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가기
李씨네
[인터뷰] 윤단비 감독이 선물한 ‘눈부신 여름날’
2020. 08. 19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영화 ‘남매의 여름밤’(감독 윤단비)으로 첫 장편연출 데뷔작을 선보인 윤단비 감독.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남매의 여름밤’(감독 윤단비)으로 첫 장편연출 데뷔작을 선보인 윤단비 감독. /그린나래미디어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비슷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나 말고도 있다는 것에서 오는 위안을 주고 싶고, 보는 이에게 작게나마 힘이 되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감독 윤단비)은 여름방학 동안 아빠 병기(양흥주 분)와 함께 할아버지 영묵(김상동 분) 집에서 지내게 된 남매 옥주(최정운 분)와 동주(박승준 분)가 겪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가족’을 소재로, 소소하지만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지난해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남매의 여름밤’은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 묘사와 사려 깊은 연출,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 앙상블로 관객과 평단을 모두 사로잡았고, 해당 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시민평론가상‧넷팩상‧KTH상 등 4관왕을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 제49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밝은미래상,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선택상, 제8회 무주산골영화제 대상인 뉴비전상까지 국내외 영화제를 휩쓸었다.

최근에는 한국영화로는 유일하게 2020 뉴욕아시안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데 이어 △제68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스페인) △제51회 내쉬빌영화제(미국) △제16회 취리히영화제(스위스) △아이치국제여성영화제 2020(일본) △제13회 헝가리한국영화제(헝가리) △제20회 뉴호라이즌국제영화제(폴란드) 등에 연달아 초정을 받으며 한국영화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눈부신 꽃길을 걷고 있는 ‘남매의 여름밤’은 신예 윤단비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2014년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단편영화 ‘불꽃놀이’를 선보였지만, 장편 연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단비 감독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이야기인 ‘가족’을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하게 스크린에 옮겨냈다. 특별한 사건도 자극적인 이야기도 아니지만, 각자의 기억을 소환하며 깊은 공감대를 이끌어내 호평을 받고 있다.

윤단비 감독이 ‘남매의 여름밤’을 향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린나래미디어
윤단비 감독이 ‘남매의 여름밤’을 향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린나래미디어

개봉을 앞두고 <시사위크>와 만난 윤단비 감독은 “가족은 나의 삶을 구성하는 가장 큰 경험치자 요소”라며 첫 연출작에서 ‘가족’을 소재로 택한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남매의 여름밤’이 세상에 태어났고,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것 같다”며 “잘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이라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고, 이제 개봉(20일)을 앞두고 있다. 기분이 어떤가.
“영화제는 한정된 기간이고, 스코어나 걱정보다 관객들이 어떻게 볼지, 어떻게 전달이 될까에 대한 생각이었는데, 개봉을 하니 과정이 다르기도 하고 영화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어떻게 관객들과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해 조금 더 고민이 되는 것 같다.”

-최근 뉴욕아시안영화제도 초청이 됐다.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시아권 문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나 관계, 영화의 관점에 대해 바라봐 주셔서 좋았다. 만약 아시아 영화의 특징, 아시안 문화의 어떤 것이라고 평가했다면 집의 구조나 캐릭터적인 면에서 그렇게 생각을 하는구나 했을 텐데, 그런 걸 떠나 영화 그 자체로 봐주셔서 되게 좋았고, 내게도 좋은 피드백이 됐다.”

-첫 장편 연출작에서 ‘가족’을 소재로 택한 이유가 있다면.
“가족이라는 이야기가 일상적이기도 하고 별게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삶을 구성하는 가장 큰 경험치자, 요소다. 그래서 첫 영화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전달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어떤 방식으로든 만날 수 있게 돼서 신기하기도 하다. 비슷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나 말고도 있다는 것에서 오는 위안을 주고 싶었고, 보는 이에게 작게나마 힘이 되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직접 경험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어떻게 구성하게 됐나.
“과정들을 경험하진 않았는데, 캐릭터들은 주변에서 많이 보던 인물들이기도 하고 가족의 이미지나 친척, 친구들 등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이 많이 녹아있다. 그래서 그 정서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구체적인 사건은 허구의 이야기지만 인물들이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공감을 많이 했다.”

-누구 하나 공감 가지 않은 인물이 없더라. 신발 거래남 조차.
“하하. (신발 거래남 역의) 배우에게 꼭 전해주겠다. 작위적이거나 영화를 위한 인물들이 있지 않나. 너무 악인이거나, 사건 때문에 비뚤어진 인간 같은… 그런 캐릭터들을 영화로 볼 때는 그냥 보지만 (시나리오를) 쓸 때는 부담스럽고 소화가 잘 안되는 게 있다. 그래서 다 있을 법한 인물을 그리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국내외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남매의 여름밤’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
국내외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남매의 여름밤’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

-가족의 형태를 설정하는 것도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처음에는 네 가족과 할아버지로 시작했다. 그때는 장르적으로 접근할 때 생각이었고, 새롭게 시나리오를 다시 써야겠다 생각했을 때는 이 가족에게 부재가 있으면, 유대감이나 연대감이 생기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구성원 한 명이 없다고 해서 큰 부재로 느껴지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옥주가 만약 자매라면, 유대감이나 이해하는 폭이 훨씬 더 깊어질 수 있었겠지만,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을 주고 싶어 남매로 설정했다. 성인 남매도 비슷하다. 엄마가 없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어쩌면 그들의 미래일 수도, 그들의 과거 모습일 수도 있다. (할머니가 아닌) 할아버지로 설정한 것도 성인 남매에게 부재를 주고 싶었다.” 

-옥주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옥주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이 영화는 옥주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고, 옥주가 관찰자로서 이 가족을 보기도 한다. 옥주가 감정의 진폭이 가장 크기 때문에 이 가족을 바라보는 관객들도 진폭을 더 잘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만약 병기가 주인공이라면, 성인 입장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될 수 있지 않나. 시점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옥주가 사춘기를 통과하면서 감정들의 변화를 겪고, 결국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인정하게 된다.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는 것을 통해 일련의 과정을 통과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나도 사춘기 시절을 힘들게 보냈기 때문에 그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인물을 다루고 싶었다.”

-의외로 웃음 타율이 높다. 의도한 부분인가.
“아이러니를 되게 좋아한다. 고모가 엄청 심각하게 싸우는데 소금을 뿌린다던가, 아빠랑 옥주가 싸울 때 심각한 상황에서도 구차한 모습을 보인다든가. (웃음) 가족의 일상을 다루면서 시종일관 무거운 게 아니라 이런 아이러니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삶이 있기 때문에 죽음이 있고 슬픔이 있기 때문에 기쁨이 있다고 하지 않나. 대비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국제에서 공개됐을 때 옥주가 신발을 뺏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웃더라. 예상하지 못했는데 웃으셔서, 다음 장면 되게 슬픈데 어떡하지 걱정했다. 그런데 또 금방 감정을 따라와 주셔서 다행이었다.”

-각 인물들에게 나름의 사연이 있는데, 굳이 들여다보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면.
“원래 설정한 것들은 다 있다. 어떤 부분은 배우들에게 얘기를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미정과 선호가 왜 싸웠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이 영화가 가족 관계 안에서 보이길 바랐다. 미정이 친구 집에 있거나 그런 설정을 넣긴 했지만, 외부적으로 풀게 되면 개인적인 이야기로 넘어갈 거라고 생각을 했다.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들어갈수록 보는 분들이 나와는 다르다며 거리감을 느낄 수 있겠다 싶어서 걷어낸 것도 있다. 미정과 병기의 대화 속에서 유추가 된다거나 그런 식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윤단비 감독이 꼽은 ‘남매의 여름밤’ 명장면. /그린나래미디어
‘남매의 여름밤’에서 옥주를 연기한 최정운. /그린나래미디어

-양흥주가 ‘남매의 여름밤’을 두고 ‘앨범 같다’고 표현했다. 볼 때마다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달라진다고도 했다. 감독도 매번 다르겠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자면.
“나도 매번 바뀌긴 하지만, 옥주와 동주가 택시를 타고 가는 장면이나 옥주가 신발을 뺏어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는 장면이 제일 오래 기억에 남아있긴 하다. 택시 타는 장면을 찍을 때 너무 좋았다. 두 장면은 다시 돌아가서 찍으라고 해도 못 담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할아버지와 옥주가 함께 음악을 듣는 장면은 촬영 중간 추가됐다고.
“옥주와 할아버지가 교감을 나눴으면 좋겠는데 직접적인 방식이 아니었으면 했다. 대사를 하거나 사건을 만들면 너무 작위적일 것 같은 거다. 나도 할아버지나 할머니한테 그렇게 안 할 것 같아서 음악을 듣는 장면을 넣었다. 옥주가 할아버지의 시간을 배려해 준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을 지켜주고, 함께해준다. 그런데 옥주에겐 나중에 죄책감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거다. 다가가지 못했다는… 동주는 다가가서 손이라도 흔드는데, 옥주는 나름의 배려였겠지만, 다가가지 못했다. 되게 복합적인 마음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영화에서 꿈에 대한 이야기가 세 번 나온다. 아빠의 꿈과 고모의 꿈, 옥주의 꿈까지. 꿈은 어떤 의미였나.
“나는 꿈이 항상 기억이랑 혼재되는 것 같다.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기억과 꿈은 모두 그리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장치인 것 같다. 그리움을 관통하는 장치로 꿈을 사용했다. 미정도 결국 엄마를 보고 싶어서 꿈을 꾼 거고, 병기는 어렸을 적 기억이 꿈에 나온다. 똑같은 장난을 동주에게도 치지 않나. 그게 또 동주의 꿈에 나올 수도 있다. 옥주가 자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이 나는데 모든 게 옥주의 꿈이었을 수도 있고, 언젠가 옥주의 꿈에 또 등장할 수도 있다. 영화가 끝나더라도 (기억들이) 이들의 꿈에 계속 나타날 수 있고, 그런 여지를 남겨주고 싶었다. 너무 상실로 느껴지지 않았으면 했다.”

-옥주 역을 맡은 최정운과의 작업은 어땠나.
“같이 성장한 느낌이 있어서 더 애틋하다.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 연기를 하고 싶어 하는 배우인데, 그 욕심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순수하고 맑은 느낌이 든다. 연기를 할 때도 그렇고 얘기를 나눌 때도 그렇고 뭔가 욕심을 내서 하려고 하기보다 그 인물을 더 이해하려고 하는 방식들이 정말 좋았다. 우리가 이 신을 잘 찍을 수 있을까 했던 순간들에서 서로 허들을 계속 넘어가는 느낌으로 만들어서 아마 더 애틋한 것 같다. 성인 배우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느낌이라면, 최정운은 같이 성장한 느낌이다. 동주에게도 도움을 받았다. 항상 의외의 어떤 것들을 만들어줬다. 하하. 출연한 배우들이 영화에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하다.”

빛나는 데뷔작을 선보인 ​윤단비 감독. /그린나래미디어 ​
빛나는 데뷔작을 선보인 ​윤단비 감독. /그린나래미디어 ​

-옥주가 마지막에 눈물을 터트리는 장면이 마음 아팠다. 배우에게 어떤 디렉팅을 했나.
“배우들에게 디렉팅을 할 때 개인사나 과거 이야기를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한다.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친구들에겐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옥주가 장례식에서도 안 우는데, 쌓여있는 어떤 것이 터질 것 같았다. 밥을 먹다 눈물을 흘릴 것 같고, 그것이 할아버지 소파의 빈자리를 보면서 느낄 것 같다고 최정운에게 이야기를 했다. 최정운이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체화하는 데 시간이 걸리다가, 소파를 보고 감정이 터지더라. 보면서도 마음이 아팠던 장면이었다.”

-‘여성’감독이라는 점도 주목을 받고 있는데, ‘여성’이라는 타이틀이 씌워지는 것에 대한 생각은. 
“좋은 변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기가 더 지나면 똑같이 ‘감독’으로 자연스럽게 변화할 수 있을 거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아빠조차 ‘봉준호, 박찬욱 감독이나 영화 하는 것’이라고 했을 정도로 여성에겐 진입장벽이 높았다. 동기들이 여자가 많았어도, 연출로 넘어가면 남자감독들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여성감독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지 않나. 되게 좋은 변화다. 아직은 여성감독이 남성감독에 비해 소수이기 때문에 조금 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호칭이 붙는 것 같은데, 조금 지나면 동등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연출자로 꿈을 키우는데 혹은 작품을 만드는데 영향을 미친 사람이나 작품이 있다면.
“나쓰메 소세키(일본 소설가) 책들을 보며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 생각했다. 일상적인 이야기인데 시적인 감수성이 있고, 마음에 깊게 가닿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엄마다. 엄마가 호기심이 엄청 많다. 동네에 살인사건이 났었는데, 밤에 혼자 가보고 나에게 얘기를 해주더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하고 관심도 많이 기울인다. 그런 엄마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엄마는 내가 하는 것에 대해 한 번도 반대를 하거나 의심한 적이 없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뜬금없이 기타 학원에 다닌다고 했을 때도 제재를 안 했다. 막연한 믿음으로 항상 봐주셨다. ‘넌 안 될 거야’라던 아빠에게도 자극을 받은 것 같고.(웃음)”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윤단비 감독. /그린나래미디어 ​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윤단비 감독. /그린나래미디어 ​

-지금은 부모님이 뿌듯해 하시겠다.
“아빠가 그런 말을 했던 건 다 잊고 지금은 차기작을 물어본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도 내 사진으로 도배를 하고, 너무 자랑스러워하는 게 느껴진다. 부담스러울 만큼.(웃음) 내가 무슨 말만 하면 ‘그래, 네 말이 맞아’ 이런 느낌이다. 엄마가 말하길 피라미드 관계에서 내가 제일 위로 올라갔다고 하더라. 아빠가 걱정이 많았던 것 같다. 광주에서 자랐는데, 계속 품에 두고 싶어 했고 서울에 왔을 때도 항상 힘들면 언제든 오라고 했다. 그런데 엄마는 그래도 넓은 세상에 있으라고 했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나를 배려해 주셨다.”

-연출을 함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지키고자 하는 신념이 있다면.
“관객이 좋아하고 관객에게 다가가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만, 관객이라는 대상 자체가 무형의 집단이지 않나. 그래서 그 관객을 그냥 ‘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고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또 항상 생각하는 건 피해 서사를 소비하고 싶지 않다는 거다. 그러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아닌데도, 주인공의 아픔을 위해 여성이나 아이들이 잔인하게 죽는 것 같은. 그런 것이 누군가의 트라우마를 건드리게 될까 봐 무섭다. 사람의 상처를 건드리고 싶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반드시 필요하다면 해야겠지만, 멋진 주인공 남성의 무언가를 위해서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남매의 여름밤’을 보면서 옥주와 동주가 싸우다가 계단에서 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는 분도 있다고 하더라. 아빠가 애들을 때릴 것 같고. 그런 영화들이 많고, 그런 문법에 익숙해지니 불안감을 느끼게 되더라. 불안감은 영화의 서스펜스가 되기도 하니 나쁜 건 아니지만,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고 고민 없이 비하한다거나 폄하하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 궁극적으로 내가 착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건 아닌데 최소한 그런 건 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있다.”

-시나리오 작업 단계부터 지난해 부산에서 공개가 되고 영화제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개봉을 앞둔 지금 이 순간까지 ‘남매의 여름밤’과 함께 하고 있는데, 그 시간을 돌아보면 어떤가.
“내가 미성숙한 보호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장면을 못 담았으면 어땠을까, 어떻게 영화가 바뀌었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너무 많이 도와줘서 여기까지 왔다.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무수히 많은 인연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신기했고 영화가 가진 힘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통해 관객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방적인 게 아니라 내게도 많은 영향을 주는구나 싶었다.

내 첫 작품이고 평생 바꿀 수도 없지 않나. 그래서 너무 소중하고, 표현이 이상하지만 얘(‘남매의 여름밤’)가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이 영화가 아기처럼 세상에 태어났고, 자기 길을 가는 것 같다. 나는 양육자로서 역할을 하는 느낌이다. 좋은 반응이 오니 기특한 느낌도 든다. 내가 이 영화를 만들었다기보다 뭔가를 걷어내고 이 영화가 나왔고, 나는 함께 나아가는 느낌이다. 정말 가족 같은 느낌이고, 이 작품이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