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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이경미 감독 인터뷰] ‘보건교사 안은영’의 모든 것 밝혔다
2020. 10. 07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을 연출한 이경미 감독.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을 연출한 이경미 감독. /넷플릭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안은영(정유미 분)은 ‘젤리’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젤리란 살아있는 동식물들이 만드는 보이지 않는 ‘욕망의 잔여물’로, 무해한 것도 있지만 오염되면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그래서 은영이 평생에 걸쳐 이 젤리들을 퇴치하고 있다.

은영은 보건교사로 새로 부임한 학교에 심상치 않은 미스터리가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다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하려는 은영 앞에 특별한 기운을 지닌 한문교사 홍인표(남주혁 분)가 나타나고, 두 사람은 학생들과 학교를 지키기 위해 힘을 합쳐 온갖 젤리들을 퇴치해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은 평범한 이름과 달리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보건교사 안은영이 새로 부임한 고등학교에서 심상치 않은 미스터리를 발견하고, 한문교사 홍인표와 함께 이를 해결해가는 판타지다.

2013년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과 2019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정세랑 작가가 집필한 동명의 장편 소설을 원작으로, 정세랑 작가가 직접 각본을 맡았고 영화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 등을 연출한 이경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정세랑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은 이경미 감독을 만나 빛을 발했다. 이경미 감독은 원작이 지닌 매력을 고스란히 지키면서도, 새로운 캐릭터와 설정을 더해 더 큰 세계관으로 확장시켰다. 또 책장 안에만 존재했던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독특한 비주얼로 구현해내며 그동안 보지 못한 색다른 판타지를 완성했다. 각양각색의 젤리는 물론, 소품부터 공간까지 ‘보건교사 안은영’만의 색깔로 만들어냈고, 한국적 요소를 더해 독특한 분위기를 배가시켰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완성한 ‘보건교사 안은영’ 포스터. /넷플릭스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완성한 ‘보건교사 안은영’ 포스터. /넷플릭스

최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화상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시사위크>와 만난 이경미 감독은 ‘보건교사 안은영’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공개했다. 특히 시즌1을 두고 “안은영이 여성 히어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프리퀄(prequel)”이라고 소개해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공개 후 많은 반응이 오가고 있는데, 기억에 남는 평가가 있다면.
“‘아무도 안 말렸냐’라는 말과 함께 남긴 별점 0.5점을 보고 ‘빵’ 터졌다. 만약 이것이 극장용 영화였다면 모든 사람들이 말렸을 것들을 넷플릭스를 통해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신났다. 그 댓글이 너무 재밌어서 캡처해서 제작진에게 보여줬더니, 조명 감독이 댓글을 달았더라. ‘아무도 안 말렸겠냐’라고. 하하. 재밌었다. 악평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댓글이었다.”

-원작이 있는 작품인데다, 그동안 해 온 작업 방식과 달라 부담이 컸을 것 같다. 어떻게 연출을 결심하게 됐나.
“늘 내가 각본을 만들고 연출을 하는 방식으로 일을 해왔는데, 이번엔 원작이 있는 작품이었고 그래서 되게 새로운 작업이었다. 일단 소설을 좋아해 주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마음의 부담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게 작업할 수 있었던 것은 소설에서 갖고 있는 요소들이 재밌고 무궁무진해서 그것들을 해석하고 새로운 것들을 만드는 재미가 컸기 때문이다. 또 넷플릭스 플랫폼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전부터 있었고, 제안한 작품도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보건교사 안은영’을 역으로 제안을 받게 된 거다.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모든 게 이 안에 있었다. 이번 기회에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처음 시작하는 느낌으로 접근했다.”

-넷플릭스와의 작업은 어땠나.
“신나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만약 이 시리즈가 다른 채널에서 만들어졌다면 혹은 극장용 만들어졌다면, 절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작품인 것 같다. 극장용 영화로 만들어지는 게 가능했다 하더라도 마케팅을 소극적으로 한다든지, 극장들이 틀지 않겠다고 거부한다든지 여러 가지 난관이 있었을 텐데, 넷플릭스 플랫폼으로 공개되다 보니 그런 난관들이 없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다양한 마케팅을 해줬다. 내가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가장 창의적이고 공격적이고 용감한 마케팅을 해주더라. 여러모로 신선한 경험이었다.”

-원작자인 정세랑 작가가 시리즈 각본을 맡았는데, 원작 작가의 참여가 어떻게 도움이 됐나.
“이 프로젝트를 제안받았을 때 정세랑 작가가 에피소드 4까지 쓴 각본이 있었다. 이 작품을 시리즈물로 이어가려면 어떤 것들을 어필할 수 있을까 봤더니, 여성 히어로물로 가져갈 수 있는 소재들이 이미 소설 속에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원작에 있는 에피소드를 가져가면서, 안은영이 여성 히어로가 되기 위한 프리퀄 개념으로 시즌1을 접근하면 어떻겠냐 제안을 했고, 다행히 모두 좋아해 줬다. 여성 히어로가 되기 위한 안은영의 성장 드라마라는 줄기에 맞춰 에피소드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했다. 다행히 정세랑 작가가 각본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많이 열어줬다. 원하지 않는 최소한의 몇 가지를 짚어주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안은영이 학생들을 물리적으로 터치하지 않았으면 한다든지, 목이 긴 젤리가 있었는데 왜색이 짙어서 불편할 것 같다든지 그런 부분에서 조언을 해줬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호흡을 맞춘 남주혁(왼쪽)과 정유미. /넷플릭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호흡을 맞춘 남주혁(왼쪽)과 정유미. /넷플릭스

원작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에피소드 중 하나가 학교에 괴물이 튀어나와서 난리가 난 소동극이다. 그것을 보면서 이 장면을 꼭 비주얼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막상 상상해보니 학교라는 공간이 좋게 해석되지 않더라. 아이들이 계속 위험에 처하게 되고, 그것을 학교가 방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교장을 학교에 비밀이 있는데 그것을 감추고 아이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나쁜 인물로 설정을 해서, (안은영이) 그것을 막는 선생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정세랑 작가가 그 아이디어를 받아들여줬다. 그래서 그것이 전체적으로 은영이 누구와 싸워야 할 것인가 큰 맥락을 잡게 해준 계기가 됐다.”

-원작의 에피소드를 추리는 과정이 필요했을 텐데, 어떤 기준이 있었나.
“내가 투입됐을 때 이미 원작에서 어떤 에피소드를 갖고 갈지 결정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추가했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던 에피소드는 정연(놀이터 아이)의 에피소드였다. 이 작품을 제안받았을 때 첫 미팅에서 말한 건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소설이 명랑하고 따뜻한 톤으로 쓰였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람이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연 에피소드가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완수와 민우 이야기도 소설 읽을 때 굉장히 많이 웃었던 에피소드라서 그것도 추가하자고 했다. 한아름 선생의 오리 이야기도 넣고 싶었는데, 분량이 정해져있어서 넣지 못했다. 오리를 계속 돌아다니게 함으로써 그렇게라도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표현하고 싶었다.”

-안전한 행복은 원작에 없고, 일광소독은 언급 정도만 되는데, 추가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두 집단을 통해 어떤 이야기로 확장하고 싶었나.
“일광소독은 정세랑 작가가 각본을 줬을 때 이미 발전이 돼있었다. 아마 작가도 시리즈물로 가기 위해서 이 부분을 더 살렸던 것 같다. 그리고 나 역시 시리즈물로 가려면 은영이 젤리와 싸우는 것만으론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성 히어로물의 프리퀄이라고 생각했을 때 은영이 점차 싸워야 할 상대가 얼마나 힘이 세고, 얼마나 강력하고, 얼마나 뛰어넘기 어려운 장애물인지 더 구체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밑밥을 깔아놓고 시즌2로 넘기자 생각을 했다. 시즌2가 제작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해야 할 미션은 시즌2를 기대하게 하고 끝내야 하고, 시즌2가 만들어질 수 있게 밑밥을 짜야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염두에 두고 연출한 것이 맞다. 시즌2가 언제 만들어질지는 넷플릭스만 안다.(웃음)” 

‘보건교사 안은영’ 속 각양각색의 젤리들. /넷플릭스 ​
‘보건교사 안은영’ 속 각양각색의 젤리들. /넷플릭스 ​

-특유의 기괴한 분위기가 있는데, 거부감이 들지 않기 위해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젤리였다. 은영이 싸워야 할 적수이기 때문에 마냥 통통 튀는 젤리로 표현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기괴하고 혐오스럽지만, 귀엽고 또 보고 싶기도 한 경계를 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겪어보는 난감한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게 내 욕심이었다. 그래서 실제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징그러운 생물체들과 이것들을 어떻게 변형하면 귀엽게 보일 수 있을까 양가적인 느낌을 같이 가져갈 수 있도록 연구를 했다. 예를 들어 옴 젤리도 공을 많이 들였다. 동그랗고 눈 사이도 멀고 벌레 소리를 내고, 너무 징그러운데 자꾸 보고 싶게 만드는 이상한 경계선을 타길 바랐다.”

-캐릭터 활용도 눈길을 끌었다. 어떤 캐릭터는 성별이 바뀌기도 했고, 하나의 캐릭터가 은영과 승권에게 나눠 표현되기도 했는데.
“심달기가 연기한 완수는 소설에서는 남자다. 심달기가 오디션을 봤는데, 너무 좋았다. 그런데 할 수 있는 역할들이 이미 (다른 배우들로) 정해져있었다. 나도 그렇고 연출부와 조감독도 심달기를 좋아해서 속상해하고 있었는데, 조감독이 완수의 성별을 바꿔 심달기가 하면 어떨까 얘기를 했다. 너무 좋은 아이디어였다. 지금도 조감독에게 감사하다. 그렇게 해서 완수가 여자가 됐다.

정연은 원래 소설에서 남자인데, 여자로 바꿨다. 그 이유는 은영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 게 다 남자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강선(은영의 중학교 동창)도 남자고, 충전해 주는 인표도 남자다. 다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정연을 여자애로 바꾸자 했다. 시리즈에서 지형 캐릭터가 소설에서는 여학생이다. 그 에피소드를 좋아했는데, 6부작으로 정해진 상황에서 쓸 수가 없었다. 그 얘기도 쓰고 싶고 지형 캐릭터도 살리고 싶어서 하나로 합쳐볼까 생각했고, 필요에 의해서 합치게 됐다.”

-문소리가 연기한 화수는 시리즈의 히든카드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어떻게 만들어졌나.
“정세랑 작가의 각본에 화수가 새로 만들어져있었다. 타로 점술사 설정이었는데, 한국적인 요소를 넣으면 어떨까 해서 불법 침술원으로 바꿨다. 이 시리즈는 은영이 자신의 능력을 받아들이고 직업적 소명의식을 갖게 되는 성장 드라마다. 그녀에게 가장 큰 위기가 무엇일까 고민했을 때, 자기가 가장 믿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상처라고 생각했다. 화수는 은영에게 유사 부모 같은 존재다. 친구 같기도 하고, 엄마 같기도 한 존재를 결국 딛고 일어서야 한다는 스토리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화수를 키웠다.”

새로운 도전에 나선 이경미 감독. /넷플릭스 ​
새로운 도전에 나선 이경미 감독. /넷플릭스 ​

-시리즈로 제작되면서 은영과 인표의 로맨스를 기대하는 시청자들도 많았을 텐데, 오히려 원작보다 줄어든 느낌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시리즈로 가야 한다는 특성상 둘의 관계를 너무 진전시키지 않는 것이 뒤를 위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영과 인표는 파트너인 듯 티격태격하는데, 둘이 연결됐으면 좋겠다는 시청자들의 바람만 있어도 시즌2에서 두 사람을 더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생각에 아껴뒀다.”

-시즌1이 불친절하다는 평이 있는데, 시즌2에서는 궁금한 요소들이 해소가 될까.
“시즌1이 불친절하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는 밑밥이 깔린 것이 거둬지지 않아서도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시즌2에서 당연히 해소될 부분이다. 그런데 시즌1을 만들면서 만화적인 톤 앤 매너를 가져가고 뻔뻔하게 전개하자는 생각은 처음부터 있었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그랬다치고 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고 전개시키고자 했던 것이 처음부터 목표였다. ‘B급 무비’스러운, 만화 같은 설정으로 가려고 했는데, 그런 부분들이 어떤 분들에게는 불친절하다고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도전이었는데,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정신없이 마무리하고, 공개되는 날 정주행을 했는데 집중이 안 되더라. 너무 두근두근했다. 영화 시사회 때도 이랬나 싶다. 그런데 영화는 2시간만 두근두근하면 되는데, 이건 5시간 이상 두근두근 해야 하니 고통스럽더라.(웃음) 그런데 방송을 보고, 리뷰나 반응을 보고 나니 내가 하려고 했던 거 그냥 해볼 걸 그랬나, 아쉬운 것들이 떠오르더라. 그리고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것 중에 어떤 것들은 그냥 그랬다 치고 넘어가도 된다고 생각한 것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나는 설명을 한다고 했는데 전달이 안됐구나 싶은 것들도 있었다. 이런 건 더 분명하게 전달해야겠구나 깨닫기도 했다.”

-정세랑 작가는 ‘재미를 위해’ 이 이야기를 썼다고 했는데, 감독은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완성했나. 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영상으로 구현할 때 보는 재미와 듣는 즐거움이 있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새로움이 주는 쾌감, 잘 시도되지 않은 것들을 시도했을 때 그것을 즐기는 쾌감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이 작품이 내가 꿈꾸고 있는 것과 현실의 괴리감이 크다고 느끼는 분들이라든지 외롭다고 느끼는 분들에게 즐거운 판타지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은영과 인표, 굉장히 불완전한 두 사람이 만나서 어떤 것을 꾸역꾸역 하려고 하는 모습에서 보는 분들에게 위안과 즐거움이 됐으면 좋겠다. 그게 내가 바라던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