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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인터뷰] 유재명, 말 많고 귀여운 범죄자가 되다
2020. 10. 15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배우 유재명이 영화 ‘소리도 없이’(감독 홍의정)로 돌아왔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배우 유재명이 영화 ‘소리도 없이’(감독 홍의정)로 돌아왔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매 작품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배우 유재명이 또 한 번의 강렬한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허름한 옷차림부터 소심하면서도 친근한 말투, 인간미 넘치는 매력까지, 범죄 조직의 신실한 청소부로 분해 스크린에 살아 숨 쉰다. 영화 ‘소리도 없이’(감독 홍의정)를 통해서다.

영화 ‘소리도 없이’는 납치한 아이를 맡기고 죽어버린 의뢰인으로 인해 계획에도 없던 유괴범이 된 두 남자의 위태로운 범죄 생활을 그린 작품으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SF 단편 ‘서식지’로 호평을 받은 신예 홍의정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영화는 무거운 소재를 다룬 범죄물임에도 평온하면서도 일상적인 톤으로 그려내 기존 범죄물과는 차별화된 재미를 선사, 호평을 얻고 있다. 독특한 캐릭터 설정과 아이러니한 전개로 ‘소리도 없이’만의 독특한 매력을 완성했다는 평이다.

그 중심엔 유재명이 있다. 범죄 조직의 신실한 청소부 창복 역을 맡은 그는 계획에도 없는 유괴범이 돼버린 아이러니한 창복의 상황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 것은 물론, 태인을 연기한 유아인과 환상의 시너지를 완성하며 극의 중심을 잡는다.

특히 한 마디의 대사도 없는 태인을 대신해 창복이 극 초반 서사를 끌고 나가는데, 유재명은 많은 대사를 특유의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완벽 소화하며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또 적재적소에 맞는 애드리브를 더해 극을 더욱 풍성하게 채웠다.

유재명이 ‘소리도 없이’를 두고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유재명이 ‘소리도 없이’를 두고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유재명은 ‘소리도 없이’를 두고 “가을 하늘처럼 다양한 색채가 있는 영화”라며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소리도 없이’ 시나리오를 보고, 행복감을 느꼈다고.
“놀라운 시나리오를 받았다는 표현이었다. 매 작품 할 때마다 그렇게 보려고 애를 쓴다. 나에게 제안이 왔기 때문에 매력이나 장점들, 좋은 부분을 보려고 한다. ‘소리도 없이’ 시나리오는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라 선택하게 됐다. 시나리오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지문이 굉장히 많았는데, 무겁기도 하면서 기묘하기도 하면서 아이러니한 운명에 빠진 두 남자의 이야기가 놀라웠다.”

-완성된 영화를 본 소감은.
“영화는 (시나리오와 달리) 밝고 유머러스하더라. 색감도 너무 예쁘고, 음악도 들어가면서 묘한 뉘앙스의 영화가 나온 것 같다. 촬영하면서 너무 무겁게 만들어지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그런데 무거운 이야기를 감각적으로 잘 풀어낸 것 같아서 많은 분들이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창복은 어떤 캐릭터로 다가왔나.
“극 중 서사를 끌어가는 태인이 말이 없기 때문에 창복은 말을 많이 하는 캐릭터다. 어른이고, 또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체이다 보니 최대한 자연스럽게 친근한 이미지로 사건을 전개하려고 했다. 귀엽게 표현하고 싶었다. 귀엽다는 표현은 순박하다는 게 아니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함이라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 범죄조직의 뒤처리를 한다고 해서 무서운 사람일 거라는 선입견도 깨고 싶었고, 관객들이 잘 따라올 수 있게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이라는 생각을 했다.”

-애드리브도 많이 하고, 자유롭게 연기했다고. 어떤 지점이 배우 유재명을 편안하게 자유롭게 만들어줬나.
“대사가 많다는 건 되게 힘든 거다. 연습도 많이 해야 하고. 그런데 창복이 하는 말들은 크게 중요한 게 없다. 생활형이고 막 해도 되는 말들이었다. 어디선가 누구한테 들었던 말들,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혹은 선배가 후배에게 하는 말들을 태인에게 끊임없이 한다. 즉흥적인 대사를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홍의정 감독의 허락 하에 했다. 감독이 너무 재밌다 하면 자신 있게 하고 그랬다. 즐거운 작업이었다.”

‘소리도 없이’에서 환상의 시너지를 완성한 유아인(왼쪽)과 유재명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소리도 없이’에서 환상의 시너지를 완성한 유아인(왼쪽)과 유재명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에 담기지 않은 창복의 과거에 대해 고민한 지점이 있다면.
“작품 시작할 때 시나리오를 분석하면서 인물의 전사를 많이 고민한다. 극 중 창복은 영화에 나오진 않지만, 노모를 모시고 있는 사람이다. 다리가 불편한 것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불편하다는 것이 안 좋은 건 아니잖나. 선입견을 가질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지극히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창복은 고등학교 때까지 축구를 했고, 부상을 당했고 집이 가난해서 치료를 받지 못했고 그것이 영구화돼서 지금 다리를 절고 있는 인물로 이야기를 나눴다. 크게 중요한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 현재의 모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현재 모습을 통해 앞으로의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전사에 대해 치밀하게 분석해가는 것이 우리들의 일이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가볍게 놓고 다른 부분에 더 집중하는 것을 택했다.”

-캐릭터를 완전히 이해하고 연기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창복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다른 배우들도 그렇겠지만, 매 작품 시작할 때마다 불안감이 있다. 내가 이 역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완벽하게 의미하고 내 것이 돼야만 된다는 강박증이 있다. 이번 작품에도 그런 마음과 과정이 있었다. 작품의 결이 다소 기묘하고 낯선, 새로움이 있는 작품이다 보니 더 잘 찾아냈어야 했다. 매일매일 촬영하면서 한 신 한 신 찍으며, 조금씩 더 찾아나갔던 것 같다. 그렇게 가다 보니 작품이 끝났고, 1년이 지나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영화 보면서 만족감보다 잘 해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장르 불문, 역할의 비중에 상관없이 폭넓은 필모그래피를 쌓아오고 있는 배우 유재명.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장르 불문, 역할의 비중에 상관없이 폭넓은 필모그래피를 쌓아오고 있는 배우 유재명.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는 태인과 창복을 통해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선과 악의 기준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을 것 같은데.
“창복과 태인이 나쁜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시체를 처리하는 건 분명 범죄의 영역이다. 하지만 살인을 한 건 아니다. 또 그들이 아이를 유괴한 것도 아니다.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서 끌려가는 수동적인 인물이다.

감독이 말하고 싶은 지점은 선과 악의 경계는 모호한데, 우리는 선과 악의 모호함 속에서 매일매일 어떤 선택을 한다. 그게 양심을 속이는 것일 수 있고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고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과연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규정지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 이제 영화가 어려워지는 거다.(웃음) 그래서 감독이 지금의 톤으로 영화를 만든 것 같다. 답을 내리진 못하지만, 인물을 통해 혹은 사건을 통해 그 모호함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유아인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는데, 어땠나.
“시청자와 관객으로 유아인을 보다가 처음 만났을 때는 잘생겨서 놀랐다.(웃음) 한참 후에 촬영을 시작했는데, 살을 엄청 찌웠더라. 포스터 속 모습 그대로 촬영장을 돌아다녔는데, 실제 우리 모습 같을 정도로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아들게 됐다.

유아인은 표정이 풍부한 배우다. 태인이 말이 없는 캐릭터라 그런지 표정이 더 많더라. 말이 없으니 표정으로 캐치해야 하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겠더라. 재밌었다. 어기적어기적 걸음걸이도 쉽지 않다. 부자연스럽고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는 몸의 흐름이 있는데, 자연스럽게 몸을 쓰더라. 머리를 민 것도 너무 잘 어울려서 좋았다. 어떤 장르든 또 다른 관계로 다시 만나고 싶다.”

-연극으로 시작해 브라운관과 스크린, 크고 작은 역할 구분 없이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지금 이 시기에 배우로서 하고 있는 고민이 있다면.
“롤이 커지면서 내 역할만 하면 되는 것을 넘어서게 됐다. 내게 주어진 것들뿐 아니라 작품 전체를 고민해야 하는 캐릭터가 되면서 부담감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에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달라진 것 같다. 내 것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뭔가를 해나가는 어떤 굵은 선을 긋는 배우가 돼야 한다는 것이 요즘 가장 큰 화두인 것 같다. 모든 영화나 드라마는 많은 분들의 협업이다. 그들과 스스럼없이 만나되 예의를 지켜가며 소통하고 같이 만들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소리도 없이’ 관람 포인트를 꼽자면.
“예상하지 못한 흐름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기대감을 충족시켜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생각한 것과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극장에 가기 힘든 상황인데, 오랜만에 색다른 매력의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가을 하늘처럼 다양한 색채가 있는 작품이다. 많이 봐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