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9 02:53
[김재필 '에세이'] H에게- 의사 집단휴진에 대한 소고
[김재필 '에세이'] H에게- 의사 집단휴진에 대한 소고
  • 김재필 사회학 박사
  • 승인 2020.09.2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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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장자』잡편 「서무귀(徐无鬼)」에는 조그마한 재주를 뽐내며 오만하게 굴다가 죽은 원숭이 우화가 나오네. 먼저 그 이야기를 요약하면, 오나라 왕(吳王)이 뱃놀이를 갔다가 원숭이들이 많은 산에 올라갔지. 오왕 일행을 본 원숭이들은 모두 깊은 숲 속으로 숨었지만, 한 마리 원숭이만 도망가지 않고 왕 앞에서 나뭇가지를 잡고 오르내리면서 자신의 재주를 뽐냈네. 왕이 활을 쏘자 날아오는 화살을 재빠르게 잡아 왕에게 던지기도 했지. 화가 난 왕이 옆에 있는 시종들에게 서둘러 활을 쏘라고 명령하자 아무리 날쌘 원숭이인들 집중사격을 피할 수는 없었네. 잔재주 믿고 까불다 쏟아지는 화살에 맞아 죽을 수밖에. 그러자 왕은 친구인 안불의(顔不疑)를 돌아보면서 말하네. “이 원숭이는 자신의 재주를 믿고 내 앞에서 오만을 부리다가 이렇게 죽게 되었네. 조심하게나. 자네도 남에게 오만하게 굴지 말게나.”

개인이든 집단이든 교만하거나 아집에 빠지면 판단력이 흐려져 무리한 행동을 하게 되네. 그러다가 끝에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되지. 지난 8월 정부 여당의 4대 의료 정책(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한방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비대면 진료 육성)의 전면 철회를 요구하며 시작했던 의사단체들의 집단 휴진과 그들이 내세운 반대 이유를 접하면서 『장자』에 나오는 저 원숭이가 생각났네. 자신들의 행동이 얼마나 반사회적인지도 모르고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불법적인 집단행동을 하는 의사들의 모습이 저 원숭이처럼 무모하고 오만하게 보였거든. 코로나19로 공공의료를 강화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에 따라 시작했던 정책을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라고 낙인찍는 것을 보면서는 지난 총선에서 대패한 미래통합당이 떠올랐어. 개인이든 집단이든 변하지 않으면 도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교 1등만 했다는 사람들이 왜 모르는지.

의대생부터 의대교수들까지 왜 의사집단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일반 국민들에게 오만하게 보인다는 것을 모를까? 왜 그들은 시대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아직도 중고등학생 의식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들이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진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는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소에서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홍보물을 보면 알 수 있네.

“당신의 생사를 판가름 지을 중요한 진단을 받아들여야 할 때, 의사를 고를 수 있다면 둘 중 누구를 선택하겠습니까? A.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 B. 성적은 한참 모자르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

학창시절 전교 1등만 했다는 의사들의 사고가 참 이기적이고 고리타분하지 않는가? 일흔 살을 바라보고 있는 노인의 귀에도 매우 거칠게 들리는 시대착오적인 이분법적 사고일세. 어렸을 때 공부 잘했던 학생이 나중에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훌륭한 의사가 되었다는 소리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네. 반대로 학교 다닐 때 교과서 달달 외워 1등만 하다가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은 모르고 돈만 아는 마음이 죽어버린 의사들은 자주 봤지. 의사시험을 거부한 제자들의 잘못을 엄하게 나무라기는커녕 그들에게 추가시험을 보장하지 않으면 집단행동도 불사하겠다고 협박하는 의대 교수들이나 의사국시를 보기 위해서 국민들에게 왜 양해를 구해야 되는지 아직도 모르는 의대생들 모두 이미 마음이 죽은 사람들이야.

의사단체들의 독선적이고 몰염치한 행동을 보면서 ‘학이불사즉망, 사이불사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는 공자의 말씀이 옳다는 걸 다시 확인했네. 누구든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어. 여기서 어둡다(罔)는 말은 아무리 많이 배워도 얻음이 없다는 뜻이야. 전교 1등만 했지 함께 사는 법을 배우지 않았으니 아직 유아기적 사유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지. 그런 사람들이 단체로 떼를 쓰고 있으니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위태로울 수밖에 없는 거고.

아직도 구태의연한 엘리트주의와 능력주의의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의사들과 의대생들에게 마종하 시인의 <딸을 위한 시>를 읽어주고 싶네.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 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가를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