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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도망친 여자] 같은 말 반복하는 여자, 그의 진심은
2020. 09. 10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홍상수 감독의 신작 ‘도망친 여자’가 국내 관객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을까. /영화제작전원사
홍상수 감독의 신작 ‘도망친 여자’가 국내 관객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을까. /영화제작전원사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홍상수 감독의 24번째 장편 영화이자, 그의 연인 김민희와 7번째 호흡을 맞춘 영화 ‘도망친 여자’가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지난 2월 열린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은곰상 감독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던 ‘도망친 여자’가 국내 관객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을까.

‘도망친 여자’는 결혼 후 한 번도 떨어져 지낸 적 없었던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 두 번의 약속된 만남, 한 번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과거 세 명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 감희(김민희 분)를 따라가는 작품이다.

영화는 감희와 세 여성의 일상적이고 사소한 대화만으로 러닝타임이 채워지는데, 특별한 사건도 자극적인 이야기도 아니지만 공감을 일으키기도 하고,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하며 이들의 대화에 빠져들게 만든다.

‘도망친 여자’에서 만희를 연기한 김민희(위)와 영순으로 분한 서영화(아래 오른쪽). /영화제작전원사
‘도망친 여자’에서 만희를 연기한 김민희(위)와 영순으로 분한 서영화(아래 오른쪽). /영화제작전원사

결혼 후 5년 동안 한 번도 떨어져 지낸 적 없던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 감희는 세 명의 친구를 만난다. 처음 만난 친구는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순(서영화 분). 영순은 오랜만에 집으로 찾아온 감희 때문에 평소 마시지 않던 술도 많이 마시고, 채식주의를 지향하지만 고기도 많이 먹게 된다.

이런저런 사소한 얘기를 나누던 중 감희는 결혼생활을 묻는 영순에게 ‘사랑하는 사람은 무조건 붙어있어야 된다’는 남편과 하루도 떨어져 있던 적이 없다고 말한다.

다음 날 감희는 옛날에 함께 까불고 놀았던 친구 수영(송선미 분)을 찾아간다. 수영은 필라테스 강사로 일하며 큰돈을 저축했다. 예술가들이 모여 살고, 경치가 좋은 동네로 이사온 지 얼마 안 됐다. 그곳에서 재밌게 살고 싶다는 수영과 감희는 옛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최근 만난 수영의 ‘썸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짧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감희는 수영에게 “남편과 하루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무조건 붙어있어야 된다’는 남편의 말도 덧붙인다.

‘도망친 여자’로 관객과 만남을 앞두고 있는 송선미(위 왼쪽)과 김새벽(아래 오른쪽). /영화제작전원사
‘도망친 여자’로 관객과 만남을 앞두고 있는 송선미(위 왼쪽)과 김새벽(아래 오른쪽). /영화제작전원사

마지막 만남은 옛 친구 우진(김새벽 분)이다. 영화관람을 위해 찾은 곳에서 일하고 있는 우진과 우연히 재회한다. 우진은 감희에게 과거의 잘못을 사과한다. 몇 번이고 전하고 싶었던 말이다. 감희는 괜찮다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며 우진을 다독인다. 어색함이 사라진 두 사람은 서로의 결혼생활을 공유한다.

우진은 유명해진 남편이 위선적인 생각이 든다며 “같은 말을 반복하는 데 어떻게 진심일 수 있겠냐”고 한숨을 내쉰다. 감희는 본인은 남편과 하루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다며 “남편이 사랑하는 사람은 무조건 붙어있어야 된다고 했다”고 말한다.

아무 의미 없는 대화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의 고민과 진심이 담겨있다. 처음엔 내뱉는 그대로 받아들여졌던 감희의 말이 반복되면 될수록, 그녀가 얼마나 지쳤는지, 얼마나 도망가고 싶었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진심을 마주했을 땐 왠지 모를 통쾌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단순한 구성과 서사 속 서서히 커튼을 들추고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적 삶의 세계를 훔쳐보는 짜릿함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홍상수 감독의 특유의 위트도 재미를 더한다.

다만 이번 작품 역시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의 관계를 떠나 오로지 영화에만 집중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별거 중인 남자와 ‘썸’을 타며 “거의 헤어진 것 같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수영, 감희의 전 연인을 빼앗은 우진과 그의 사과를 (속은 어떨지 모르지만) 쿨하게 받아주는 감희 등의 대사와 상황들이 자연스럽게 두 사람을 떠올리게 하며 씁쓸한 웃음을 짓게 한다. 러닝타임 77분, 17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