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는 지금까지 적나라한 후진성을 보이면서도 수많은 굴곡을 겪으며 정치 개혁에서 진일보하기도 했다. 돈 없는 정치, 비리 정치인 척결 등을 위해 선거법을 손보고 공천 제도를 개혁하는 등의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아직도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하는 부분이 있다. 한국 정치는 수많은 벽들을 만들어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정치적 약자들의 국회 진출을 가로막아왔다. 국회는 민의의 정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국민의 국회가 돼야 한다.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하지 않고 문을 활짝 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시사위크>는 우리나라 역대 국회에서 장애인 국회의원들의 활약상과 해외 사례 등을 살펴보고 향후 장애의 벽을 넘기 위해 국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짚어볼 예정이다.

21대 국회에서 장애인 국회의원들이 입성하면서 국회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신구 기자  “국회에서 꼭 기립이라는 표결 방법을 고집해야 할지 간사진에서 논의해 대안을 만들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지난 달 3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나온 일성이다. 당사자는 이종성 미래통합당 의원. 이 의원은 어린 시절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휠체어 도움을 받고 있다. 이 의원의 ‘문제 제기’에 더불어민주당 소속 한정애 보건복지위원장은 “그렇네요”라며 국회법 개정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이에 대해 여야 모두 이견은 없었다.

이 의원은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얼마든지 다양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음에도 그동안 관행적 형식에 얽매여 이웃을 배려하지 못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간 정치권에 대한 아쉬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개선의 여지는 있다. 21대 국회에 장애계를 대변할 의원들이 다수 입성한 만큼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이 의원도 지난 18일 특별한 사정이 있을 시 기립표결을 거수표결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 발의에 나섰다.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손수 고쳐 나가겠다는 의지다.

◇ 의정활동 편리 위해 노력하는 국회

21대 국회에 입성한 장애인 국회의원은 총 4명이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한 명도 없었던 것에 비하면 고무적인 숫자다. 장애인 권익 운동가 출신부터 헌정사상 첫 여성 시각장애인 국회의원도 입성했다. 

이에 맞춰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가장 먼저 김예지 통합당 의원의 안내견 ‘조이’가 본회의장에 출입하게 됐다. 앞서 17대 국회에서 시각장애인인 정화원 의원의 경우, 안내견 출입이 불허돼 보좌진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수어 통역도 새롭게 도입됐다. 그간 국회는 기자회견에서 수어 통역을 지원하지 않았다. 장애인의 참정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변화를 끌어낸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수어 통역을 동반한 첫 기자회견에서 “진작 보장됐어야 할 정당한 권리였다”라며 “제21대 국회가 의미 있는 변화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환영의 말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것도 있다. 국회에서는 장애인 국회의원들의 경우 수행비서 인력을 추가로 둘 수 있다. 또한 장애 유형이나 정도에 따라 필요한 용품이나 편의시설 등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 시각장애인 김 의원의 경우 점자프린터, 점자정보단말기, 음성지원노트북 등을 지원받아 의정활동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21대 국회에서는 김예지 미래통합당 의원의 안내견 ′조이′의 본회의장 입성이 허용됐다. /뉴시스

◇ 그래도 여전히 부족한 현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종성 통합당 의원은 “아무래도 휠체어 생활을 하다 보니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추었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상존한다”라고 말했다.

휠체어를 탄 이들에게 가장 불편한 점은 ‘이동’이다. 경사로가 설치된 진입로와 엘리베이터 등을 이용해야 하다보니 동선이 길어져 회의 참여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의원은 “국회 내 이동 동선이 길어 비장애인보다 이동시간을 여유 있게 갖는데, 다른 의원들의 경우 시간을 거의 맞춰서 활동하시다 보니 보조를 못 맞추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언급했다.

회의를 제외한 세미나 등 행사를 진행할 때 어려움도 어쩔 수 없다. 국회 세미나실이 계단식 구조와 고정형 좌석으로 이루어진 경우는 특히나 문제다.

교통사고로 척수장애를 갖게 된 최혜영 민주당 의원은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휠체어를 탔기 때문에 보도블록, 세미나장 의자가 떼어있지 않은 경우에 문제가 있다”며 “큰 대회의실 같은 경우는 고정식 의자로 돼 있어서 통로에서 행사를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장에서는 수어 통역이 이뤄지고 있지만, 상임위나 세미나 등에서는 진행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속기록마저도 제공되지 않으면서 청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각장애인 의원에 대한 전자 투표나 업무망 접근 등의 지적도 마찬가지다. 한국시각장애인협회는 김 의원의 당선 당시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을 촉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국회는 점자 표결기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정치권의 ‘인식 개선’이 우선

물리적 편의성은 어느 정도 확보됐지만, 장애인 국회의원들은 이것이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정치권에 만연한 ‘장애 감수성’ 부족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임시처방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시선이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결여된 장애 감수성을 보여주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차별행위 중단’ 권고결정을 받았다. 지난 총선 당시 최혜영 의원의 영입을 강조하던 중 “선천적인 장애인은 의지가 약하다”고 발언한 게 화근이 됐다. 

한편 이광재 민주당 의원의 ‘절름발이’ 발언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의원은 국회 재정위원회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에게 부동산 현안을 질의하던 중 “정책 수단이 절름발이가 될 수밖에 없다”고 발언했다. 이 자리에 있던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표현을 지적했고, 이후 장애인 단체에서도 비판이 거세지자 이 의원은 사과했다.

장애인 의원들은 이러한 인식이 곳곳에 있다고 전했다. 최 의원은 “아직까지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 자체가 장애인에 대해 부정적인 게 깔려있다”고 말했다. 이종성 통합당 의원도 “사회 곳곳에 관행적으로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못하는 요소들이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기립 표결’과 같은 맥락으로 ‘국민 의례’의 경우가 이같은 문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민 의례에서 당연히 모든 사람이 일어서서 경례하도록 하고 있는데, 몸이 불편한 분들은 자리에서 예를 갖추도록 안내하든지 (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최 의원 역시 “국민 의례를 하는 경우 ‘모두 일어나 주십시오’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스스럼이 없다”고 지적했다.

2015년 <재활복지>에 실린 ‘장애인 국회의원의 의회정치참여 경험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는 정치권 내에서 장애인 의원들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연구에 참여한 제15대에서 제18대 장애인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은 의정활동 중 물리적‧심리적 부분에서 비장애인 의원들로부터 어느 정도의 차별과 편견을 경험했다고 대답했다. 당직 등을 맡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편견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차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장애라는 것이 유형이나 정도에 따라 불편함을 느끼는 정도나 요구가 제각각이다. 어느 정도 공통적인 부분만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운 개별성을 갖는다”며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당사자들의 요구에 따른 적극적인 조치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언급했다.

최 의원은 장애 인식 개선을 위한 의무교육 등이 확대 되는 것도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가 선행돼야 정치권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에도 장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것이란 입장이다.

그는 “인식은 꼭 바뀌어야 한다. 국회는 헌법기관이고 (의원들은) 법을 만드는 분들이지 않나. 아직도 법을 만들 때 장애인을 ‘불쌍한 사람’들로 생각하고 법을 만든다. 그렇다면 장애인들은 계속해서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다”며 “사회가 바뀌고 인식이 바뀐다면 장애인이 아니라 똑같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국회의원들은 정치권에서 가장 개선돼야 할 점으로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뉴시스

◇ 장애인의 ‘정치 기회’ 보장돼야

장애인 국회의원의 존재는 중요하다. 국회는 국민의 ‘다양성’을 보장해야 하는 곳이고, 이들은 사회의 한 축인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등록장애인 수는 총 261만 8,000명으로 전체 국민의 5.1%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단순 산술적으로만 계산해도 300명 국회의원 중 이들의 비율은 1% 남짓이다. 수의 논리가 압도적인 국회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극히 소수에 불과한 것이다. 장애인의 현실 정치 참여가 녹록지 않다는 방증이다. 그간 장애인 국회의원 중 재선에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점도 이러한 문제를 보여준다.

이에 대해 이종성 통합당 의원은 “장애인들의 정치참여에 대한 이유가 당사자성을 기반으로 한 전문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막상 정치권에서 활동하다 보면 이런 전문성보다는 정치적인 활동역량에 비중을 두는 경우가 많아 경험을 쌓을 기회가 적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다들 생각하시는 부분이 장애인 비례대표는 4년만 하면 끝이라는 인식이 있다. 거기에 대한 대처도 사후 계획도 없다”라며 “선거운동도 비장애인 정치인들에게 맞춰져 있다 보니 연임이 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장애인 유권자들의 편리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측면도 문제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선거 기표소가 2층에 위치하거나, 선거 공보물에 점자 표시가 안 되어 있다는 점 등이 일례다. 이렇다 보니 장애인들의 정치 참여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으며, 정치의 벽을 허물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장애인 단체들은 ‘장애인 정치세력화’를 강조한다. 장애인 정치인들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마련하고, 관련 법제화 등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애인의 정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서 정치 구조가 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정희 군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사실상 소선거구제인 정치 구조에서는 장애인 비례대표성을 확대하기가 힘들다”며 “정치 구조가 바뀌는 것도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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