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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노래방
[벼랑 끝 노래방②] “IMF보다 더해, 30년 만에 처음 겪는 위기”
2020. 10. 02 by 범찬희 기자 nchck@naver.com

대한민국 사회와 함께 동거동락 해온 노래방이 벼랑 끝에 몰렸다. 학창시절 우정을 다졌던 추억의 공간이자 직장인들에게는 해우소 역할을 해 온 노래방이 코로나19 앞에서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에 놓였다. 업계에선 정부가 친대중적 유흥시설로 오랜 세월 한국인의 여가 생활을 책임져 온 노래방에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 정책, 문제는 없을까. [편집자주]

​​청계대림상가 내에 위치한 C미디어 업체의 한 쪽 벽면을 수리 후 찾아가지 앰프가 차지하고 있다. 을지로 일대에서만 30년을 보냈다는 이모 대표는
​​청계대림상가 내에 위치한 C미디어 업체의 한 쪽 벽면을 수리 후 찾아가지 않은 앰프가 차지하고 있다. 을지로 일대에서만 30년을 보냈다는 이모 대표는 "IMF때도 이렇지는 않았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 범찬희 기자​​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상가 한 바퀴 돌면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명성을 떨쳤던 을지로 세운상가 일대를 대표하는 품목 중 하나가 바로 노래방 기기다. 조명거리, 공구상가, 인쇄소 등 을지로 하면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에서 노래방 기기가 밀려나 있는 배경에는 지정학적 원인이 자리잡고 있다. 명동과 동대문을 잇는 번잡한 대로변에 적잖은 조명가게와 공구점들이 노출돼 있는 것과 달리, 노래방 기기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업체들은 행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상가 내부에 둥지를 트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2일 현장을 찾은 기자가 코로나19로 얼어붙은 업계 상황을 체감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노래방의 메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상가 내부는 한가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통로와 점포 안에 켜켜이 쌓여있는 앰프와 스피커 등 관련 기기들만이 공간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산업 현장에서 으레 목격하기 마련인 물건을 실어 나르는 광경도, 좁은 통로를 두고 그 흔한 택배 종사자와 스칠 일도 없었다.

세운상가에서 비교적 목 좋은 곳에 위치해 있는 M사운드 관계자는 “예전에는 1년에 1~ 2번 꼴로 왔던 폐업 문의가 요즘에는 한 달에 3~ 4통씩 오고 있다”면서 “방송용 장비를 주로 다루는 우리 가게가 이정도니 건너편 노래방 전문 업체들 쪽은 더 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오래된 기기를 사용해 온 동네 노래방들 타격이 더 큰 것 같다. 홍대처럼 시설이 그나마 좋고 젊은 손님들을 상대하는 곳은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얼어붙은 노래방 메카꼭두새벽 투잡으로 연명

서울 을지로 대림상가 내부의 한 노래방 기기 전문점 안에 유통되지 않은 반주기와 앰프 등이 가득히 쌓여 있다. / 범찬희 기자
서울 을지로 대림상가 내부의 한 노래방 기기 전문점 안에 유통되지 않은 반주기와 앰프, 스피커 등이 가득히 쌓여 있다. / 범찬희 기자

인근 대림상가에서는 코로나19로 시름에 젖은 노래방 업계의 목소리를 더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몇 년 전부터 ‘힙지로’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을지로3가역 주변을 지근거리에 두고 있는 대림상가는 노래방과 오락기에 특화된 곳이다. 업계 1위 기업인 TJ미디어의 간판을 단 대리점만 수 곳에 이른다. 대한민국의 유흥과 오락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대림상가의 풍경 또한 앞서의 세운상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운-청계-대림상가에서만 30년의 시간을 보냈다고 밝힌 C미디어의 이모 대표는 “갤러그 오락기를 만들던 시절부터 이렇게까지 힘든 적은 없었다. IMF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며 “코인노래방 하나가 문을 닫으면 40~50방이 나오는데 기계를 매입할 여력도 없다. (기계를) 사가는 데가 없으니 헐값에 나오는 매도 물량을 다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이 대표는 가게 벽면에 진열된 앰프들을 가리키며 “노래방이 문을 열지 못하니 수리를 맡겨놓고 두 달 넘게 찾아가질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월세만 1,500만원에 달하는 홍대 같은 곳에서 10억 까먹는 건 금방이다. 지인 중 한 명은 한 달에 2,000~3,000만원씩 손해를 보고 권리금 4억을 날렸다. 하지만 계약기간이 1년 넘게 남아있어 쉽게 접지도 못하고 있다”며 씁쓸해 했다. 이어 이 대표는 “우리 가게는 딜러 업무도 보고 있어 노래방에 신곡도 넣고 있는 데 거래처에 미안해서 돈 달라 소리도 못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매달 이뤄지는 노래방 신곡 업데이트는 직영 대리점수의 한계로 인해 딜러(유통업자)의 힘을 빌리고 있다.

◇ 100일째 문 닫은 코인노래방… 연관 업종도 타격

노래방이 방역상 고위험시설에 묶여 사실상 영업정지 조치가 내리지게 되면서 지폐교환기 등 연관 기기들의 판매도 감소하고 있다. / 범찬희 기자
노래방이 방역상 고위험시설에 묶여 사실상 영업정지 조치가 내리지게 되면서 지폐교환기 등 연관 기기들의 판매도 감소하고 있다. / 범찬희 기자

업계가 처해 있는 현실을 기자에게 상세히 들려준 이모 대표는 어려워진 가게 사정으로 인해 현재 투잡을 뛰고 있다. 꼭두새벽 식자재 배달 일을 하며 손실을 보존하고 있다. 그는 “추미애 장관 아들 문제로 싸우고 있는 정치권을 보면 피곤할 뿐이다. 10월도 기대를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가 내 또 다른 노래방 기기 업체 대표는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하면 기계 돌아가는 게 10%도 안 된다. 노래방들은 그마나 200만원씩 지원해 준다고 하는 데 여긴 그런 것도 없다”면서 “풀었다 조였다하지 말고 정부가 일정 기간 강력하게 묶은 뒤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노래방이 방역상 고위험시설에 묶이면서 연관 업종도 타격을 받고 있다. 코인노래방 필수 시설인 지폐교환기 판매도 줄었다. 지폐교환기 전문 업체 관계자는 “3월 이후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지금은 작년 대비 70% 매출이 빠졌다. 코인노래방 쪽 주문은 전혀 없다. 1~ 2대씩 나가던 오락기도 뚝 끊겼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