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가기
웰다잉 시대와 과제
[웰다잉 시대와 과제②] ‘죽을 권리’ 찾는 사람 늘었다
2020. 10. 02 by 김희원 기자 bkh1121@sisaweek.com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웰다잉법’으로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웰다잉’을 위해서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게티이미지뱅크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웰다잉법’으로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웰다잉’을 위해서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최근 ‘웰빙(well-being)’에 이어 웰다잉(Well Dying)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우리나라의 웰다잉 현주소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살아온 삶을 정리하고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을 의미하는 웰다잉은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고독사 등 사회적 요인과 맞물려 등장한 개념이다. 넓게는 무의미한 연장치료를 거부하는 존엄사를 포함하는 개념으로도 사용된다.

<시사위크>는 웰다잉에 관심이 쏠리는 만큼 웰다잉을 위한 사회적 여건은 어느 정도 마련돼 있는지 짚어봤다.

제도적으로는 현재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돼 시행되고 있다. ‘웰다잉법’ 혹은 ‘존엄사법’이라 불리는 이 법의 정식 명칭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며 지난 2016년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호스피스 분야는 2017년 8월 4일, 연명의료 분야는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됐다.

‘연명의료결정법’의 목적은 호스피스‧완화의료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와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과 그 이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자기 결정을 존중하기 위함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된 것은 지난 2008년 당시 뇌사상태였던 70대 김모 할머니의 가족과 병원 사이에 분쟁이 일어난 ‘김 할머니 사건’이 계기가 됐다. 대법원은 연명의료를 중단하라고 판결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2012년부터 정부에서 연명의료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이 가능하게 됐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지난 2016년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호스피스 분야는 2017년 8월 4일, 연명의료 분야는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됐다./뉴시스
‘연명의료결정법’이 지난 2016년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호스피스 분야는 2017년 8월 4일, 연명의료 분야는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됐다./뉴시스

◇ ‘웰다잉법’ 시행 후 2년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19세 이상 성인이면 건강한 사람도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을 찾아가 충분한 설명을 듣고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과 호스피스에 관한 의사를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미리 작성해 둘 수 있다.

말기 환자 또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는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과 호스피스에 관한 사항을 계획해 연명의료계획서를 쓰면 된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돼 있는 의료기관에서 담당의사 및 전문의 1인에 의해 말기 환자나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로 진단 또는 판단 받으면 담당의사가 작성하게 된다.

또 환자가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상태인 경우 충분한 기간 동안 일관되게 연명의료 중단 등에 관해 의사를 표시했다는 환자가족 2명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이 있으면 연명 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고 환자가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상태인 경우에는 가족 전원의 합의로 연명치료 중단이 가능하다.

이 같은 내용의 연명의료결정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지 2년이 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관련법 시행 사실이 일반 대중들에게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제도 정착을 위해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등 관련 내용을 더욱 더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09년 처음으로 존엄사법을 발의했던 신상진 국민의힘 전 의원은 2일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서 건강한 사람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미리 작성할 수 있지만 모르는 국민들이 많다”며 “연명의료결정법 정착을 위해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는 등록기관에 접근성을 좋게 해줘야 하고 공익광고 등을 통해 이런 제도가 있다는 것을 더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 수 현황/그래픽=이현주 기자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현황/그래픽=이현주 기자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 따르면,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초기인 2018년 3월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 수가 1만1,204명에 불과했으나 이후 꾸준하게 늘어 2018년 12월 8만6,691명, 2019년 12월 53만2,667명, 2020년 8월에는 69만1,141명을 기록했다.

이와 관련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관계자는 “지난해 12월까지 통계청 집계 2019년 12월 기준으로 전국 19세 이상 인구수의 1.23%에 해당하는 수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면서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사람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 수가 크게 상승세를 타지 못하고 주춤한 상황이다”며 “코로나19가 안정되면 다시 확산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고 밝혔다.

웰다잉을 위해서는 연명의료에 대한 결정 뿐만 아니라 재산 처분과 장기 기증, 장례 방식 등에 대한 결정을 포괄하는 내용의 관련법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웰다잉시민운동 공동대표인 원혜영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와 관련해 “웰다잉 문화를 정착하고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국가 정책이 필요하다”며 “연명의료에 대한 결정 뿐만 아니라 내 재산에 대한 결정, 장기 기증과 화장이나 매장 등 장례에 관한 결정 등을 모두 포괄적으로 보장하고, 이를 정확하고 알기 쉽게 실행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진정한 웰다잉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자살 문제, 노인 빈곤 문제, 고독사 등의 해결이 급선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18년 9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이웃살피미’ 관계자들이 고독사 예방의 일환으로 주민들이 어려운 이웃을 동주민센터에 알리거나 스스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사이 우체통’을 설치하고 있다./뉴시스
진정한 웰다잉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자살 문제, 노인 빈곤 문제, 고독사 등의 해결이 급선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18년 9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이웃살피미’ 관계자들이 고독사 예방의 일환으로 주민들이 어려운 이웃을 동주민센터에 알리거나 스스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사이 우체통’을 설치하고 있다./뉴시스

◇ ‘자살‧고독사‧노인 빈곤’ 심각한 사회 문제 

웰다잉이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지만 현실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자살 문제, 노인 빈곤 문제, 고독사 등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상황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 노력이 선행되지 않는 한 웰다잉의 길은 멀고도 험한 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살 문제의 경우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중 1위를 기록하는 오명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 결과 자살은 전체 인구의 사망 원인 5위를 기록했다. 특히 10대부터 30대의 사망 원인은 자살이 1위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가구 형태는 1인 가구이고 올해는 그 비중이 30%까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인 가구 증가로 인한 고독사도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다.

노인 빈곤 문제의 경우 통계청의 ‘2018 고령자통계’에 의하면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3.7%로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 빈곤 문제는 경제적 문제 해결을 위한 제대로 된 빈곤 대책이 필요하다”며 “자살, 고독사 등은 주변과의 단절이 직접적 문제 중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지역 사회에서 긴밀한 관계 복원이 가능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고독사의 경우 주변에 소외되다보면 그런 지경에 이르게 될 동안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되기 때문에 체념하고 끈을 놓지 않도록 제도적 구조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