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Extinction)’. 지구상에 존재하던 어떤 종이 모종의 이유로 세계에서 사라져 개체가 확인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지구의 입장에서 멸종은 항상 일어나는 작은 사건일 뿐이다. 지구의 생명역사가 시작된 38억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생명체 대부분이 사라지는 ‘대멸종의 시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멸종의 원인이 기존의 ‘자연현상’에 의한 것이 아닌, 인간이 직접적 원인이 된 멸종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오염, 불법 포획부터 지구온난화까지 우리 스스로 자초한 결과물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제 지구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 스스로 자초한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편집자 주]

과거 한반도에는 수많은 표범이 살았다. 이들은 현재 ‘아무르 표범(Amur leopard, 학명: Panthera pardus orientalis)’이라는 종이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아무르 표범을 찾아볼 수 없다. 무성한 목격담과 소문은 있지만, 사실상 우리나라에선 멸종당했다. 이들에게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진=WWF,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1996년 개봉한 마이클 더글러스 주연의 영화 ‘고스트 앤 다크니스’는 무시무시한 식인사자 두 마리가 사람들을 사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령’과 ‘어둠’이라 불렸던 두 마리의 사자는 아프리카 다리 공사 현장에서 약 130여명의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는데, 이것이 실화라고 하니 더 무섭게 느껴진다.

영화 속 식인사자만큼은 아니지만, 과거 한반도에도 강력한 ‘사냥꾼’이 살았다고 한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은 머릿속에 ‘호랑이’를 떠올릴 듯 하다. 커다란 덩치에 무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진 호랑이는 대표적인 고양이과 맹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냥꾼은 어쩌면 우리에게 조금 낯설지도 모르는 ‘표범’이다. 

◇ 한반도에 살았던 표범은 ‘아무르 표범’… 멧돼지, 고라니 등 사냥

우리에게 한국표범으로 알려져 있는 표범의 종은 ‘아무르 표범(Amur leopard, 학명: Panthera pardus orientalis)’이다. 아무르 표범의 몸 길이는 156~192cm정도로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아프리카의 표범들보다 크기가 작다. 꼬리는 몸 길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만큼 길었는데 평균적으로 꼬리는 70~83cm 정도이다. 몸무게는 수컷 기준으로 32kg~48kg 정도다.

외모의 경우 머리는 크고 둥글고, 귀는 머리 크기에 비해 상당히 작다. 털색은 일반적으로 황색 또는 황적생을 띄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커다란 검은색 점무늬가 퍼져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프리카에서 서식하는 고양잇과 포식자인 치타와도 비슷하지만 치타의 경우 점무늬가 전부 검은색이다. 반면 한국표범의 몸통 부분 점무늬는 내부에 황갈색의 털이 드러나 ‘도넛’과 비슷한 모양을 띄고 있다.

아무르 표범은 몸 길이는 156~192cm정도로 일반적인 아프리카 표범보다는 크기가 작다. 털색은 일반적으로 황색 또는 황적생을 띄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커다란 검은색 점무늬가 퍼져있는 것이 특징이다./ WWF

성격은 상당히 예민하고 사나운 편이며 활동시간은 보통 해가 진 후, 새벽 등 어두운 시간대다. 아무르 표범은 보통 혼자 생활하는 경우가 많지만, 세계자연기금(World Wide Fund for Nature, WWF)에 따르면 때때로 암컷과 수컷이 짝을 지어 새끼를 돌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겨울이나 봄에 짝짓기를 하며, 임신 100일 정도가 지나면 1~5마리 정도의 새끼가 태어난다. 태어난 새끼들은 2~3년 정도 지나 성숙해지면 독립하게 된다. 

아무르 표범은 보통 고산 지대의 산림 속이나 바위굴 속에서 생활한다. 2015년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의 비아제츨라브 로즈노프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아무르 표범은 암컷 기준 33~136km², 수컷은 155~300km²의 상당히 넓은 행동범위를 갖는다. 연구진들은 호랑이와는 달리 아무르 표범은 정해진 영역을 가지고 살지는 않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먹이의 경우 노루, 고라니, 멧돼지 등 대형 포유류가 일반적이지만 꿩, 비둘기 등의 조류 등도 사냥한다. 행동이 민첩하고 나무를 잘 타는데, 사냥한 먹이를 안전하게 나무 위로 가지고 올라가 숨기기도 한다. 먹이가 부족할때는 쥐, 뱀, 개구리도 사냥하며, 가끔 서식지 주변 마을로 향해 사람과 가축을 공격하기도 하는 것을 알려졌다. 

아무르 표범은 겨울이나 봄에 짝짓기를 하며, 임신 100일 정도가 지나면 1~5마리 정도의 새끼가 태어난다. 태어난 새끼들은 2~3년 정도 지나 성숙해지면 독립하게 된다. 사진은 아무르 표범의 새끼 모습./ 픽사베이

◇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했던 아무르 표범

호랑이와 함께 ‘범’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아무르 표범은 삼국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했다. 당시 사람들이 아무르 표범을 불렀던 방언으로는 ‘돈범’ ‘불범’ ‘토피’ ‘퇴범’ ‘포범’ ‘푀범’ 등 다양한 이름이 있다.

이는 역사 문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조선후기 학자 이만영이 1798년에 저술한 유서인 ‘재물보(才物譜)’에서 “표범은 모양이 호랑이와 같고 작으며 둥근무늬가 있다”고 나와 있다. 

또한 조선의 명의로 알려진 허준이 저술한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표범의 고기는 오장을 편안하게 하고, 뼈를 굳세게 만들며, 가죽은 깔고 나면 온역(봄철 유행병)과 귀사(악한 기운)을 물리친다“고 묘사했다. 이밖에도 복을 가져다준다는 의미를 가진 까치와 함께 표범이 그려진 민화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과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표범이 매우 익숙한 동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르 표범은 삼국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한 동물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역사 문헌과 민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진은 까치와 표범을 그린 민화. 작자 미상/ 뉴시스

실제로 과거 한반도에는 수많은 아무르 표범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조 11년 1633년에 전라도 무안현감이 국왕에 올린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포획해야할 호랑이와 표범의 수가 약 1,000마리에 달했으니, 서식하고 있던 아무르 표범의 숫자도 상당히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동진 한국교원대 교수도 본인이 집필한 ‘조선의 생태환경사’에서 “호랑이와 표범의 출산 주기와 평균 수명, 번식률을 고려하면 한반도에는 각각 4,000∼6,000여마리의 호랑이와 표범이 살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과거 번성했던 아무르 표범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사실상 멸종당한 상태다. 1960년대 이후 아무르 표범이 포획됐다는 공식 기록은 없으며, 목격담이나 소문은 있지만 공식적인 생존 여부는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아무르 표범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제시한 멸종위기등급에서 ‘CR(Critically Endangered)’ 등급을 받고 있는데, 이는 ‘야생에서 극단적으로 높은 절멸 위기에 직면한 상태’라는 뜻이다. 국내에서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동식물 1급으로 지정돼 있다. 우리 민족과 역사를 함께 했던 아무르 표범이 한반도에서 거의 멸종한 이유는 무엇일까.

◇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아무르 표범을 멸종위기로 몰다

한반도에서 아무르 표범이 사라지게된 것은 우리나라의 슬픈 역사들과 연관이 깊다. 그 중 하나가 일제강점기 시절 자행된 ‘해수구제사업’이다. 해수구제사업은 당시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었던 일본제국의 조선총독부가 ‘사람과 재산에 위해를 끼치는 해수를 구제한다’는 명목 하에 야생동물들을 포획한 정책이다. 

당시 백두산 호랑이라 불리는 ‘시베리아 호랑이’ ‘한국 늑대’들과 함께 아무르 표범은 해수구제사업에 의해 거의 다수가 포획당했고, 전문가들은 이것이 한반도 내 아무르 표범이 멸종하게된 결정적 이유로 보고 있다. 

일본의 동물 문학 집필가 엔도 키미오가 집필한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에 당시 조선총독부는 1915년부터 1916년까지 136마리, 1919년부터 1924년까지 385마리, 1933년부터 1942년까지 103마리의의 아무르 표범을 사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학계에서는 공식기록으론 624마리지만, 비공식적인 포획까지 포함할 경우, 수천마리의 아무르 표범이 해수구제사업에 의해 희생당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출판사 '에이도스'에서 2014년 출간한 '정호기'에 나온 일제 해수구제사업의 모습. 1917년 11월 16일 일본의 야마모토 타다사부로에 의해 조직된 야마모토 정호군이 영흥군 의흥면 용신리에서 아무르표범을 사살한 모습./ 에이도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혹독한 일제강점기를 겪은 아무르 표범에겐 또다시 크나큰 시련이 다가왔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선전포고없이 기습 남침을 시도한 ‘6.25전쟁’이 발발하면서다. 전쟁으로 인해 아무르 표범의 서식지인 산과 들은 황폐화되면서 그나마 한반도에 남아있던 아무르 표범의 개체수는 점점 더 줄었다. 

거의 멸종위기에 달한 아무르 표범이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 생존했던 시기는 1960년대~70년대다. 1962년 2월 12일 오전, 합천군의 오도산에서 오도산 인근의 가야마을에서 어린 아무르 표범 ‘한표’가 포획돼 창경원에서 약 11년간 살았다. 

당시 개체수가 급감한 한국의 아무르 표범을 살리기 위해 창경원 측은 암컷 아무르 표범 한 마리를 포획했다는 교회 측 연락을 받고 암컷을 데려오려했지만, 교회 측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요구한 탓에 결국 데려오는데 실패했다. 해당 암컷 아무르 표범은 약용으로 도살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창경원에서 살아가던 한표는 1973년 8월 11일 순환기 장애로 쓰러졌고,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한국의 마지막 표범은 그렇게 자신의 고향, 숲속이 아닌 동물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나마 창경원 측이 한국 표범의 혈통을 지키기 위해 인도 표범과 짝짓기를 시도해 두 마리의 새끼를 얻는데 성공했었지만, 그 두 마리의 새끼 모두 1989년, 1990년에 자손 번식을 하지 않고 죽어 사실상 한국의 표범은 우리나라에서 사라지게 됐다. 

현재 한국표범의 남은 후손들은 러시아 연해주와 북쪽의 ‘아무르 강’ 근처에서 극소수 정도만 살아남은 상태다. 이것이 ‘한국표범’ ‘조선표범’이라는 과거의 이름 대신 ‘아무르 표범’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다. 

1971년 10월 20일, 창경원에서 한반도의 마지막 표범인 한표(뒤)와 인도표범(앞)의 합사를 시도한 모습. 이 둘사이에는 새끼 두마리가 태어났다. 하지만 이 두마리의 새끼들이 자손번식에 성공하지 못하면서, 결국 한반도의 표범은 한표를 끝으로 사라지게 됐다./국가기록원

◇ 한반도에서 사라진 표범, 하지만 아직 희망은 있다

다만 극심한 멸종위기에 처한 아무르 표범에게도 아직 희망은 남아있는 듯 하다. 러시아 정부가 아무르 표범의 보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1956년 소련 정부가 30여마리도 남지 않은 아무르 표범의 사냥을 금지시킨 이후, 1998년 러시아 정부는 ‘아무르 표범 보호 전략’도 승인했다. 

이후 2012년 세르게이 이바노프 당시 부총리는 러시아 연해주 남서부의 중국, 북한 접경을 포함해 서울 면적의 4배(2,620km²)에 이르는 지역을 ‘표범의 땅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고 보호 및 먹이공급, 밀렵 단속 등을 시행했다. 지난 2016년 한국범보존기금도 러시아 표범의 땅 국립공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한국 호랑이 및 표범 보전·복원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같은 노력이 지속되면서 아무르 표범의 개체수는 점차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범보전기금에 따르면 2007년 기준 30마리에 불과했던 아무르 표범의 개체수는 2016년 기준 최소 57마리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18년 기준 표범의 땅 국립공원 내 서식하고 있는 아무르 표범은 성체 86마리, 새끼 21마리가 확인된 상태다. 특히 한국범보전기금 측은 수컷과 암컷의 성비가 1대2로 변화한 것도 개체수 증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아무르 표범이 한반도로 돌아올 수 있는 실낯같은 가능성도 남아있다. 2016년 11월 환경부 산하 국립생물자원관은 울산과학기술원(UNIST)와 함께 아무르 표범의 게놈지도를 세계 최초로 완성한 것이다. 연구진은 해당 게놈지도를 통해 멸종위기의 한국 표범의 보전을 위한 근원자료를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지난 2016년 국립생물자원관과 유니스트(UNIST·울산과학기술원)은 1년 6개월여 간의 공동 연구 끝에 한국 표범의 게놈을 완전 해독하는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해당 연구를 통해 한국 표범의 복원에 실마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6년 5월 청주동물원을 방문한 연구진들이 표범에서 혈액을 채취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또한 지난 5월 12일 한국범보전기금 대표인 이항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교수 연구팀은 2014년 구입한 지리산 표범 가죽 표본에서 DNA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 과거 한반도에 서식했던 표범과 아무르 표범의 DNA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따라서 러시아 연해주에 서식하고 있는 아무르 표범들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표범을 복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한국에 표범의 복원을 시도할 때, 아무르 표범 혈통 개체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며 “북한에서 아무르 표범이 복원된다면 러시아, 중국, 북한의 국경을 넘어 야생 아무르 개체군의 자연적 유입을 기대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다만 이러한 자연적 개체수 확장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는 생태 통로(야생동물이 지나는 길을 인공적으로 만든 것)가 필요할 수 있다”며 “결국 한반도에서의 표범 복원의 원천은 개체군의 보전과 증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오래 전 한반도의 넓은 숲속에서 자유로이 살아왔던 아무르 표범. 일제의 잔혹한 통치 아래 한반도에 남아있던 이들은, 큰 고통과 수탈을 피해 러시아와 중국으로 흩어졌던 슬픈 역사를 지닌 우리 민족과 닮아있는 듯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일제의 점령을 이겨내고 광복을 맞이한지 75년을 맞이했다. 이처럼 우리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아무르 표범들도 다시 고향을 찾아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들이 다시 돌아온다면 ‘아무르 표범’이 아닌 ‘한국표범’으로 다시 부를 수 있을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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