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비규환’(감독 최하나)이 관객과 만남을 앞두고 있다. /리틀빅픽처스
영화 ‘애비규환’(감독 최하나)이 관객과 만남을 앞두고 있다. /리틀빅픽처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연하 남친 호훈(신재휘 분)과의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하게 된 대학생 토일(정수정 분). 출산 후 5개년 계획까지 준비하며 결혼을 선언했지만, 돌아온 것은 “넌 대체 누굴 닮아 그 모양이냐”는 부모님의 호통뿐이다.

누굴 닮았는지 직접 확인하겠다며 찾은 친아버지는 기대와 달리 실망스럽기만 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예비 아빠 호훈의 행방이 묘연해진다. 어색한 ‘현’아빠(최덕문 분), 철없는 ‘구’아빠(이해영 분)와 함께 토일은 집 나간 예비 아빠를 찾아 나선다. 

영화 ‘애비규환’(감독 최하나)은 똑 부러진 5개월 차 임산부 토일이 15년 전 연락 끊긴 친아빠와 집 나간 예비 아빠를 찾아 나서는 설상가상 첩첩산중 코믹 드라마로,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 공식 초청작이다.

영화는 아비규환(阿鼻叫喚)을 재치 있게 비튼 제목 ‘애비규환’처럼, 재기발랄하고 유쾌한 매력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혼전임신, 재혼가정, 이혼, 어린 임산부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등 결코 가볍지 않은 소재를 다뤘지만, 심각한 분위기로 주제의식을 전하는 대신 발랄한 소동극으로 풀어내 흥미를 자극한다.

‘애비규환’으로 호흡을 맞춘 정수정(왼쪽)과 신재휘. /리틀빅픽처스
‘애비규환’으로 호흡을 맞춘 정수정(왼쪽)과 신재휘. /리틀빅픽처스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은 ‘애비규환’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엉뚱하면서도 당당한 매력의 토일부터 화끈하고 냉철함을 잃지 않는 엄마 선명(장혜진 분), 말끝마다 사자성어를 붙이는 고지식하지만 따뜻한 ‘현’아빠 태효, 여전히 철없지만 미워할 수 없는 ‘구’아빠 환규, 공부 머리는 부족하지만 착하고 순수한 호훈, 사랑이 넘치는 호훈의 부모님까지, 전형성을 탈피했지만 충분히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들이 극을 풍성하게 채운다.

특히 토일과 선명은 사회가 규정짓던 여성상에서 벗어난 캐릭터로 새로운 자극을 준다. 토일은 어느 날 갑자기 임신을 선언하며 일생일대의 선택을 별일 아닌 듯 쉽게 해치워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선택한 삶에 충실한 인물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혼자 힘으로 답을 내릴 수 있는 현명함도 갖췄다. 다소 무모해 보이고, 엉뚱하기도 한 토일을 응원하게 되는 이유다.

선명 역시 그동안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렸던 엄마들과 다르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자신의 인생은 뒷전이었던 이름 모를 엄마가 아닌, 딸 못지않게 당당하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찾아 나서는 인물이다. 여느 모녀처럼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기도 하지만, 그 누구보다 든든한 토일의 지원군이다.

가족에 대한 보편적인 메시지를 담은 ‘애비규환’. /리틀빅픽처스
가족에 대한 보편적인 메시지를 담은 ‘애비규환’. /리틀빅픽처스

‘애비규환’은 ‘정상’이란 무엇이고, ‘완벽한 선택’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어렸을 때 부모님의 이혼을 겪으면서 상처를 간직한 채 살아온 토일은 친아빠를 찾아 나섰던 여정을 통해 엄마의 선택을 이해하게 된다. 또 엄마의 이혼이 ‘실패’가 아닌 또 다른 시작이었음을 깨닫고 자신 역시 ‘망할지도 모르는’ 선택이지만, 용기를 내게 된다. 그런 토일의 모습은 실패가 두려워 나아가지 못하는 혹은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한 모든 이들을 위한 위로와 응원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부족해도 괜찮다는 격려다.

이번 작품으로 스크린 첫 주연을 소화한 정수정은 그동안 보지 못한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며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친다. 임산부 역할을 위해 살을 찌운 외적 변신부터 까칠하지만 당당하고 주체적인 매력의 토일을 잘 표현해냈다. 장혜진을 필두로 최덕문‧이해영‧강말금‧남문철 등 베테랑 배우들도 탄탄한 연기력으로 힘을 더하고, 신예 신재휘도 제 몫을 다한다.

최하나 감독은 “이혼을 하면 실패한 결혼이라는 부정적 시각이 있는데, 오히려 자기 삶의 오류를 인정하고 고치기로 결심한 사람들”이라며 “불행하지 않고 행복한 사람으로 편견 없이 바라봐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러닝타임 108분, 오는 1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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