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가기
李씨네
[나를 구하지 마세요] 한 소녀의 간절한 기도
2020. 08. 28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영화 ‘나를 구하지 마세요’(감독 정연경)가 관객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리틀빅픽처스
영화 ‘나를 구하지 마세요’(감독 정연경)가 관객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리틀빅픽처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아빠가 떠난 후 도망치듯 엄마(양소민 분)와 함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이사 온 열두 살 소녀 선유(조서연 분). 또래보다 일찍 철들어버린 선유는 엄마마저 자신을 떠날까 불안함이 앞선다.

전학 첫날, 말썽쟁이 정국(최로운 분)은 눈치도 없이 선유 곁을 맴돌고, 선유는 명랑한 정국의 모습에 조금씩 웃음을 되찾아 간다. “우리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 정국의 한 마디는 선유를 구할 수 있을까.

영화 ‘나를 구하지 마세요’(감독 정연경)는 낯선 곳에서 살게 된 열두 살 소녀 선유가 전학 간 학교에서 천진난만한 소년 정국을 만난 후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단편 ‘바다를 건너 온 엄마’(2011)로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초청되며 두각을 나타낸 정연경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나를 구하지 마세요’는 2016년 9월 대구에서 일어났던 비극적인 실화를 모티브로 한다. 낙동강 하류에서 한 모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사건으로, 당시 자신에게 다가올 결과를 알고 엄마를 따라나섰던 아이의 심정을 담은 메모가 발견돼 더욱 안타까움을 안겼다.

‘나를 구하지 마세요’에서 열연한 아역배우 조서연(왼쪽)과 최로운. /리틀빅픽처스
‘나를 구하지 마세요’에서 열연한 아역배우 조서연(왼쪽)과 최로운. /리틀빅픽처스

영화는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지만 너무 일찍 슬픔을 알아버린 소녀의 비참한 상황보다는 선유에게 다가오는 밝은 위로에 초점을 맞춘다. 현실에선 구하지 못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며 희망적 메시지를 전한다.

가장 큰 미덕은 극단적인 상황에 몰린 모녀라는 자극적인 설정을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순수하면서도 따뜻하게 담아냈다는 점이다. 누구보다 무섭고 두려웠을 선유에게 손을 내민 이는 엄마도, 선생님도 아니다.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즐겨 부르며 늘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는 정국이다.

철없어 보이지만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알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정국은 선유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파하며 가장 순수한 방법으로 선유를 위로한다. “아무것도 몰라 미안하다”는 정국은 선유의 마음을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알아채준 유일한 사람이다. 선유에겐 그거면 충분했다. 영화는 어쩌면 어른보다 나은 아이 정국을 통해 묵직한 울림을 선사하며, 세상의 모든 선유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용기와 희망을 준다.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전하는 ‘나를 구하지 마세요’. /리틀빅픽처스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전하는 ‘나를 구하지 마세요’. /리틀빅픽처스

선유와 정국으로 분한 두 아역배우 조서연과 최로운은 안정적인 호흡을 보여준다. 먼저 조서연은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선유의 내면을 세밀하게 담아내 몰입도를 높인다. 최로운은 장난기 가득한 모습부터 속 깊은 정국의 면모까지 입체적으로 표현한다. 선유의 엄마 나희 역을 맡은 양소민과 선유 모녀의 든든한 지원군에서 현실에 부딪힌 인경 이모로 분한 이선희도 제 몫을 해내고, 선유의 같은 반 친구들도 극을 풍성하게 채운다.

정연경 감독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이 세상의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못난 어른이라는 죄책감이 들었다”며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을 구할 수 있을까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시작된 영화”라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러닝타임 97분, 오는 9월 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