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경쟁 사회에서 예술은 하나의 숨구멍이 돼 왔다. 많은 이들은 책과 음악, 공연과 전시를 통해 일상의 지루함을 달래기도 한다. 예술인의 화려한 이면에는 하나의 작품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치열한 삶이 있다. 그러나 쉽지 않다. ′예술은 배고프다′는 인식은 예술계를 움츠려들게 만든다. 어떻게 하면 예술인들이 살만한 세상이 될 수 있을까. <시사위크>는 코로나19를 맞이한 예술계의 현주소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감독인 고(故) 최고은씨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예술인 복지법′이 제정됐다. 사진은 최씨가 감독을 맡은 단편영화 '격정 소나타'의 한 장면. /뉴시스

시사위크=권신구 기자  지난 2011년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던 고(故) 최고은씨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의 집 문 앞에는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남는 밥과 김치가 있으면 문 좀 두드려 달라’는 쪽지가 붙어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생활고에 시달린 예술가의 현실에 세상은 충격에 빠졌다.

안타까움 속에 일명 ‘최고은법’(예술인 복지법)은 탄생했다. 그간 관심밖에 있던 예술인들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왔다. 나름의 유의미한 변화도 이어졌다. 정부는 예술인들의 실태를 조사하고, 다양한 지원제도를 마련했다. 예술계에선 ‘예술인이라는 존재가 사회에 실재하는 대상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 더딘 예술인 ‘사회보장’

1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가장 큰 문제는 현행 예술인 복지법으로는 예술인이 사회보장제도를 누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코로나19 등 예술 위기 상황에서 예술인 복지법이 혁신적으로 개정돼야 하는데, 그 중 하나인 이 법이 예술인 사회보장제도를 반영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다수의 예술인들이 프리랜서 형태로 작업을 하고, 수익 구조 불안정 등으로 논의는 쉽게 진전되지 못했다. ‘4대 보험’ 적용을 받는 임금 근로자와는 달리 그간 예술인들이 받을 수 혜택은 ‘산업재해보장보험' 뿐이다. 예술인 복지법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오경미 문화예술노동연대 사무국장은 “예술인 복지법의 주요 목표 중 하나가 예술인의 사회보장보험 가입이었지만, 산재보험만 마련됐고 그것도 예술 현장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설계였다”라며 “예술인은 근·골격계 질환이 많지만, 그런 질환은 예술인 산재보험으로 커버되지 않는다.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 실효성 없는 대책이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술인 사회보장제도의 빈틈을 보완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오는 12월 시행을 앞둔 ‘예술인 고용보험’이다. 예술계는 오랜 숙제가 해결됐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분위기다. 하지만 여전히 고용보험 적용대상이 되는 예술인 범위나 사용자 특정 등이 문제로 거론된다. 

다만 첫 시행 단계이고, 논의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를 계기로 향후 예술인 사회보장 논의가 더욱 불이 붙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드러난다. 이 교수는 “고용보험에 예술인이 해당된 것을 계기로 예술인 복지법 역시 사회보장 강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바람”이라며 “첫 단계인 만큼 미흡하더라도 진행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예술인 복지법이 탄생한지 10여 년이 흘렀지만, 예술인의 사회보장제도 편입과 재원 마련 등 문제가 남아있다. /뉴시스

◇ 재원 마련 등 지속성 문제

예술인 복지법이 탄생 후 10여 년간 여러 번의 개정을 거쳐 예술인 복지는 어느 정도 기틀이 마련돼 왔다. 예술계에서 빈번하게 벌어졌던 계약서 미작성을 개선하기 위해 ′서면계약서 의무화′가 시행됐다. 여기에 예술인의 생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예술인 생활 자금 대출′ 등 지원 방식도 다양화 되고 있다.

당초 논란이 많았던 ‘예술인 활동증명’도 여러 방식을 통해 보완하고 있다. 예술인 활동증명은 경력을 증명해야 하는 기준이 높았던 탓에 신인 예술가들의 진입이 어렵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최근 ′청년 예술인 지원사업′ 등 우회 방안을 마련해 이러한 부분을 해소하려는 추세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현재 예술인 복지는 정부의 역할이 막중하다.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에 따르면, 2020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총수입은 698억5,800만원이다. 이 중 698억1,200만원이 정부 지원금이다. 지원 사업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 역시 정부의 몫이다. 이렇다 보니 실제 현장에서 적용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위급 상황시 즉각적인 지원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재원 확보를 위한 ‘금고(金庫)’ 마련이 과제로 꼽힌다. 당초 입법 단계에서부터 필요성은 언급돼 왔지만, 공적 기금 통합이라는 정부 정책 기조에 따라 부처간 협의로 삭제되면서 현행법으로 굳어졌다. 예술인 복지 의제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예술인소셜유니온 관계자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독립적 편성이 없다 보니 긴급한 재원구조를 확보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며 “일종의 금고 등을 통해 예술인 지원구조를 만들기 위한 유동성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오랜 시간이 흐른 만큼 예술인 복지에 대한 논의의 폭도 넓어지고 있다. 예술인의 보편적 복지 확대를 어떻게 가능케 할 것인가도 중요한 의제다. 그동안 예술인을 단순 ‘지원 대상’으로 인식한 것을 넘어 ‘주체’로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예술인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자는 주장에도 힘이 실린다. 최근 ‘예술인 권리보장법’ 제정 움직임 등은 이같은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예술인소셜유니온 관계자는 “2011년 제정 때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뭔가를 지원하는 목적으로 법을 정했는데,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올라온 편”이라며 “현재 예술인 복지법이 예술인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를 적용하는 데 있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분위기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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