인 ‘제조업 르네상스’의 비전과 가장 근접해 있다. 사진은 지난해 6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스마트제조혁신센터에서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과 4대 추진전략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항공우주산업은 현 정부가 적극 추진중인 ‘제조업 르네상스’의 비전과 가장 근접해 있다. 사진은 지난해 6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스마트제조혁신센터에서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과 4대 추진전략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그러나 항공산업은 2016년 생산 51억불, 수출 25억불로 정점에 달한 후 정체 상태다. 최근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항공업계 전체가 위기에 내몰리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항공제조업체들은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처지다. 중소항공업체들의 붕괴는 한국형전투기 개발 등 방위산업을 포함한 국내 항공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KAI가 직접 나서 헬기를 판매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것도 제조업체들의 위기와 무관치 않다. KAI는 코로나19 여파로 해외 방위산업전시회가 지연 및 취소되자 구매국 주요 인사를 초청하는 방식으로 항공기 마케팅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직접 국산 헬기의 안전성과 우수성을 알려 수출 활로를 넓히겠다는 취지다. 최근엔 국산헬기인 참수리 경찰헬기의 우수한 성능을 확인하는 체험행사를 진행했는데, 이날 참석한 각국 외교 관계자들은 수리온에 기반한 경찰헬기 ‘참수리’의 성능에 높은 평가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일부 지자체와 기업의 상생 노력만으로는 총체적 위기상황을 극복하기엔 역부족으로 평가된다. 항공업계 한 전문가는 “첨단산업의 집약체인 항공우주산업은 기업체의 고군분투만으로는 성장과 발전을 이룰 수 없다”며 “제조업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한국이 제조업 경쟁력을 상실한다면 이는 심각한 국가경제 위기로 이어진다. 코로나19로 한국 국격이 높아진 이때가 ‘제조업 르네상스’를 일으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정부가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하듯 손 놓고 있으면 안되는 이유다. 항공우주산업 발전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충남을 비롯해 소방헬기 도입을 계획하고 있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국내 관용헬기의 40%가 20년 이상된 노후 기종으로, 향후 15년간 100대가 넘는 소요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산헬기 확대의 적기인 셈이다.

안현호 KAI 사장은 지난해 말 이해찬 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이 경남 사천 KAI 본사를 방문했을 당시 “항공우주산업은 선진국 진입과 자주국방을 위해서는 반드시 발전시켜야 할 산업”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당시 안 사장은 “KAI는 드론 등 미래 연관 산업들을 통해 10년 내 매출 10조원 달성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아끼지 않겠지만 자체 역량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토로하며 “항공기 수출산업화와 성능 개량 등 R&D(연구개발)금융지원, 국산 항공기 국내 우선 구매 정책, 기술자립화와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에 대한 정부의 노력이 지금보다 배가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