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8월 15일 추석은 우리나라의 가장 큰 명절이다.  추석을 상징하는 것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보름달’이 가장 중요한 상징일 것이다. ‘추석(秋夕)’라는 단어의 뜻 자체도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설날과 함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큰 명절은 ‘추석’이다. 추석하면 윷놀이, 송편 등 다양한 상징이 존재하지만, 역시 추석하면 ‘보름달’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추석(秋夕)’이라는 단어의 뜻 자체도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을 의미하니, 추석과 보름달이 얼마나 상관관계가 깊은지를 유추할 수 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추석 밤하늘을 밝히는 보름달을 ‘풍요와 행운’의 상징으로 여겼다. 때문에 추석이면 보름달 아래 온동네 사람들이 모여 소원을 빌거나 전통놀이인 강강술래를 즐기며 추수의 풍년을 기원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어떤 이유에서 보름달을 풍요와 행운의 상징으로 여겼던 것일까. 하늘의 커다랗게 빛나던 천체라면 보름달 외에 훨씬 더 밝고, 농사에 직접 관여하는 태양이 있는데도 말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보름달을 풍요와 번영의 상징으로 여겼다. 이에 따라 추석이 되면 보름달에 소원을 빌거나 달빛 아래서 전통놀이 강강술래를 즐기곤 했다./ Getty images 

◇ ‘여신’ 상징하는 보름달… 농경사회 ‘풍요와 번영’을 의미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을 찾아보면 우리 조상들이 오래 전부터 보름달을 굉장히 길한 존재로 여겼던 이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음력 8월 15일인 추석외에도 보름달 자체를 명절의 이름으로 정한 ‘정월대보름(음력 1월 15일)’이 조상들에게 가장 중요한 명절로 손꼽힌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우리 문화에서 보름달이 풍요와 행운을 상징으로 자리잡게된 것은 우리나라가 과거부터 ‘농경 사회’를 기반으로 발전한 것이 주요 이유로 꼽힌다. 보름달이 ‘여신(女神)’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의미는 고대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양의 대표적인 철학적 사고인 ‘음양’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음양이란 ‘천지 만물을 만들어 내는 상반하는 성질의 음과 양이라는 두 가지 기운’을 뜻한다.

여기서 ‘양(陽)’은 ‘태양’과 남성을 상징하고, ‘음(陰)’은 ‘달’과 여성을 상징한다. 과거 조상들은 달에 당시 여성상을 상징하는 ‘출산’과 ‘대지(大地)’를 의미를 투영해 ‘만물을 낳는 지모신(地母神)으로서 여겼다.

이는 우리나라 세시풍속과 축제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인데, 마을 주민들이 신께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인 ‘동제’가 대표적 예다. 우리 조상들은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동제신(洞祭神)’께 제를 올렸다. 보통 날짜는 그 해 첫 보름달이 뜨는 기간이 많고, 보름달을 상징하는 여성 동제신이 남신보다 두 배를 넘는다고 한다. 

또한 한 해 농사의 결과를 점치는 ‘농점(農點)’도 달집태우기, 달불이 등 보름달과 관련된 것이 많다. 이 중 대표적인 농점인 달집태우기는 정월대보름 밤에 짚, 솔가지 등을 모아 쌓아놓고 보름달이 떠오를 때 불을 지르는 풍습이다.

달집을 태웠을 때 전체적으로 고르게 타오르면 그 해는 풍년, 불이 도중에 꺼지면 흉년을 의미했다. 달집이 타면서 넘어지는 쪽의 마을은 이웃마을보다 풍년이 들 것으로 점쳐졌다. 또한 달집 속에 넣은 대나무가 불에 타면서 ‘딱딱’거리며 터지는 소리는 마을의 악귀를 내쫒는 힘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보름달은 농경국가였던 우리나라에서 한해 안녕과 풍요를 점칠 수 있도록 해주는 존재이기도 했다. 조상들은 정월대보름 밤에 짚, 솔가지 등을 모아 쌓아놓고 보름달이 떠오를 때 불을 질러 한해 농사운을 점치고, 풍년을 기원했다. 사진은 지난 2019년 정월대보름을 하루 앞둔 18일 오후 경남 남해군 상주면 은모래비치 주차장에서 개최된 달집태우기 행사의 모습./ 뉴시스

◇ 중국, 일본, 베트남도 보름달은 ‘길조’

우리나라 이외의 대표적 농경국가인 중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권 타 국가들 역시 보름달을 ‘길한 징조’로 본다.

중국에서는 우리나라 추석과 같은 날인 음력 8월 15일에 ‘중추절’을 지내는데, 이날 중국인들은 온가족이 모여 둥근 달을 바라보고 고향 사람들을 생각하거나 가족의 화목함을 기원한다. 중추절의 또다른 말에는 ‘단원절(團圓節)’은 ‘아주 둥근 달이 뜨는 날’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또한 중추절을 맞이한 중국인들은 월병을 먹고 보름달을 구경하는 풍습도 있다. 중국의 전통과자 월병은 우리나라의 송편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둥근 달 모양으로 만들며, 팥, 과일, 견과류 등 다양한 소를 담고 있다. 월병의 경우 ‘복을 담아 먹는다’는 의미를 갖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일본의 경우에도 보름달과 관련된 명절인 ‘오봉절’을 쇤다. 다만 날짜는 한국, 중국과는 다르게 양력 8월 15일이다. 오봉절은 일본어로 ‘쓰키미(月見)’라고도 불리며, 툇마루에 당고(경단과 유사한 일본 음식)를 쌓아놓고 갈대로 장식한 뒤 보름달을 구경하는 풍습이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등 다른 동아시아권 국가들도 보름달을 행운의 상징으로 여겼다. 중국과 베트남의 경우 우리나라 추석과 동일한 명절인 중추절이 되면 보름달 모양의 과자 월병을 먹으면서 보름달에 가족간 화합과 안녕을 기도하는 풍습이 있다./ Getty images

중화권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베트남 역시 중국처럼 중추절을 쇠고 월병을 먹는다. 특히 베트남의 중추절은 아이들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기도 해 초롱·제등·랜턴 퍼레이드 등 다양한 어린이 축제를 개최한다. 우리나라의 ‘어린이날’이 베트남 아이들에겐 중추절인 셈이다. 성인들에게도  풍성한 수확의 기원, 자식의 장수와 축복, 가족과 친구간 화합 등을 의미한다.

이번 추석 밤하늘에 빛나는 보름달을 보자 ‘더도말고 덜도말고 한가위 같아라’라고 기도하던 조상들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코로나19, 자연 재해, 경제 침체 등으로 수많은 위기를 겪었기 때문에 유난히 힘든 한 해를 보내고 있기 때문인 듯 하다.

이에 과거 우리 조상들이 보름달을 바라보며 남은 한 해의 안녕을 기원했던 것처럼 보름달에게 올해 남은 날에는 좋은 일만 있기를, 모두 행복하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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