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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자의 줌인
요즘 예능, 유튜브와의 경계를 허물다
2020. 08. 04 by 이민지 기자 sisaweek@daum.net
유튜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장인 브이로그' 콘셉트를 착안한 프로그램 '아무튼 출근' 속 장면 / MBC '아무튼 출근' 방송화면
유튜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장인 브이로그' 콘셉트를 착안한 프로그램 '아무튼 출근' 속 장면 / MBC '아무튼 출근' 방송화면

시사위크=이민지 기자  다양한 콘텐츠가 생산되는 플랫폼인 ‘유튜브‘의 대중화는 TV 예능프로그램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친다. 유튜브 속 콘텐츠에 대중이 익숙해지는 만큼, 예능프로그램들은 유튜브에서 만들어진 콘텐츠의 틀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시청자들의 친근함을 유도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예능프로그램과 유튜브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배경이다.

지난해 종영한 JTBC ‘랜선라이프- 크리에이터가 사는 법’(이하 ‘랜선라이프’)은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TV 예능이 유튜브에 대한 큰 관심도를 보이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해당 프로그램은 온라인으로만 보던 구독자 수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1인 크리에이터들을 대거 캐스팅해 그들의 일상생활을 리얼리티 예능 형태로 풀어내며 신선함을 자아냈다. 특히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아이들 사이에서 워너비 직업 상위권을 기록할 정도로 주목받고 있는 만큼 ‘랜선라이프’의 도전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일상을 담아낸 JTBC 예능프로그램 '랜선라이프- 크리에이터가 사는 법' / JTBC '랜선라이프- 크리에이터가 사는 법' 방송화면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일상을 담아낸 JTBC 예능프로그램 '랜선라이프- 크리에이터가 사는 법' / JTBC '랜선라이프- 크리에이터가 사는 법' 방송화면

‘랜선라이프’가 온라인 속 유튜버들을 TV로 이끌어낸 것을 기점으로, TV 예능프로그램들은 유튜브의 형태를 모방하는 것에 속도를 내며 뉴 미디어를 좇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온라인 생방송 형태를 가져와 프로그램을 만든 것 외엔 온라인 콘텐츠를 모방한 프로그램들이 희귀했던 것에 반해, 최근엔 유튜브 콘텐츠의 형식들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프로그램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다.

‘브이로그’ 형식을 모방한 프로그램의 증가는 ‘TV 예능프로그램의 유튜브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브이로그’(VLOG)는 비디오(Video)와 블로그(Blog)의 합성어로, 유튜브를 통해 크리에이터들이 자신들의 일상을 공유하면서 나타난 콘텐츠의 한 형태를 말한다. 

지난 3일 첫 방송된 MBC 새 파일럿 프로그램 ‘아무튼 출근!’은 유튜브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직장인 브이로그’ 형태를 가져와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날 방송에서는 ‘하트시그널 시즌2’에 출연했던 5급 공무원 이규빈을 비롯해 대기업 직장인 이민수, 1인 출판 대표 이슬아 작가가 작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자신들의 일상을 리얼하게 담아내 직장인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사수했다. ‘아무튼 출근’은 시청률 4.7%를 기록, ‘동상이몽’을 뛰어넘고 월요일 예능 시청률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올초 종영한 KBS2TV ‘정해인의 걸어보고서’ 또한 브이로그를 결합한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다. ‘정해인의 걸어보고서’는 배우 정해인으로 단독 예능프로그램으로서, 정해인이 자신이 여행한 내용을 직접 담아내는 ‘여행 다큐멘터리 PD’로 분한다고 홍보를 하며 방영 전 화제를 모았다. 또한 직접 정해인이 걸으면서 찍는 다큐멘터리 예능이라는 점을 반영한 ‘걷큐멘터리’라는 명칭을 붙이며 기대감을 자아냈다.

여행과 브이로그가 합쳐진 형태의 예능프로그램 '정해인의 걸어보고서' / KBS2TV '정해인의 걸어보고서' 방송화면
여행과 브이로그가 합쳐진 형태의 예능프로그램 '정해인의 걸어보고서' / KBS2TV '정해인의 걸어보고서' 방송화면

하지만 막상 베일을 벗은 ‘정해인의 걸어보고서’는 거창한 ‘걷큐멘터리’라기 보단 여행과 브이로그를 합친 형태가 더 가까운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해당 프로그램은 뉴욕을 배경으로 정해인의 여행 일상에 초점을 맞췄고, 이는 유튜브에서 보던 브이로그와 흡사한 형태를 띠며 즐거운 볼거리를 제공했다.

지난 1월 나영석 PD는 6개의 숏폼 코너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tvN 예능프로그램 ‘금요일 금요일 밤에’를 선보이며 변화하고 있는 시청자들의 콘텐츠 소비 패턴 공략에 나섰다. 70~80분 분량으로 방송되는 기존 예능프로그램과는 달리 하나 프로그램 안에 10분 내외의 짧은, 서로 다른 주제의 코너들을 구성하는 파격적 시도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와 관련 나영석 PD는 ‘금요일 금요일 밤에’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방송국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유튜브 유행에 따른) 일정 부분 위기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방송 환경이 급속도로 변하고 있고, 시청 패턴이 변하고 있다. TV만 보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며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접한다. ‘신서유기’를 하면서 시청자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는데, 대부분 클립 형식의 영상을 보시더라. 전체 프로그램을 보여드리기 힘든 환경이라면, 제작자가 시청자의 니즈(needs)에 맞춰 보여드리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한 바 있다. 예능프로그램에 유튜브가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나영석 PD의 파격적 시도가 돋보이는 예능프로그램 '금요일 금요일 밤에' / tvN '금요일 금요일 밤에' 공식 홈페이지
나영석 PD의 파격적 시도가 돋보이는 예능프로그램 '금요일 금요일 밤에' / tvN '금요일 금요일 밤에' 공식 홈페이지

TV를 보는 시간보다 핸드폰을 보는 시간이 증가하고 있는 시대 속에서 유튜브 콘텐츠가 지니는 영향력은 점차 올드 미디어를 능가하는 추세다. 그리고 이런 흐름 속에서 유튜브로 향하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예능프로그램들의 ‘유튜브 따라잡기’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됐다.

물론 예능프로그램들이 유튜브를 따라하면서 새로운 도전들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해석된다. 다만 점차 예능프로그램과 유튜브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예능프로그램들이 유튜브 콘텐츠 틀만 가져오고 그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원하는 시간에 터치만 하면 볼 수 있는 유튜브 콘텐츠를 두고 방송시간을 기다리면서까지 예능프로그램을 볼 이유가 더욱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유튜브가 생산해낸 콘텐츠 형태를 토대로 TV에 적합한 새로운 예능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일.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콘텐츠 흐름 속 방송국이 풀어내야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