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대표

‘세류성해(細流成海).’ 가는 물줄기가 모여 큰 바다를 이룬다는 뜻이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작은 힘이 모이면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의미와도 맥이 닿아있다. 우리는 이미 지난 촛불혁명을 통해 이를 경험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것은 거대 권력도 아니고 정치적인 어젠다도 아니었다. ‘국민주권’을 위해 행동했던 ‘시민들의 힘’이었다. 하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대한민국 변화를 이끄는 중심, ‘시민운동가’들의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제언을 경청해본다. [편집자주]

지난달 30일 오전 10시 서울 강서구 등촌동 한 카페에서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대표를 만나 그간의 여러 활동과 무장애여행의 의미를 짚어봤다. /사진=김경희 기자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2016년 발간된 한 여행 책은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지금까지도 사회에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유럽,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라는 제목의 이 책은 20대 여성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홀로 유럽 7개국 25도시를 여행하면서 느낀 경험담을 담고 있다. 책이 발간된 후, 그녀의 용감한 도전에 “대단하다”는 박수가 쏟아졌지만 정작 책의 저자인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대표는 그런 반응을 어색해했다. “그저 여행이 떠나고 싶어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이라는 게 그의 말이었다. 

하지만 많은 장애인들에게 여행은 접근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각종 물리적·사회적 제약에 가로막혀 가벼운 국내 여행조차 선뜻 용기를 못 내는 장애인들이 상당하다. 최근 몇 년간 장애인들의 여행에 대한 인식과 시스템이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갈 길이 먼 실정이다. 홍 대표는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사회 및 제도 개혁에 목소리를 내온 인사다. 장애인 관광권과 이동권, 나아가 무장애여행의 저변 확대에 힘써왔다. 지난달 30일 오전 10시 서울 강서구 등촌동 한 카페에서 홍 대표를 만났다.  

◇ 여성 청년 장애인의 당당한 도전이 준 울림 

홍서윤 대표는 장애인 정책 연구가, 앵커, 여행가, 청년 활동가, 장애인여행협회 대표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여성 장애인의 사회 활동을 저변을 넓혀 왔다. /사진=김경희 기자 

장애인 정책 연구가, 앵커, 여행가, 청년 활동가, 장애인여행협회 단체 대표, 정당인. 1987년생인 홍서윤 대표는 올해 만 33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다양한 활동 이력을 갖고 있다. ‘정말 다양한 활동을 하셨다’라는 기자의 질문에 홍 대표는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말한 뒤 미소를 지었다.  

홍 대표는 자신의 성격에 대해 “남의 눈치를 별로 보지 않는 편”이라고 소개했다. “10대 시절에 외국에서 생활을 해서 그런지, 보다 자유로운 성향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고 자란 홍 대표는 초등학교 3학년이던 10살 때, 바이러스성 척수염을 앓고 척수 장애를 갖게 됐다. 중·고등학교는 필리핀에서 다녔다. 부모님은 집 근처에 있는 국내 일반 중학교에 그를 입학시키고자 했지만, 당시 학교 측에서 거부하면서 해외로 건너가 공부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당시 집 근처 중학교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이를 이유로 학교 측에선 입학을 거부하면서 특수학교에 보내라고 했다. 인근의 특수학교는 버스로만 2시간이 걸릴 정도로 먼 거리였다. 부모님이 사비라도 낼 테니, 기부입학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사정했지만 교장이 거절했다. 결국 부모님은 ‘아이가 한국에서 차별을 받느니, 해외로 가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했고 지인을 통해 알아봐 필리핀 국제학교 학교에 저를 보내셨다.” 
 
중·고등학교를 해외에서 보낸 뒤, 홍 대표는 스무 살 무렵 한국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고자 귀국했다. 초기 한국 학교생활 적응은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홍 대표는 “필리핀에 있을 때는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하면 소통이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그런데 한국에선 분명 합리적인 이유로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이 빈번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학 입학 초기, 강의실 배정 과정에서 겪었던 일화를 털어놨다. 

“필수 이수 과목이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강의실이 배정돼 있었다. 그래서 교무처에서 가서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강의를 들으러 갈 수 없으니 강의실을 바꿔달라’고 합리적으로 요청했다. 그랬더니, 교무처에선 ‘감히 학생이 강의실을 옮겨달라고 하느냐. 다음 학기에 수업을 들어라’고 했다. 다음 학기엔 엘리베이터가 있는 강의실이 배정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 상태였기에 전 싸워야 했다. 결국 해당 과목 교수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 문제를 해결했다.”

홍 대표는 해당 사건을 개인적인 일로 끝내지 않았다. 대학 내 장애학생지원센터에 문제를 알리고, 장애 학생들이 같은 불합리한 일을 겪지 않도록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결국 학교의 시스템이 바뀌었다. 홍 대표는 “해당 일을 계기로 장애인 학생들이 수강 신청을 했을 때, 강의실이 어떻게 배정되는 지를 살펴보고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강의실을 조정하는 형태로 바뀌게 됐다”며 “다만 합리적인 요청을 했음에도 말도 안 되는 거절을 당하니, 당시 일은 깊은 상처로 남았다”고 털어놨다. 

◇ 여성 앵커로서 활동 “멘트 하나하나에 책임감 컸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장벽에 홍 대표는 굴하지 않았다. 문제가 있다면 해결을 요구하는 것에 거침이 없었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2013년에는 104대 1의 경쟁을 뚫고 KBS 첫 여성 장애인 앵커에 선발되기도 했다.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 과정을 밟던 중, 어머니의 권유로 우연찮게 도전하게 됐다던 그는 당시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활동했다고 회상했다. 

“제가 방송을 통해 노출됐을 때, 다른 장애인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했다. 저의 방송 멘트 하나하나가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에 고민이 많았다. 저로 하여금 장애인들이 불편하지 않고, 장애인 전체 집단에 대한 이미지가 다운그레이드 되는 일이 없어야 했다. 그래서 방송 활동을 때마다 신중하게 말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KBS 첫 여성 장애인 앵커로 활동했던 홍 대표는 “저의 방송 멘트 하나하나가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에 고민이 많았다. 저로 하여금 장애인들이 불편하지 않고, 장애인 전체 집단에 대한 이미지가 다운그레이드 되는 일이 없어야 했기에 신중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사진=김경희 기자 

2년간 앵커 생활을 통해 여성 장애인들의 사회적 활동 영역을 넓힌 그는 한 가지 아쉬움도 토해냈다. 홍 대표는 “역대 KBS 장애인 앵커 중 저만 여성이었다”며 “현재까지 총 5명의 장애인 앵커가 배출이 됐는데 모두 남성이었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사회 참여) 비중을 늘리고 있지만 대부분이 남성 장애인 중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홍 대표는 여행가로서의 활동 이력도 갖고 있다. 그는 지난 2015년 휠체어를 타고 홀로 유럽 7개국을 다녀온 뒤, 여행기를 담은 책을 출간해 화제의 중심에 섰다. ‘힘들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오히려 한국보다 이동하기 나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나라는 장애인들의 이동 문제를 얘기할 때, 항상 교통수단만 고민한다. 사실 이동은 눈 뜨고 잘 때까지 일어나는 모든 행위와 연관돼 있다. 어떤 사람이 안전하게 움직이기 위해선 보행 환경 등 많은 것이 고려돼야 한다. 유럽의 경우, 이런 보행권 문제까지 고려해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에 해외의 경우, 신축 건물을 올릴 때도 굉장히 디테일한 문제까지도 신경을 쓴다. 물론 해외도 오래된 건물의 경우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불편한 부분이 없지는 않다. 다만 해외에선 시설을 구축하지 못한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미안함을 표한다.” 

반면 한국의 경우, 장애인들을 위해 구축된 시설을 제대로 운영하지 않거나 아예 없애는 사례도 있다고 홍 대표는 꼬집었다. 일례로, 숙박업체들의 문제를 제시했다. 

◇ “유럽 여행보다 한국서 이동이 더 힘들어” 

홍 대표는 “우리나라는 건축법상 30객실 이상을 보유한 호텔은 장애인 객실 한 곳을 만들어 놓도록 돼 있다”면서 “그런데 일부 호텔에서 건축 허가를 받은 후에 해당 장애인 객실을 직원용 숙소로 쓰는 등 오용하는 사례가 있다. 호텔 측에선 이를 들키지 않으려고 객실을 문의하면 장기 투숙객이 있다고 핑계를 대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홍 대표는 “실태를 일일이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러한 편법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홍 대표는 무장애여행 확산이 장애인 이동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사진=김경희 기자 

홍 대표의 여러 개인적인 경험은 장애인들의 여행권 개선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홍 대표는 “여행을 해보니 너무 좋았다”며 “이 즐거운 경험을 많은 사람들이 누렸으면 좋겠다고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선 사회 인식 개선은 물론, 정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우선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2015년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를 열어 활동을 시작했다. 2017년에는 장애인관광협회로 명칭을 바꿔 활동을 폭을 넓혔다. 그리고 국내에 무장애여행 저변을 넓히는 데 앞장서는 역할을 했다. 무장애여행이란 누구나 물리적, 사회적 장벽 없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관광할 수 있는 환경을 뜻한다. 

홍 대표는 “그간 장애인 정책은 너무 복지 중심적이거나 시혜적인 관점에서 움직여왔다”며 정책적인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장애인 여행 정책이 포괄정책의 틀 안에서 다뤄졌으면 한다고 봤다. 그 일례가 무장애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게 홍 대표의 설명이다. 

무장애여행 정책은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다. 노인, 아이, 임산부 등 관광약자 뿐 아니라 일반인 누구나 장애를 느끼지 않고 여행할 수 있는 기반 및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무장애여행 정책은 이미 주요 선진국에서는 활발하게 도입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몇 년간 무장애관광지 개발 등 관련 정책 도입에 속도를 내왔다. 한국장애인관광협회도 이런 문화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서울시가 무장애관광 기본계획을 수립할 때도 함께 참여했다고 한다.  

홍 대표는 “무장애관광 영역에서 활동하는 분이 몇 년 전에만 해도 많이 없었다”며 “다들 각개전투로 활동을 하다가, 서로가 힘을 모으면 덜 힘들지 않을까 싶어 단체를 만들었다. 단체 명칭은 장애인관광협회지만 장애인관광만이 아닌, 무장애관광 전반의 이슈를 다루고 있다”고 전했다.  

홍 대표는 무장애관광의 저변이 확산되면 자연스럽게 장애인들의 척박한 이동 문제도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홍 대표는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한 정책적인 문제를 파악하면서 두 가지 문제를 마주하게 됐다”며 “공급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공급을 했을 때 수요가 나타나지 않아 괴리가 있다는 점이었다. 이동 환경이 개선되려면 장애인들이 밖으로 많이 나와야 한다. 이 과정에서 관광은 하나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관광 수요가 확대되면 이동권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일조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 “무장애여행 환경 구축, 제도적 개선 필요” 

물론 이러한 무장애여행 환경 구축을 위해선 제도적 개선도 필요할 전망이다. 교통, 보행, 편의시설, 여행지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선 이를 뒷받침할 세밀한 정책적 연구 및 제도 도입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홍 대표는 그간 정책적 연구가로서 활동을 이어왔다. 아울러 사회 및 정치적인 활동에도 적극 나섰다.  

홍 대표는 정치적인 활동도 이어갈 계획이다. 정책과 제도를 바꾸기 위해선 장애인들도 정치적인 영역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 /사진=김경희 기자 

홍 대표는 문재인 정부 대통령직속 국민인수위원회 국민소통위원을 지냈고 현재 서울시 청년정책위원회 위원, 국무총리실 산하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청년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올해 21대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에 도전장을 내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활동을 두고 일각에선 다소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이에 대해 홍 대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학을 다닐 때부터 전 제도와 정책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고등학교 때 정책과 제도를 바꾸는 것은 정치 활동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정당 활동을 하겠다는 생각을 고등학교 때부터 갖고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전 더 이해가 안 간다.”

◇ “청년 장애인, 사회적 활동 더 많아지길” 

홍 대표는 청년 세대로서의 고민도 품고 있다. 홍 대표는 “전체 장애인 정책도 중요하지만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세대에 대한 고민하고 있다”며 “현재 전체 장애인 정책 중 청년 장애인 정책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청년 세대를 위한 세밀한 정책이 논의될 수 있도록 노력해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더 많은 청년 장애인들이 사회적 활동을 이어가길 기대했다. 홍 대표는 “또래 장애들 중 새로운 영역을 발굴하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며 “사회적 기업을 만들기도 하고 다양한 일도 한다”고 전했다. 또 그는 사회적 변화를 위한 활동에도 참여가 많아지길 바랐다. 홍 대표는 “저보다 능력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나오고, 많은 활동을 해서 제가 백수가 됐으면 좋겠다”며 웃음을 지었다.  

홍 대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이날도 인터뷰가 끝난 뒤, 곧바로 일정이 있다며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홍 대표는 당분간 이동권 문제와 무장애여행 인프라 확산에 힘을 집중할 예정이다. 홍 대표는 “무장애여행 인프라가 잘 구축되면 다른 나라에도 우리나라를 알리고 싶다. 외국인 장애인분들도 한국에 많이 방문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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