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굴’(감독 박정배)로 돌아온 이제훈. /CJ엔터테인먼트
영화 ‘도굴’(감독 박정배)로 돌아온 이제훈. /CJ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그동안 진중하고 진지한 캐릭터로 묵직한 존재감을 뽐냈던 배우 이제훈이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능청스럽고 능글맞은 연기로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영화 ‘도굴’(감독 박정배)을 통해서다. 한층 더 다양해질 그의 필모그래피가 기대된다.

이제훈은 2007년 개봉한 영화 ‘밤은 그들만의 시간’(감독 조은경)으로 데뷔한 뒤 2011년 윤성현 감독의 영화 ‘파수꾼’을 통해 충무로가 주목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영화 ‘고지전’(2011) ‘건축학개론’(2012), ‘파파로티’(2013),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2016), ‘박열’(2017), ‘아이 캔 스피크’(2017), ‘사냥의 시간’(2020) 등과 드라마 ‘시그널’(2016), ‘여우각시별’(2018) 등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활약했다.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온 이제훈이지만, 그의 필모그래피를 들여다보면 주로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택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도굴’은 이제훈에게 새로운 도전이자,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해 준 작품이다.

‘도굴’은 타고난 천재 도굴꾼 강동구(이제훈 분)가 전국의 전문가들과 함께 땅속에 숨어있는 유물을 파헤치며 짜릿한 판을 벌이는 범죄오락영화. 영화 ‘수상한 그녀’ ‘도가니’ 등의 조연출을 거치며 내공을 쌓아온 박정배 감독의 입봉작이다.

오는 4일 개봉하는 ‘도굴’은 서울 강남 한복판에 묻힌 조선 최고의 보물을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와 도굴이라는 소재를 유쾌하게 풀어내 코로나19로 지친 관객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제훈은 남다른 촉과 직감을 타고난 천재 도굴꾼 강동구로 분한다. 그는 러닝타임 내내 웃음을 잃지 않게 만드는 밝은 매력은 물론, 고난도의 도굴 작전에 임할 때마다 펼쳐지는 재치 있고 잔망스러운 행동들로 웃음을 선사한다. 또 특유의 훈훈한 매력과 리드미컬한 캐릭터 변주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코로나19 시대에 두 편의 영화를 선보이게 된 이제훈. /CJ엔터테인먼트
코로나19 시대에 두 편의 영화를 선보이게 된 이제훈. /CJ엔터테인먼트

이제훈은 지난 4월 ‘사냥의 시간’ 넷플릭스 공개 후 ‘도굴’로 오랜만에 관객과 만나게 됐다. 코로나19 시대 속 두 편의 영화를 연이어 선보이게 된 그는 “극장에서 상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극장 개봉은 오랜만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나가고 있는 과정 속에서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돼 감개무량하고 감사하다. 관객들이 극장에 오는 발걸음이 많이 무거울 텐데, 저희 작품을 통해 극장에 와서 즐기고 즐거워하며 힐링의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개봉을 못하는 작품들도 많은 가운데, 신작을 선보이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나.
“우리나라 국민들이 현명하고 슬기롭게 잘 대처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극장도 방역 지침을 잘 준수하면서 안전하게 운영하고 있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수요는 분명히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신작들이 계속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도굴’도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고, 이후에 나오는 한국영화들도 많은 사람들이 다시 극장에 찾아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발판이 됐으면 좋겠다. 지금은 경쟁을 한다기보다 그 이상으로 함께 관객을 불러 모으자는 사명감이 생긴 것 같다. 그래서 더 열심히 홍보하려고 한다. 관객들로 꽉 찬 극장이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이다.”

-강동구 캐릭터가 실제 성격과 많이 달랐다고. 
“나는 말을 많이 하거나 분위기를 주도하거나 이야기를 이끄는 사람은 아니었다. 주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걸 듣고 경청하면서 맞장구치는 타입이었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활발해지고 적극적인 사람이 된 것 같다. 강동구라는 캐릭터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면서 시종일관 입을 쉬지 않잖나. 나도 ‘도굴’을 촬영할 때 친구들 만나면 시종일관 넉살과 웃기지도 않은 말들을 늘어놨다. 그런 모습을 보며 변했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초등학교 중학교 개구쟁이였을 때 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사람도 있었다. 강동구라는 캐릭터를 하면서 어린 시절의 저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변화한 자신의 모습은 어땠나.
“당황해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나는 오히려 재밌었다. 영화에서 말장난도 하고 남을 골탕 먹인다. 밉기도 하고 때려주고 싶기도 한 면모도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괜히 그렇게 됐다. 내  연기관과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인데, 작품을 할 때 그 캐릭터를 더 잘 소화해내기 위해 그 속에 산다. 그 인물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대하는 것 같다. 이번에도 강동구 캐릭터 때문에 실없는 농담과 이야기들을 많이 늘어놨던 기억이 난다.”

영화 ‘도굴’에서 천재 도굴꾼 강동구로 분한 이제훈 스틸컷. /CJ엔터테인먼트
영화 ‘도굴’에서 천재 도굴꾼 강동구로 분한 이제훈 스틸컷. /CJ엔터테인먼트

-팀플레이가 중요한 영화였는데, 그 중심을 끌어가는 역할을 해내야 했다. 어려움은 없었나.
“동구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와 정보 전달은 물론, 각각의 캐릭터들과 ‘티키타카’를 보여줘야 했다. 시나리오로 봤을 땐 재밌었는데,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참고할 만한 작품이 있나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읽을수록 ‘말맛’이 살아있다고 느꼈다. 내가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현장에 가서도 그대로 놀자는 생각으로 임했다. 관객들이 동구가 이끌어가는 이야기를 흥미롭고 리드미컬하게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기분 상태를 ‘업’하면서 연기를 했다. 억지로 할 필요도 없었던 것 같다. 기분 좋은 흐름이라 술술 풀렸다. 그래서 항상 촬영 현장에 오는 게 기분이 좋았고, 오늘은 어떻게 놀아볼까 기대감을 갖고 임했던 기억이 난다.”

-‘사냥의 시간’에서는 또래 배우들과 호흡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선배들과 작업했다. 어땠나.
“예전부터 봐왔던 선배들이라 같이 호흡을 맞추는 부분에 있어서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너무 연기를 잘하는 선배니까. 현장에서도 크게 어떤 이견이 없다고 해야 할까.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게 예전 알았던 사람처럼 너무 편안했다. 이것이 경험과 연륜에서 나오는 여유로움인가 싶었다. 나는 시종일관 떠들면서 플레이해야 하는 역할인데, 그런 모습들 하나하나 다 받아주는 모습에서 감사했다. 전작은 또래 배우들과 같이 이끌어가는 모습이 있었는데, 이번 작품은 이끌어가는 것과 동시에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게 힘이 많이 됐다.”

-‘사냥의 시간’ 당시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고 했는데, 이번 작품은 어땠나. 본인의 아이디어가 더해진 부분이 있다면.
“껌은 시나리오에 없었는데 내가 만든 설정이다. 껌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물들을 연결 짓는 고리로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강동구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특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동구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그런 설정들을 녹여냈다. 또 존스 박사의 모자를 뺏어 쓴다거나 수중촬영 때 모자를 둥둥 띄워서 동구가 발견하게 한다거나 그런 아이디어를 냈다. 존스 박사가 동구가 어떻게 됐는지 알고 외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이후 상황은 다 애드리브였다. 조우진(존스 박사 역) 형이 또 잘 받아주더라. 리허설 없이 한 부분이란 점도 흥미로웠다. 서로 호흡을 맞춰오면서 쌓아온 것이 그렇게도 표현될 수 있구나 싶은 장면이었다.”

이제훈이 새로운 얼굴로 돌아왔다. /CJ엔터테인먼트
이제훈이 새로운 얼굴로 돌아왔다. /CJ엔터테인먼트

-‘도굴’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는데.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이 ‘이제훈이라는 배우가 이렇게 오락무비에 나와서 놀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이구나’를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의미가 있는 작품이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 혹은 장르로서 쾌감을 주는 작품을 했던 측면이 있었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웃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작품을) 선택하는 부분에 있어서 조금 더 과감하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한 개인적인 기대도 하게 됐다.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고,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작품이라면 앞으로 어떤 역할을 떠나서 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용기를 얻게 됐다.”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면.
“흔히 말하는 킬링타임 무비를 극장에서 정말 많이 보고 좋아한다. 그런데 막상 내가 선택을 많이 하지 않은 부분에 있어서 나도 의문이 들더라. 덧붙여서 영화 선택할 때 왜 사랑이야기를 안 했는지도 의문이었다. 보는 걸 엄청 좋아한다. 눈물도 흘리고 행복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그런 작품을 또 하고 싶은 의지가 강한 것 같다. 20대 초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인 ‘건축학개론’을 남겼는데, 30대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작품도 너무 하고 싶다. 곧 앞 숫자가 바뀌니까 빨리하고 싶은 의지가 강하다. 찐한 멜로가 됐든, 알콩달콩한 로맨틱코미디가 됐든 (시나리오) 많이 좀 달라. 기다리고 있다.(웃음)”

-나이가 드는 것에 대한 조바심이나 초조함이 있나, 아니면 기대감이 더 큰가. 
“다양한 생각이 든다. 늦게 데뷔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교복을 입고 연기할 수 있었다는 것이 외모적으로 동안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더 나이든 역할을 하는 부분에 있어서 제약이 있는 것에 아쉬움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평생 연기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현실에 충실하면서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회가 닿는 대로 많은 작품을 하는 것이 목표다.”

-어느덧 데뷔 13년이 흘렀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어떤가.
“그래도 쉬지 않고 멈추지 않고 주저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구나 싶다.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는 배우라는 것에 있어 조금이라도 다독여주고 싶다. 뿌듯한 것도 있고 아쉬운 것도 있다. 그 시간을 경험하면서 가장 중요한 건 함께 만드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시나리오가 재밌고 좋아서 선택하겠지만, 작품이 조금 아쉽고 부족하더라도 소통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다.”

영화와 연기가 전부라는 이제훈. /CJ엔터테인먼트
영화와 연기가 전부라는 이제훈. /CJ엔터테인먼트

-사람들의 소중함을 느끼면서 ‘나도 좋은 사람이 돼야겠다’는 다짐도 할 것 같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나.
“내가 연기를 시작했을 땐 내가 맡은 역할을 잘 소화해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잘 준비해서 현장에서 집중해서 잘 해야지 했다. 그러다보니 시야가 좁았다. 나한테만 집중하고 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주위 사람들을 살펴보게 됐다. 현장이 매번 좋을 순 없잖나. 환경에 따라 돌발 상황에 따라 사람들이 지칠 수 도 있고 힘들어할 수도 있는데 이들에게 에너지를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말 한 마디라도 힘을 북돋아주고 박수도 치면서 뒤로 물러서있는 것이 아닌 한발 더 나서서 행동할 수 있는 모습으로 변한 것 같다. 특히 이번 작품이 많이 그렇지 않았나 싶고, 그 영향으로 다음 작품도 그랬던 것 같다. 영화를 찍으면서 인생을 배우고, 그 배움의 인생을 계속해서 지속하며 연결해나가는 것 같다.”

-‘천만영화’ 배우와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타는 배우, 어느 쪽에 더 매력을 느끼나.
“당연히 (둘 다) 상상을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내게 더 중요하고 지켜나가고 싶은 건 계속 궁금한 사람, 기대가 되는 배우로 지속되고 싶다는 것이다. 타이틀도 좋지만, 그것보다 계속해서 사람들이 나를 관심 있어 하고 그 작품을 궁금해하고 봐주는 배우로 남겨지길 하는 마음이다. 계속해서 그런 배우로서 살아가고 싶다.”

-영화에 대한 애정이 유독 남다른 것 같다. 박정배 감독이 본인을 두고 ‘영화밖에 모른다, 영화 얘기만 한다’고 했을 정도다. 영화와 배우라는 직업이 이제훈에게 어떤 의미인가.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소개할 때 영화를 빼면 거의 남는 게 없다. 사람들과의 이야기 소재도 현저하게 적다. 어떻게 보면 재미없는 사람일 수 있겠지만, 나는 그런 인생을 살고 있고 좋아한다. 앞으로도 이렇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함께 또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것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정말 재밌는 건 내가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고 그렇게 많이 봄에도 불구하고 보지 못한 게 훨씬 더 많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여전히 즐겁고 행복하다. 그것이 또 영화를 만들고 발전시키는 것과 연결이 되다보니 더 깊게 빠져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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