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출신 태영호·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8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에 출석한 모습. /뉴시스
탈북민 출신 태영호·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8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에 출석한 모습. /뉴시스

시사위크=정호영 기자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국내 탈북민 역사에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평안남도 평양 출신으로 전 주영(駐英)북한공사를 지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탈북민 최초로 지역구(서울 강남갑)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앞서 탈북민 조명철 전 의원이 19대 국회에 입성하긴 했지만 지역구가 아닌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비례대표 당선이었다. 태 의원의 당선은 탈북민도 지역구 선거를 뛰며 유권자 표심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국내는 물론 북한 정권에도 알린 계기가 됐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 탈북민으로 국내에서 북한인권청년단체 나우(NAUH)를 운영하던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도 21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8년 만에 배출된 탈북민 비례대표 2호다.

약 3만명 규모의 국내 탈북민들의 국회의원 도전은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됐지만 12년간 단 3명을 배출하는 데 그쳤다. 그만큼 탈북민에게 국회 진입 문턱은 높았다. 탈북민들이 태영호·지성호 의원의 21대 국회 의정활동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 경솔 발언으로 호된 신고식

두 의원은 당선 직후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지난 4월에서 5월에 걸친 북한 김정은 건강 이상설 관련 경솔 발언 때문이다.

당시 김정은이 집권 이후 처음으로 태양절 금수산태양궁전 참배에 불참하자 태 의원은 지난 4월 27일 언론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 신변에 이상이 생긴 것은 맞다”며 “15일 태양절 참배에는 무조건 나와야 하는데 사진 한 장 찍지도 못 했다는 것은 일어설 수 없는 상태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지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가 김정은 사망설을 주장했다. 지 의원은 지난 5월 1일 내부소식통을 근거로 언론 인터뷰를 통해 “김정은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99% 확신한다”고 단정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조선중앙방송·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에서 김정은의 건재한 모습이 공개되자 ‘가짜뉴스 유포'라는 역풍에 직면했다. 정부여당은 두 의원을 비판했고 당에서도 질책의 목소리가 나왔다. 두 의원은 일제히 사과문을 내고 유감을 표명했다.

태영호·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이 총선 전인 지난 4월 10일 서울 강남구갑 태영호 선거사무소를 방문한 모습. /뉴시스
태영호·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이 총선 전인 지난 4월 10일 서울 강남구갑 태영호 선거사무소를 방문한 모습. /뉴시스

◇ 북한 인권·대북이슈 주도

국민의힘이 총선을 앞두고 탈북민 출신 두 인사를 영입한 이유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외교·정책 검증 및 북한 정세 변화의 신속하고 정확한 분석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처참한 북한인권 실상을 국민에 알리고 사각지대에 놓인 탈북민 인권도 살펴야 하는 과제도 있다. 이들은 영입 취지대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로 배정됐다.

태 의원은 지난 2월 11일 출마 기자회견에서 “현재 대북정책과 통일정책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정부 통일 정책이 무조건적 퍼주기나 대립 구도가 아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진정한 평화통일 정책이 입안되고 실천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 의원도 지난 1월 인재 영입식에서 “탈북 모자 아사, 북한 선원 2명 강제북송 사건을 겪은 뒤 인권활동가로서 제도권 역할도 염두에 뒀다”며 “인권 문제에 내일은 없다”는 포부를 밝혔다. 국민의힘은 지 의원에게 북한 인권 및 탈북·납북자위원장을 맡겼다.

국회 입성 이후 두 의원은 다양한 의정활동을 진행 중이다. 북한 정권 견제·탈북민 인권 제고를 위한 입법 활동은 물론, 유튜브·소셜미디어 등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태 의원은 구독자 24만 명 규모 유튜브 채널 ‘태영호 TV’를 운영하며 대북 문제 뿐 아니라 의정활동 전반을 공개하며 소통하고 있다. 페이스북에서도 ‘태영호의 킬포(킬링 포인트·Killing Point)’라는 연속 칼럼을 통해 대북 현안을 다루고 있다.

지 의원은 임기 시작과 동시에 의원실을 ‘북한이탈주민 권익센터’로 탈바꿈해 탈북민 고민을 청취하고 있다.

지 의원은 지난 9월 6일 페이스북을 통해 “(센터는) 지난 100일간 민원 21건을 처리하고 탈북민 지원제도의 사각지대를 찾아 제도개선 35건을 추진 중”이라며 “앞으로도 탈북민 정착과 권익보호를 위한 활동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적었다.

입법활동 관련 태 의원은 9월까지 31개 법안을, 지 의원은 3개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태 의원의 북한 관련 주목할 만한 법안은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다. 북한 개성공단에 있는 우리 건축물을 폭발물로 파손시키면 최대 10년 징역에 처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지난 6월 16일 북한 정권의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기습 폭파를 겨냥한 것이다.

지 의원은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여성 탈북민이 원할 경우 여성 신변 보호 담당관을 우선 배정하는 게 내용의 골자다. 일부 남성 보호관에 의해 상습 성추행을 당한 여성 탈북민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자 관련 입법으로 탈북여성 인권보호에 나선 것이다.

두 의원이 영입 취지대로 원내에서 대북 관련 미세한 변화를 만들어가는 모습이지만, 임기 초반인 만큼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날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탈북민 두 분이 국회에 들어갔다 해서 북한인권이 제고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한국에서 불이익을 받는 탈북민을 대변하게끔 한 것이 영입 취지다. 다양한 계층이 국회에 들어오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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