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권.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는 말이다. 누구나 당당하게 누려야 할 권리지만 교통약자인 장애인들의 손에는 쉽게 잡히지 않는 권리다. 거리의 각종 높은 턱과 취약한 교통수단은 이들의 자유롭게 거리를 다닐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기 일쑤다. 2005년 ‘교통약자의 이통편의 증진법’이 제정된 후,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시스템이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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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약자 이통편의 증진법’이 제정된지 15년째를 맞이했지만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은 갈 길이 먼 모습이다. 추석 명절 기간의 이들의 이동을 더욱 제한될 것으로 보여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민족 대이동의 시기인 추석 명절이 찾아왔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고향을 찾는 인구가 줄었지만, 그래도 귀향객들의 행렬은 적잖게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자동차, 버스, 열차, 비행기 등 저마다의 이동 수단을 타고 고향으로 향하고 있다. 그런데 장애인들에겐 올해도 이러한 고향방문이 쉽지 않다. 

◇ 고향 방문 포기하는 장애인들… 코로나·불편한 대중교통 ‘발목’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는 올해 추석 명절에 고향 방문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뉴시스

“올해는 고향을 방문하지 않기로 했어요.”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는 <시사위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명절 계획을 묻자 올해 추석엔 고향 방문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박김 대표는 강원도 동해시를 고향을 두고 있다. 3세에 소아마비를 앓은 뒤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된 그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다. 고향 방문을 포기한 배경엔 우선 ‘코로나19’ 사태가 자리 잡고 있다. 

박김 대표는 “대면 접촉을 최소화해야 하는 시기인 만큼 올해 추석엔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사태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장애인들에겐 먼 거리에 있는 고향 방문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 전했다. 특히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에겐 더욱 힘겨운 일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휠체어 장애인들이 시외로 이동할 수 있는 대중교통수단은 크게 기차, 고속버스, 비행기로 나눠진다. 장애인단체들은 이 중 열차의 경우, 그나마 접근성이 개선되고 있지만 고속버스와 비행기 이용에 불편함이 많다고 보고 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최근 본지와의 만남에서 “열차 중 KTX는 그나마 휠체어 장애인들이 이용 편의성이 개선이 되고 있다”며 “다만 고속버스는 지난해에야 겨우 휠체어 장애인들의 접근이 가능해졌을 정도로 척박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고속버스는 일반인들이 가장 손쉽게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하지만 휠체어 장애인들에겐 한때 접근조차 어려운 교통수단이었다. 휠체어 탑승 설비를 장착한 고속·시외버스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장애인단체들은 수년간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고속버스의 도입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매년 명절을 앞두고 “우리도 고향에 버스 타고 가고 싶다”는 구호를 외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의 오랜 염원은 지난해 10월에야 이뤄졌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0월 28일부터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고속버스를 시범운영한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지난 2017년부터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고속·시외버스 표준모델과 운영기술의 개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끝에, 지난해 운영을 시작했다. 

운영 노선은 서울~부산, 서울~강릉, 서울~전주, 서울~당진 등 4개다. 시범 운행되는 휠체어 탑승 설비 장착 고속버스는 10개 버스업체가 1대씩 버스를 개조해 버스 당 휠체어 2대를 실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 ‘휠체어 탑승 가능’ 고속버스 운영 1년… 운영 노선·편의성 개선 ‘지지부진’ 

다음달이면 ‘휠체어 탑승 가능’ 고속버스가 운영을 시작한 지 1년째를 맞이한다. 하지만 이러한 고속버스가 장애인들에겐 편리한 교통수단으로 자리잡기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국토부는 당초 시범운행을 통해 도출되는 문제점에 대해 버스업계, 장애인단체 등과 협의해 보완해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1년이 지난 현재, 크게 개선된 점을 찾기 어렵다는 게 장애인단체들의 지적이다. 

박경석 대표는 “휠체어 탑승 가능 고속버스가 운영된지 1년이 지났지만 노선이나 운영대수가 크게 확대되지 않다”며 “국토부는 이용률이 적다는 이유로 도입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지 않다. 현재는 지난해에서 한 발짝도 진전되지 않은 답보 상태다. 이용률이 낮다면 왜 이용률이 낮은지, 어떤 불편함이 있는지부터 살피고 개선점을 찾아야 함에도 정부는 무관심한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올해 휠체어 탑승 고속버스의 이용률이 낮은 배경엔 우선 코로나19 이슈가 자리잡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감염 우려로 이동이 제한되면서 이용률이 저조했을 것이라는 평가다. 여기에 한정적인 운영 노선과 연계 교통수단의 부족, 불편한 터미널 환경 등도 이용률을 낮춘 배경으로 거론된다. 

올해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고속버스를 타본 김민석(가명) 씨는 장애인들의 교통 편익을 증진시키기 위해선 “여러 가지 문제를 고려해야 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그는 “도입 초기인 만큼, 여러 불편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차량 탑승까지 대기 시간도 길었고, 운영 노선과 시간대도 적어 이용에 불편함이 있었다. 또 휠체어가 고정하되긴 했지만 차량 운행 시 흔들림도 상당해 매우 피곤함을 느꼈다”고 탑승 당시 경험을 회상했다. 

지난해 10월 28일부터 휠체어 탑승 고속버스가 운영을 시작했다. 사진은 당시 해당 고속버스를 시승한 장애인이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 /뉴시스

그런데 그에게 가장 불편함을 느끼게 한 것은 버스 자체만의 문제점이 아니라고 했다. 그보다는 버스를 타고 도착한 이후에 더 많은 불편함을 마주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일부 터미널의 경우, 가장 중요한 화장실 이용조차 불편했다”며 “화장실 공간이 좁아서 휠체어가 들어가지 않아 매우 당혹스런 경험을 했다”고 전했다. 

또 터미널에 나와서 이동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지방은 서울과 달리, 저상버스의 보급률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저상버스는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탄 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오를 수 있도록 차체 바닥이 낮고 출입구에 계단 대신 경사판이 설치된 버스를 일컫는 말이다. 

◇ 대중교통 간 연계 시스템 미진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희국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전국 저상버스 보급률은 28.4%로 집계됐다. 지역별 보급률은 서울이 56.4%로 가장 높았다. 이어 강원(35.9%), 대구(34.5%), 대전(31.5%) 순으로 나타났다. 충남은 10%로 보급률이 가장 낮았다. 이처럼 지역 간 저상버스 보급 편차는 매우 큰 상황이다. 

장애인단체들은 지방으로 갈수록 교통수단 간의 연계 시스템이 미진한 실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기도 쉽지 않았다고 김씨는 토로했다. 김씨는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에 도착해 장애인 콜택시를 부르려고 했더니, 등록된 장애인이라고 아니라고 이용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미리 콜센터에 연락해 등록을 해야, 타 지역의 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버스 문제만 개선할 것이 아니라, 터미널과 교통수단 연계 문제도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박김영희 대표도 교통수단 간 연계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봤다. 박김 대표는 “제한적이지만 장애인도 고속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의미가 있다”며 “이런 버스가 운영됨으로써 장애인들의 이동권 관련된 다양한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논의해볼 수 있다고 본다. 리프트 버스와 다른 교통수단을 효율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시스템이 확충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올해 명절엔 많은 장애인들의 이동이 더욱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이슈로 이동이 조심스러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향에 대중교통을 타고 맘 편히 가고 싶다”는 이들이 간절한 소망이 꺾인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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