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시사위크 특별기획] Ⅲ. 아동학대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이자,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어린이가 행복하지 않은 사회는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린이 삶의 만족도가 OECD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어린이 행복권 신장은 우리 사회 화두에서 늘 벗어나 있다.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어린이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이나 인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면, 우리는 어린이들을 잘 키우고 있다는 깊은 착각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시사위크>는 2020년을 맞아 우리 사회 곳곳에 놓여있는 어린이 문제들을 톺아보며 어린이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그려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적절한 초기대응은 아동학대를 원천 차단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를 위해선 아동에 대한 외부의 파악이 필수적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적절한 초기대응은 아동학대를 원천 차단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를 위해선 아동에 대한 외부의 파악이 필수적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초기대응은 많은 유형의 범죄를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방안 중 하나다. 특히 아동학대의 경우엔 그 어떤 범죄 유형보다 초기대응이 중요하다. 빠르고 적절한 초기대응이 아동학대를 원천 차단하거나 더 큰 피해를 막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 초기대응, ‘파악’이 출발점

지난해 아동학대로 사망한 42명의 아동 중 만 1세 미만은 24명에 달했다. 이 중 5명은 출생 직후 변을 당했고, 10명은 치명적 신체학대에 의해, 7명은 극단적 방임에 의해 사망했다. 또 그동안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던 여러 아동학대 사건들을 돌이켜보자. 대부분 오랜 세월에 걸쳐 학대가 이어지며 그 강도가 심해져 비극에 이른 사건이었다. 

이는 앞서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던 아동학대의 뚜렷한 특징이다. 전반적인 아동학대는 피해 아동의 연령이 높아질수록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지만,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경우엔 피해 아동 중 영유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적절한 초기대응의 중요성은 이 두 가지 특징에 모두 적용된다. 신생아 살해를 비롯한 영유아시기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서도, 장기간에 걸쳐 지속되는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서도 초기대응이 핵심이다. 

하지만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아동학대에 대한 초기대응은 좀처럼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아동학대는 기본적으로 보호해야 할 사람에 의해, 보호해야 할 장소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영유아의 경우 특히 더 그렇다. 여전히 남아있는 전통적인 우리 사회 분위기도 아동학대에 대한 초기대응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대응을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파악이다. 어떤 문제가 있는지, 또 어떤 위험이 예상되는지 파악부터 해야 그에 적합한 대응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파악이 재빨리 이뤄져야 초기대응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선 우선 출생 직후부터 꾸준한 관리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장 반복되는 신생아 살해를 막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 이와 관련해 정부 관계당국에서는 ‘출생통보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분만에 관여한 의료기관이 출생 사실 및 관련 정보를 신속하게 국가 또는 공공기관에 통보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다. 이는 신생아에 대한 사회적 관리의 공백기를 최소화하는데 의의가 있다.

이후에도 아동들에 대한 외부의 파악이 보다 수월해져야 한다. 여기서 ‘외부’란, 정부·지자체 등 국가기관과 보육기관, 의료기관 등의 공적·사회적 영역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아동학대 발견율은 OECD 주요 국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나라의 아동학대 발견율은 OECD 주요 국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게티이미지뱅크

◇ 외부의 확인·관리, 제도화 이뤄져야

하지만 현재는 이러한 외부에서의 파악과 확인, 관리가 보장돼 있지 않다. 보육서비스 이용 과정에서, 또는 예방접종·영유아검진 등이 이뤄지는 의료기관에서 아동학대 정황을 감지할 수 있는 정도다. 만약 이러한 기관들을 이용하지 않고, 학대 정황이 주변 이웃 등에 드러나지 않을 경우 외부에서 아동학대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정부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실시해오고 있는 전수조사가 있지만 연 1회, 만 6세 취학아동을 대상으로 한다.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전수조사를 비롯한 외부의 확인 및 관리가 보다 촘촘해져야 한다. 

실제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가정 양육이 증가하고, 연이은 아동학대 사건이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자 정부는 지난 6월 만 3세 아동 및 취학 연령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각 지자체 차원에서 담당공무원들이 직접 가정을 방문하는 전수조사가 이어졌다. 

또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9월부터 10월까지 한 달 동안 취약계층 아동들을 점검한 결과 6만3,350명 중 0.9%에 해당하는 568명에게서 학대 우려가 확인됐다. 이 같은 점검은 열악한 환경 속에 안타까운 사고를 당했던 ‘인천 초등학생 형제 화재사고’를 계기로 이뤄졌다. 점검이 없었다면 이들 아동들 중 누군가에게 또 다른 비극이 벌어졌을지 모를 일이다.

이러한 조치들은 그저 일회성에 그칠 것이 아니라, 체계화시켜 나가야 한다. 그러나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지나친 사생활 침해, 그리고 잠재적 아동학대 가해자로 의심받는 것에 대한 반발이 상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가 개인을 과도하게 감시한다는 민감한 논란을 불러올 수도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나감과 동시에 효과적인 여러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아동학대를 예방하기 위해 철저한 사회적 관리가 이뤄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아동학대와 무관한 대다수 가정의 불편 및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서비스와 연계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 가령, 일정 주기별 가정 방문 조사를 의무화하면서 육아 전문가 상담이나 시기에 맞는 장난감, 가사도움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확대와 공감대 형성이다. 더 이상 충격적인 아동학대 소식에 분노하고 금세 잊어버릴 것이 아니라 해결에 함께 나서야 한다. 

지난해 아동학대 판정 사례와 신고건수는 각각 3만 건과 4만 건을 넘기며 나란히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그러나 아동 1,000명당 아동학대 피해아동 발견율은 3.81%에 그쳤다. 이 또한 매년 꾸준히 상승하고 있지만 여전히 OECD 주요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이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아동학대가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유아 가정방문서비스를 통한 아동학대 확인 시스템이 시행되고 있는 미국의 아동학대 발견율은 9%대에 이른다.

아동을 보호하는 책임은 오로지 부모와 가정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에게도 책임과 의무가 있다. 내 아이만 보호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아이들이 학대받지 않도록 함께 보호해야 한다. 아이가 없다고 외면해서도 안 된다.

조금의 불편함이 어디선가 아동피해를 당하며 하루하루 지옥 같은 날을 보내고 있을 아이를 구해내고, 지키는 일이라면 우리 모두 기꺼이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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