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민생경제연구소 공동기획

소처럼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는 듯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민생 경제’ 위기는 단 한 가지 원인으로 귀결될 수 없다.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 중에는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각종 불공정한 시스템도 중심축 역할을 한다. <본지>는 시민활동가인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주요 민생 이슈를 살펴보고,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말이다. [편집자주]

마트노동자 중 10명 중 7명은 근골격계 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마트노조는 무거운 상자에 손잡이로 쓸 구멍이라도 뚫어달라고 호소했지만 개선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이미정 기자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국내 대형마트는 1993년 국내에 처음 매장이 오픈한 이래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왔다. 다양한 상품, 쾌적한 환경, 체계적인 서비스, 각종 편의시설을 제공하는 대형마트는 국민들의 소비생활에 중요한 요소가 된 지 오래다.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아 고객 서비스는 더욱 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마트들은 디지털과 AI(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안내로봇과 스마트카트 등을 도입해 향후 최첨단 고객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처럼 고객서비스는 최첨단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정작 마트산업의 종사자인 직원들의 노동환경 개선은 더디기만 하다. 무거운 상자에 손잡이로 쓸 구멍이라도 뚫어달라고 호소한 지 1년이 지난 뒤에야, 더디게 개선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 골병드는 마트노동자 “상자 ‘손잡이 구멍’만 뚫려도…” 

서울 강동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일하고 있는 송현진(58) 씨는 하루에도 수백개의 상자를 올리고 내린다. 창고에서 제품이 든 상자들을 옮겨와 매장에 진열하려면 손이 쉴 틈이 없다. 평균 10kg 이상의 무거운 상자를 나르다보면, 손가락 마디마디가 저릿하고 손목이 아파오기 일쑤지만 그저 참는 수밖에 없다.

송씨는 고된 노동으로 손목터널증후군을 얻어 치료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노동환경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 보니, 고통을 참는 게 일상이 됐다. 산업재해 신청은 꿈도 못 꿨다. 23일 매장에서 만난 송씨는 이런 사연을 털어놓으며 “무거운 상자에 최소한 손잡이 구멍만이라도 뚫렸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서울 강동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일하고 있는 송현진(58) 씨는 하루에도 수백개의 상자를 올리고 내린다. 고된 노동으로  손목터널증후군을 얻어 치료를 받기도 했다. /이미정 기자

마트노동자 중 10명 중 7명은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6월 마트산업노동조합(마트노조)이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함께 마트 노동자 5,17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한 결과, 1년 사이에 근골격계 질환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노동자는 69.3%(3,586명)에 이르렀다. 오랜 시간 서서 일하고, 무거운 물건을 운반하며 관절에 무리가 가는 노동을 반복해온 것이 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특히 상품 진열 업무를 하는 노동자 상당수가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마트노조는 지난해 6월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이 같은 실태를 공개한 뒤, 무거운 상자 양쪽에 손잡이라도 설치해달라고 호소하고 나섰다. 상자에 손잡이만 설치돼 있어도 최대 40% 하중을 줄일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었다.  

◇ “상자 ‘손잡이’만 있어도 무게 최대 40% 하중 줄여” 

실제로 상자의 손잡이 유무의 차이는 컸다. 기자는 이날 마트노동자의 송씨와 만나 무거운 중량의 상자를 직접 들어봤다. 1.2kg의 올리고당 제품이 12개가 들어있는 상자 박스(14.4kg)를 들었다. 손잡이가 없다 보니, 맨 손으로 상자를 잡기도 어려웠고 상자 밑 부분을 겨우 잡아 들어올릴 수 있었다.

상자를 들어올렸더니, 손목에는 상당한 부담이 가해졌다. 상자 양쪽에 구멍 손잡이라도 있었으면 힘이 덜 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송씨는 “무거운 상자를 들고 내릴 때, 자칫하면 손목을 다칠 수 있으니까 항상 조심하는 편”이라며 “그래서 손잡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마트노조는 지난해부터 이 같은 이런 문제를 적극 호소하며 상자 손잡이 설치를 요구해왔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상자 손잡이 설치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변화에 대한 기대가 일기도 했다. 

하지만 상자손잡이 설치 추진은 1년이 지난 뒤인 최근에야 겨우 첫발을 뗐다. 마트노조가 지난 9월 명절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통해 상자손잡이 설치와 관련된 지지부진한 추진 속도를 규탄하면서 해당 이슈가 수면 위에 올랐다. 

상자 손잡이 설치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는 최근 개선 계획을 세웠다. 자체 브랜드(PB) 상품 상자 일부에 한해 손잡이를 만든 뒤, 내년부터 점차적으로 확대키로 한 것이다. 최근 당정 차원에서 택배노동자 및 마트노동자의 고충 해결을 위해 상자 손잡이 설치 추친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이 압박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일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마트노조 사무실을 방문해 상자 손잡이 설치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미정 기자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 역시, 마트 상자 손잡이 설치에 목소리를 내왔다. 안 소장은 이달 더불어민주당이 출범시킨 비상설특별위원회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위원회(이하 소확행위원회)’의 민간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마트 상자 손잡이’의 중요성을 피력하고 있다. 소확행은 사소하지만 국민이 크게 체감하는 사회적 이슈를 발굴해 해결하겠다는 취지로 출범한 특위다. 소확행위원회는 올해 최우선 3대 과제 중 하나로 ‘무거운 상자에 손잡이 설치’를 선정했다.

◇ 대형마트, 상자 손잡이 설치 개선 거북이걸음… “소포장 정책도 병행돼야”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만들 때 상자 양쪽에 구멍만 뚫으면 되는 건데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며 “현 정부가 노동존중을 표방하면서도 굉장히 불철저하고 성실하지 못하다라는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소확행위원회 차원에서라도 도입에 힘을 쏟겠다고 강조했다.

안 소장은 “그나마 최근 우체국 택배 상자에는 손잡이 구멍을 뚫기로 했지만 마트 상자는 도입률이 더딘 상황”이라며 “고용노동부는 적극 나서서 올해 안에 안착이 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잡이 구멍만 뚫린다고 마트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 문제가 모두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기자는 지난 20일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함께 정민정 마트노조 위원장을 만나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다.  

정민정 위원장은 “PB 상품에라도 도입이 되기로 한 것은 다행이지만, 아쉬운 부분이 여전히 많다”며 “일반 납품상자에도 도입이 되면 좋을 텐데, 해당 부분에 대해선 아직 논의조차 안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상자 손잡이 설치’가 근로자들의 근로 환경을 개선을 위한 만병통치약은 아니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 위원장은 “예컨대 20kg이 넘는 고중량의 상자를 계속해서 들어야 한다면, 상자에 구멍을 뚫어 손잡이를 설치한다고 하더라도 몸은 계속 부담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근본적으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선 상자 손잡이 설치 뿐 아니라, △소포장 실시 △운반 설비 확대 △상자 운반 건수 제한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봤다.  

정민정 마트노조 위원장은 근본적으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선 상자 손잡이 설치 뿐 아니라, △소포장 실시 △운반 설비 확대 △상자 운반 건수 제한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미정 기자

정 위원장은 “상자 하나의 무게가 20kg일 필요는 없다”며 “차라리 10kg 짜리상자를 2번 옮기는 게 낫다. 무게가 가벼우면 몸이 받는 부하는 적을 수밖에 없다. 이에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선 상자에만 구멍을 뚫는 것을 넘어, 소포장을 확대하는 방식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운반 도구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봤다. 정 위원장은 “직원들이 상자더미를 나를 때 사용하는 수레 중 일부는 바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낡은 경우가 많다”며 “기본적인 운반 도구는 주기적으로 점검을 통해 교체를 해줬으면 좋겠다. 또 운반 장비로 지금보다는 고도화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마트노동자 노동 존중 문화 안착 계기되길” 

그러면서 몇 해 전 한 대형마트의 창고형 매장에 방문했을 당시의 경험도 털어놨다. 정 위원장은 “2년 전에 한 창고형 대형마트에 갔더니, 자동주행 카트가 있었다”며 “그곳에서 마트산업 내에서 고객을 위한 서비스는 갈수록 첨단화되고 있는데, 정작 노동환경은 수십 년 전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첨단 카트를 시범 운영하고 있는 매장에서 노동자는 상자를 머리보다 높게 쌓아서, 힘으로 수레를 끌고 가고 있었다. 마트산업이 제대로 발전하려면 거기서 일하는 직원들의 노동환경도 4차 산업시대 맞게끔 변화해야 가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정민정 마트노조 위원장과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이 마트 상자 손잡이 설치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미정 기자 

정 위원장은 ‘상자 손잡이 설치 이슈’가 노동 존중 문화로 이어지길 소망하기도 했다. 정 위원장은 “노조의 마트 상자 손잡이 설치 요구에 많은 시민 분들이 호응을 해주셔서 감사했다”면서 “이를 통해 마트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이전보다는 개선되고 있다는 희망도 봤다. 사업주들도 이런 시대 변화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마트노동자는 매일 고된 감정노동과 육체노동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가 마트를 방문했을 때,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은 곳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이들의 간절한 호소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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