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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인터뷰] 배우 정수정의 재발견
2020. 11. 12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그룹 에프엑스 멤버에서 연기자로 변신한 정수정(크리스탈)이 영화 ‘애비규환’(감독 최하나)로 관객과 만났다. /에이치앤드
그룹 에프엑스 멤버에서 연기자로 변신한 정수정(크리스탈)이 영화 ‘애비규환’(감독 최하나)로 관객과 만났다. /에이치앤드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로 또 한걸음 성장했다. 무대 위 화려한 모습 대신, 화장기 없는 얼굴에 배에 복대까지 차며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을 펼쳤다. ‘예쁨’을 내려놓는 ‘도전’이었지만, 스크린 속 배우 정수정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났다.

그룹 에프엑스 멤버에서 연기자로 변신한 정수정(크리스탈)이 첫 스크린 주연작 영화 ‘애비규환’(감독 최하나)로 다시 한 번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극 중 임신 5개월 차 대학생 토일을 연기한 그는 독보적인 캐릭터를 완성,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며 배우로서 진가를 증명해냈다.

‘애비규환’은 똑 부러진 5개월 차 임산부 토일(정수정 분)이 15년 전 연락 끊긴 친아빠와 집 나간 예비 아빠를 찾아 나서는 설상가상 첩첩산중 코믹 드라마다. 신예 최하나 감독의 장편 입봉작으로,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에 공식 초청돼 주목받았다.

‘애비규환’에서 임산부 역을 맡아 파격 변신에 도전한 정수정. /리틀빅픽처스
‘애비규환’에서 임산부 역을 맡아 파격 변신에 도전한 정수정. /리틀빅픽처스

정수정은 그동안 보지 못한 새로운 얼굴을 보여줬다. 임산부 역할을 위해 스타일링과 자세, 표정, 체중 증량 등 외적 변신부터 까칠하지만 당당하고 주체적인 매력의 토일을 잘 표현해냈다. 특히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토일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데, 정수정은 첫 스크린 주연답지 않게 안정적인 호흡으로 극을 이끈다. 장혜진‧최덕문‧이해영‧강말금‧남문철 등 베테랑 배우들 사이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존재감으로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2009년 그룹 에프엑스의 멤버로 데뷔한 정수정은 독특한 음악과 독보적인 퍼포먼스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2010년 MBC ‘볼수록 애교만점’을 통해 연기에 입문한 그는 MBC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SBS ‘상속자들’, SBS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tvN ‘하백의 신부’ 등을 통해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2017년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야구선수 김제혁(박해수 분)의 든든한 여자친구이자 밝은 에너지를 가진 한의대생 김지호를 연기한 정수정은 자연스러운 연기로 캐릭터의 매력을 살리는 것은 물론, 특유의 당당하고 솔직한 매력으로 캐릭터를 더욱 입체적으로 완성해 호평을 얻었다.

OCN ‘플레이어’(2018)에서는 뒷골목의 유명 드라이버이자 ‘걸크러시’ 매력을 지닌 차아령으로 분해 또 한 번 연기 변신을 선보였고, 현재 방영 중인 OCN ‘써치’에서는 절도 있는 몸짓과 카리스마 있는 눈빛의 엘리트 군인 손예림으로 변신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처음 군인 역할에 도전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총을 잡는 자세, 눈빛, 말투, 가지런히 넘겨 묶은 헤어스타일까지 손예림 그 자체로 분해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다.

영화 ‘애비규환’으로 스크린 첫 주연을 소화한 정수정. /에이치앤드
영화 ‘애비규환’으로 스크린 첫 주연을 소화한 정수정. /에이치앤드

브라운관에 이어 스크린까지, ‘열 일’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정수정은 최근 <시사위크>와 만나 연기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가수 활동 역시 놓고 싶지 않다며 당찬 포부를 밝혀 눈길을 끌었다.

-첫 스크린 주연이었는데, 기분이 어떤가.
“첫 영화라 부담도 있었고 잘 해낼 수 있을까 반응이 어떨까 많이 걱정됐다. 그런데 주위 반응이 긍정적이라 다행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했으니까 화면에 잘 담기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촬영 들어가기에 앞서 좌절감에 울기도 했다고.
“작품 시작하기 전에 한 번씩 그런 시기가 오는 것 같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고 내가 해야겠다고 해서 결정했는데 막상 촬영 몇주 전, 혹은 한달 전에 내가 이걸 어떻게 하지 싶고 압박감이 든다. 게다가 처음 영화를 찍는 거고, 처음부터 끝까지 토일의 이야기라서 말 그대로 좌절을 했었다. 감독님이랑 대화 많이 나누고 ‘우린 잘 할 수 있어’라고 서로 토닥여주면서 마음먹고 나서는 그냥 직진했다.”

-토일 캐릭터는 어떻게 이해하고 다가갔나.
“당차고 자기주장이 강하고 책임감도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저질러놓은 일은 본인이 수습해야 하는 강한 애라고 생각했고, 외적으로도 꾸미는 애가 아니라 비주얼적인 부분은 신경쓰지 않았다. 처음 대본을 읽으면서 토일이 매력이 있지만, 너무 제멋대로 아닌가 싶기도 했다. 감독님한테 이해 안 가는 부분을 물어보면 설득을 시켜줬다. 설득을 당하니 이해가 확 가더라. 그래서 연기하는데 어렵진 않았다.”

-어떤 부분이 이해하기 어려웠나.
“우선 임신을 했는데 5개월이 지나서 부모님한테 말을 한다는 것. 배가 이만큼 불러서 엄마한테 통보를 하지 않나. 나 같으면 상의를 했을 거다. 그런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얘는 자기가 제일 똑똑한 줄 아니까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인 거다. 나랑 다른 사람이니 이해가 안 되는 것도 당연하잖나. 이해해야지 어떻게 하겠나.(웃음)”

-최하나 감독과 또래였는데, 호흡은 어땠나.
“대화를 하다보니 공통점이 많이 있더라.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 음식 많은 게 비슷했고 삶의 방식이나 성향도 비슷했다. 서로를 알고 함께 작업하는 게 도움이 됐든 것 같다. 나이가 어려서 잘 맞은 게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잘 맞았다.”

배우로 차근차근 내공을 쌓아가고 있는 정수정. /리틀빅픽처스 ​
배우로 차근차근 내공을 쌓아가고 있는 정수정. /에이치앤드

-임산부 역할이었는데, 준비 과정이 궁금하다. 
“최하나 감독과 처음 미팅을 했을 때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감독님이 ‘그러면 안 된다, 임산부인데 볼이 너무 쏙 들어가 보인다’고 해서 그날부터 많이 먹고 운동도 안 하고 되게 편하게 지냈다. 정말 임산부처럼 통통하게 잘 나온 것 같다. 걸음걸이나 자세가 많이 다를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로 영상을 찾아보거나 주변 사람들을 봐도 크게 다른 건 없더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복대를 차기 시작했는데, 자연스럽게 자세가 나오더라. 무게도 있고 불편하니까 배를 손으로 받치게 되고 옆으로 앉게 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왔다. 똑바로 눕는 것도 불편하더라. 너무 힘들더라. 임산부들을 존경하게 됐다.”

-장혜진부터 최덕문, 이해영 등 많은 선배들과 호흡했는데 어땠나.
“처음엔 긴장을 많이 했다. 워낙 선배들이고, 토일이 제일 많이 부딪히지 않나. 첫 영화에다 경력도 아기라서 걱정이 됐는데, 선배들이 먼저 마음을 열어주고 분위기를 ‘업’시켜 주셔서 긴장 안 하고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선배들이 주는 에너지를 많이 받았다. 장혜진 선배와 모녀 연기도 너무 좋았다.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에 나도 덩달아 업이 됐다. 정말 친구 같았고 언니 같았다. 좋은 언니, 친구, 선배로 남은 것 같아 좋다.

(최)덕문 선배도 조카와 외삼촌처럼 장난을 많이 쳤다. 애드리브도 많이 하고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서치’도 함께 하고 있는데 현장에서 만나면 ‘내 딸이 언제 군인이 됐냐’고 한다.(웃음) (이)해영 선배는 친아빠 역할인데, 극 중에서도 어색하고 낯선 게 있지 않나. 실제 서먹함이 촬영에 도움이 됐던 것 같다. 극 후반에 헤어지는 장면이 있는데 신기하게 나도 울고 아빠(이해영)도 울었다. 우는 신이 아닌데 마음이 너무 이상하고 진짜 작별하는 것 같더라. 마음이 몽글몽글하고 진짜 아빠 같았다.”

-연기의 재미를 느낀 순간이기도 했겠다. 연기할 때 어떤 점에서 재미를 느끼나.
“연기라는 게 항상 다른 인생을 살아보는 거잖나. 그게 진짜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언제 임산부를 해보며 언제 여군을 해보겠나. 언제 감방에 간 남자친구를 만나겠나. 하하. 참 신기한 경험이고,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 캐릭터로 내가 살고, 나와 또 다른 인물을 표현해야 하고 그런 과정이 재밌다.”

정수정이 배우로서 각오를 밝혔다. /에이치앤드 ​
정수정이 배우로서 각오를 밝혔다. /에이치앤드 ​

-아이돌로 시작해 연기자로 영역을 확장했다. 배우가 되기 위해 또 다른 준비와 노력을 기울였을 것 같은데.
“마음가짐이 다르진 않다. 무대도 열심히 해야 하고, 앨범도 열심히 만들어야 하고 연습도 열심히 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최선을 다해서 했다. 후회도 없었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그때 그 순간의 내 최선이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받아들일까 어떻게 하면 캐릭터로 보일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있다.”

-가수 크리스탈과 배우 정수정의 차이가 있다면.
“없다. 무대는 무대고 연기는 연기다. 늘 그렇게 해왔다. ‘애비규환’을 통해 ‘토일이 같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어떤 캐릭터를 만나든 그 캐릭터로 봐주시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 또 무대에서는 멋있다고 하면 또 너무 좋다. 음악도 연기도 좋다. 몇 년 동안 연기만 해서 배우만 하려나보다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의도하지 않게 그렇게 됐고 앨범을 안 내고 싶어서 안 낸 것도 아니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막연하게 언젠가는 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다. 가수도 나의 일부분이고, 굳이 놓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항상 마음 한편에 간직하고 있다.”

-에프엑스 활동 계획은 없나.
“지금은 계획이 없다. 그런데 멤버들과 만나면 항상 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다 에프엑스에 애착이 강하다. 많이 아쉽다. 그 누구보다 아쉬운 건 우리인 것 같다. 슬프다. 그래도 각자 위치에서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연락도 자주하면서 생존신고하고 그런다.(웃음)”

-배우로서 각오도 궁금하다.
“‘애비규환’으로 첫 스타트를 잘 끊었으니, 여러 작품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앞으로 뭘 할지 궁금한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맡은 캐릭터에 몰입해서 캐릭터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게 열심히 할 테니 관심 있게 봐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