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지원이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CJ엔터테인먼트
배우 하지원이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CJ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아프고 지친 순간도 있었다.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힘든 순간도 많았다. 그럼에도 묵묵히 걸어올 수 있었던 건 미치게 만들 만큼 가슴 뛰게 하고, 끊임없이 도전하게 할 만큼 좋아했기 때문이다. 배우 하지원이 24년 동안 우리 곁에 있는 이유다.

하지원은 1996년 데뷔한 뒤 천만 영화 ‘해운대’(2009)부터 드라마 ‘다모’(2003) ‘발리에서 생긴 일’(2004) ‘시크릿 가든’(2010~2011) 등 수많은 히트작을 탄생시키며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모두 사로잡았다.

특히 하지원은 현대극과 사극은 물론, 로맨틱 코미디부터 멜로, 스릴러, 액션까지 전 장르를 아우르는 탄탄한 연기로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매 작품, 다채로운 변신을 꾀하며 오랜 시간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엔 눈물 콧물 쏙 빼는 휴먼 코미디 장르로 돌아왔다. 지난달 29일 개봉해 추석 극장가를 사로잡은 영화 ‘담보’(감독 강대규)를 통해서다. ‘담보’는 인정사정없는 사채업자 두석(성동일 분)과 그의 후배 종배(김희원 분)가 떼인 돈을 받으러 갔다가 얼떨결에 9살 승이(박소이 분)를 담보로 맡아 키우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하모니’(2010) 강대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 ‘목숨 건 연애’(2016) 이후 4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그는 보물로 잘 자란 어른 승이로 분해 사랑스러운 모습부터 밀도 높은 감정 연기까지, 완벽 소화하며 극에 깊이를 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시나리오를 읽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는 하지원의 진정성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 관객의 마음을 제대로 흔들었다.

하지원이 영화 ‘담보’(감독 강대규)로 관객과 만났다. /CJ엔터테인먼트
하지원이 영화 ‘담보’(감독 강대규)로 관객과 만났다. /CJ엔터테인먼트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하지원은 “늘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다”면서 여전히 식지 않은 열정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담보’에서 느낀 감동을 관객들과 공유하고 싶었다”며 오랜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소감을 전했다. 연기와 캐릭터, 그리고 작품을 사랑하는 하지원의 마음은 그가 지금까지 배우로 살아온 원동력이었다.

-오랜만의 스크린 복귀다. 기분이 어떤가.
“사실 이렇게 오래된지 몰랐다. 늘 관객을 만날 때는 설레고 떨린다. 이번에도 같다. 떨리고, 설렌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느낀 감정 그대로 영화가 잘 나왔더라. 많은 분들이 와서 봐주셨으면 좋겠다.”

-스크린 복귀작으로 ‘담보’를 택한 이유가 있다면.
“윤제균 감독(제작 참여)의 전화가 왔다. ‘담보’라는 작품이 있는데 어른 승이 역을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영화의 처음과 끝부분을 열어주는 역할이고, 사람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느낌이 중요하다고 설명해 줬다. 미리 이야기를 듣고 시나리오를 봤는데, 내가 느낀 감정들과 영화의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공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참여하게 됐다.”

-승이의 삶이 아픈 부분이 많아 연기하면서 감정적으로 힘들었을 것 같다.
“정말 많이 힘들었다. 승이의 감정이 깊고 세고 아팠다. 그래서 정말 힘들었고, 엄마를 만나는 신이 첫 촬영이었는데, 첫 촬영부터 힘들더라.(웃음)”

-촬영이 끝나고도 울음이 멈추지 않았던 장면도 있었다고.
“마지막 장면이다. 재촬영했다. 연기적인 부분 때문은 아니고, 공간의 느낌 때문에 다시 촬영하게 됐다. 한 번 쏟아낸 감정을 시간이 지나서 다시 꺼낸다는 것이 되게 힘든 일이다. 이미 기억된 메모리가 있기 때문에 새롭게 감정들을 표현하는 게 힘든 일이라, 걱정도 많이 하고 촬영하면서도 힘들었다. 테이크도 여러 번 갔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거다. 그래서 우주에 내가 혼자 있는 것처럼 다 지웠다. 슬픈 감정도 없이,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는 느낌으로 찍었다. 가끔 연기를 하다 보면 감정이 제어가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지점까지 가다 보니 눈물이 너무 많이 흘렀다. 분위기가 갑자기 이상해 지더라. 하하. 중요한 신인데 감정이 나와 다행이었다.”

하지원이 연기를 향한 뜨거운 열정을 드러냈다. /CJ엔터테인먼트
하지원이 연기를 향한 뜨거운 열정을 드러냈다. /CJ엔터테인먼트

-어린 승이 역의 아역배우 박소이와 함께 2인 1역을 소화했는데, 승이의 감정을 공감하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
“어린 승이의 연기를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 그때 겪은 그런 일들이 사실 엄청난 일들이잖나.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두석이 승이를 구해주고, 얼마나 많은 사랑을 줬나. 그런 게 다 느껴졌다. 사채업자를 떠나 따뜻한 사람들이지 않나. 평범한 가정은 아니지만, 특별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승이가 더 당당하게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을 거다. (승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조금씩 몽타주로 보여주는데 되게 울컥했다. 아직 어리지만, 아빠보다 더 아빠를 감싸주고 이미 어른의 마음을 다 알고 있잖나. 그렇게 자란 승이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박)소이가 갖고 있는 에너지가 나와 비슷하더라. 밝고 에너지가 넘치고 현장에서 엄마를 찾지도 않고 잘 즐긴다. 둘이 갖고 있는 기본 성격이 비슷하다 보니, 밝음이나 슬픔 이런 에너지도 너무 감사하게 닮았던 것 같다. 소이가 찍은 장면을 보면서 어떻게 슬퍼했고 어떤 감정을 표현했는지 계속 체크했다. 또 성동일 선배와 김희원 선배가 이 아이와 촬영을 해왔기 때문에 어른 승이와도 균형을 잘 맞출 수 있었던 것 같다.”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을 것 같은데.
“살면서 내가 가장 의지할 수 있고 나를 지켜주는 존재가 가족이다. ‘담보’를 통해 더 많이 느꼈다. 어떤 조건도 없이 날 위해 싸워줄 수 있고 보호해 줄 수 있는 존재이지 않나. 이 영화를 통해 더 많이 느끼게 된 것 같다.”

-국민아빠 성동일의 ‘개딸’이 된 소감은.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딸로 호흡을 맞추게 돼서 너무 좋았다. 대단한 힘을 갖고 계신 것 같다. 그냥 같이 섰는데 이미 아빠라고 느껴질 만큼 나를 확 흡수해 주는 힘을 갖고 계시더라. 존재만으로도 내가 딸이 될 수 있었던 분이다.”

-김윤진(승이 엄마 역), 나문희(승이 외할머니 역)와의 앙상블도 좋았다. 호흡은 어땠나.
“너무 좋았다. 그 신이 정말 힘든 신인데, 선배님의 눈을 보는 순간 교감이 됐다.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서로 막힘없이 감정을 주고받으면서 연기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었다. 정말 좋았다.”

진정성 있는 열연으로 관객에게 감동을 전한 하지원. /CJ엔터테인먼트
진정성 있는 열연으로 관객에게 감동을 전한 하지원. /CJ엔터테인먼트

-배우 하지원의 강점은 깊은 감정 연기가 아닐까 싶은데, 눈물 연기의 비결이 있다면.
“나는 사실 그 상황에 100% 몰입해야 눈물이 난다. 이입이 안 되면 눈물이 안 나올 때도 있다. 무조건 그 상황에 빠져들어야 눈물이 나는 것 같다.”

-작품을 고를 때 캐릭터나 혹은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하고 몰입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맞다. 첫 번째는 시나리오다. 다음이 캐릭터적인 부분이다. 배우는 시간여행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세계에 들어가서 한 번 보고 싶고, 느끼고 표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작품을 택한다. 캐릭터에도 공감을 해야 한다. 때론 이 캐릭터가 너무 안쓰러워서 내가 지켜주고 싶은 경우도 있다. 혹은 너무 매혹적이어서 살아보고 싶은 여인이기도 하다. 그때그때 조금씩 다른 것 같다.

-그동안 공감 가는 이야기를 못 만났던 걸까. 스크린 공백이 길어진 이유가 있다면.
“타이밍도 중요했던 것 같다. 당시 오우삼 감독(중국) 작품(‘맨헌트’ 2017)을 하면서 다른 작품들을 메이드 하는 타이밍을 놓친 경우도 있었고, 드라마 ‘초콜릿’을 하기도 했고… 늘 갈증이 있다. 더 많은 작품을 하고 싶고, 해보지 않았던 악역이나 센 이야기의 장르물도 해보고 싶다.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어느덧 데뷔 24년 차인데, 대중들에게 여전히 많은 사랑과 신뢰를 받고 있다. 오랜 시간 견뎌오면서 체력적으로나 심적으로나 특별히 관리를 해오고 있는 게 있다면.
“육체적 관리는 소홀한 편이다. 얼마 전에 무릎을 다쳐서 운동도 못하는 시기라, 가벼운 스트레칭 정도만 한다. 스트레스를 마음에 담아두는 성격이 아니다. 내가 많이 웃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잘 몰랐는데 인터뷰를 하면서 생각해보니 그렇더라. 어렸을 때는 오히려 더 예민하고 까칠하고 그랬던 것 같다. 배우라는 직업을 하면서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그 힘든 시기에 오히려 터득한 방법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지금 이 순간 에너지를 다 쓴다. 힘을 남겨두지 않는다. 그게 나의 원동력인 것 같다. 충전도 되게 빨리 된다. 지칠 때 있지 왜 없겠나.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힘든 순간도 많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고 미칠 수 있는 것 같다. 아프고 지쳐도 내가 좋아하는 마음엔 미치지 못하니, 계속 도전할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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