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미정 기자  “가자, 20년!”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때 아닌 건배사 논란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22일 중구 웨스턴조선호텔에서 열린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전 당대표 전기 ‘나의 인생 국민에게’ 발간 축하연에서 집권 여당의 장기집권을 기원하는 건배사를 했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이날 이 회장은 이 전 대표를 향해 “당 대표를 맡아 정말 많은 일을 하셨다”며 운을 뗀 뒤 “저한테 가장 절실하게 다가온 말 중 하나는 ‘우리가 20년 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민주 정부가 벽돌 하나하나 열심히 쌓아도 그게 얼마나 빨리 허물어질 수 있는지 봤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저희는 ‘나의 인생 국민에게’라는 이 전 대표와 한마음으로 좋은 나라, 위대한 나라, 일류국가를 만든다는데 합심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제가 ‘가자!’고 외치면 모두가 ‘20년!’으로 답해달라”라는 건배사를 제안했다.  

이 전 대표는 지난 8월까지 더불어민주당의 당 대표를 맡은 여권 내 거물급 정치인이다. 이날 자리엔 박병석 국회의장, 이낙연 민주당 대표 등 여권 주요 정치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 회장의 발언은 곧바로 논란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민주당 20년 집권론’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야권에선 금융공공기관장으로서 정치적 중립이 지키지 못했다며 날선 비판에 나섰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비상대책회의에서 “정치적 중립을 엄격히 지켜야 할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에 대해 엄격한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하면서 파장이 커졌다.

논란이 커지자 이 회장은 고개를 숙였다. 이 회장은 23일 산업은행 해명 보도자료를 통해 “사려 깊지 못한 발언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고별의 자리라는 성격을 감안해 정치원로의 노고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한 건배사로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었다. 앞으로 발언에 더욱 신중을 기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산업은행 회장에 선임될 당시, ‘친정부 인사’라는 꼬리표가 붙었던 인사다. 그는 진보성향의 금융전문가로인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캠프 비상경제대책단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 또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노무현 정부 시절엔 대통령직인수위원, 금융감독원 부위원장 등을 역임해 진보정권 시절 요직을 맡기도 했다. 이 때문에 친여권 인사로 분류되기도 했고, 그가 선임될 당시엔 낙하산 논란도 적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그의 이번 건배사 발언도 단순한 덕담이 아닌,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있는 모양새다. 

옛 속담에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의심을 살만한 행동은 애당초 하지 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회장의 건배사 논란은 이 같은 격언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발언의 의도가 설령 그렇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시국이 엄중한 시점에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킨 것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이 회장은 최근 연임이 확정돼 집권 2기차를 시작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제가 휘청이고 있는 시국에 정책금융 기관장으로서 마주한 과제는 무겁다. 무거운 책임만큼 신중한 행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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