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Extinction)’. 지구상에 존재하던 어떤 종이 모종의 이유로 세계에서 사라져 개체가 확인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지구의 입장에서 멸종은 항상 일어나는 작은 사건일 뿐이다. 지구의 생명역사가 시작된 38억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생명체 대부분이 사라지는 ‘대멸종의 시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멸종의 원인이 기존의 ‘자연현상’에 의한 것이 아닌, 인간이 직접적 원인이 된 멸종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오염, 불법 포획부터 지구온난화까지 우리 스스로 자초한 결과물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제 지구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 스스로 자초한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편집자 주]

고급 모피 중 가장 인기가 높은 제품은 아마 밍크 모피일 것이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색상뿐만 아니라 촘촘한 털과 부드러운 촉감을 가진 밍크 모피는 다른 모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한 품질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위해 수많은 밍크들이 희생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신경쓰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사진=IUCN, Getty images, 그래픽=박설민 기자
고급 모피 중 가장 인기가 높은 제품은 아마 밍크 모피일 것이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색상뿐만 아니라 촘촘한 털과 부드러운 촉감을 가진 밍크 모피는 다른 모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한 품질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위해 수많은 밍크들이 희생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신경쓰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사진=IUCN, Getty images,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울긋불긋한 단풍이 떨어지더니 어느덧 한 해의 마지막인 겨울이 다가오면서 백화점 의류매장도 북적이고 있다. 쌀쌀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는 요즘, 따뜻한 외투 한 벌을 장만할 계획을 세우는 것은 모두 같은 생각인 듯 하다.

백화점에서는 수많은 재질로 만들어진 외투들이 전시돼 고객들의 눈길을 끌곤 한다. 이 중 값비싼 명품 코너에 전시된 ‘밍크 코트’만큼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상품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밍크코트는 이름 그대로 ‘밍크’라는 동물의 모피로 만들어졌다. 아름답고 우아한 색상을 지녔을뿐만 아니라 털의 양이 풍부하고 탄력도 우수해 다른 어떤 동물의 모피와 비교해도 압도적인 품질을 자랑한다. 그만큼 가격은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엄청난 고가다. 그야말로 모피의 끝판왕이라 볼 수 있다.

밍크코트를 제작할 때 사용되는 밍크 모피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생산지에 따라 ‘캐나다 나파 밍크’ ‘핀란드 사가퍼’ ‘아메리카 레전드 코펜하겐퍼’ ‘블랙그라마’ 등으로 나뉜다고 한다. 패션에 민감한 사람들이라면 이보다 많은 세부 분류 사항을 줄줄이 꿰고 있을 듯하다. 

그런데 밍크코트를 애용하고 구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중에 모피의 주인인 밍크가 어떤 동물인지, 밍크 모피처럼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또 그들이 우리의 패션과 멋을 위해 얼마나 많이 죽어갔는지, 이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몇이나 될까.

밍크는 족제비과에 속하는 소형 육식포유류로 주로 하천이나 호수 등 물가에서 살아가며 물고기, 개구리 ,뱀 등을 먹이로 삼는다. 사진은 현재 심각한 멸종위기 등급인 CR등급에 속해있는 유럽밍크의 모습./ ICUN

◇ 저주가 돼버린 ‘아름다운 털가죽’, 유럽밍크를 멸종위기로 몰아넣다

밍크코트의 모피로 사용되는 밍크는 포유류 식육목(食肉目: 주로 육식을 하는 갯과·고양잇과·족제빗과·곰과 따위의 동물) 족제비과에 속하는 매우 귀여운 동물로 야생 밍크의 갈색·암갈색의 털과 기다란 몸통, 짧은 다리를 가지고 있다. 주로 하천이나 호수 등 물가의 나무 빈 구멍, 바위 틈을 집으로 삼고 물고기, 개구리, 뱀 등을 사냥하며 살아간다.

밍크의 종류는 크게 ‘유럽밍크(Mustela lutreola)’와 ‘아메리카밍크(Mustela vison)’으로 나뉜다. 주로 핀란드·러시아·프랑스 등에 분포한 유럽밍크는 몸길이 28~43cm, 꼬리 길이 12~19cm정도이며, 무게는 약 740g으로 작은 동물이다. 북아메리카 지역에 분포한 아메리카 밍크는 몸길이 33~43cm, 꼬리길이 16~23cm, 무게 680~2,310g로 유럽밍크보다 좀더 큰 개체다.

특히 야생 유럽밍크의 털은 일반적으로 사육되고 있는 밍크 개량종보다 털이 훨씬 촘촘하고 질기다. 하지만 유럽밍크들을 물속에서 체온을 조절하고, 외부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던 털가죽은 이들에겐 ‘저주’가 됐다. 그들의 아름다운 털에 매혹된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남획하기시작했다. 

밍크는 족제비과에 속하는 소형 육식포유류로 주로 하천이나 호수 등 물가에서 살아가며 물고기, 개구리 ,뱀 등을 먹이로 삼는다. 사진은 현재 심각한 멸종위기 등급인 CR등급에 속해있는 유럽밍크의 모습./ ICUN
 현재 심각한 멸종위기 등급인 CR등급에 속해있는 유럽밍크의 모습./ ICUN

에스토니아 생명과학대학교 T.마렌 박사는 2007년 발표한 ‘유럽밍크의 멸종위기와 원인’ 논문을 통해 “유럽밍크를 의도적으로 사냥한 것이 유럽밍크 생태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며 “20세기 초 미국의 밍크 모피가 패션의 인기가 크게 증가했으며, 당시 연간 밍크 모피 생산량은 예상 연간 생산성의 두 배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또한 서식지 파괴도 유럽밍크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호수와 강가를 ‘친환경 에너지’인 수력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해 공사를 시작하면서 유럽밍크는 삶의 터전까지 잃어버리게 됐으며, 살충제, 중금속 등 환경오염문제로 인해 개구리 등의 주요 먹이군까지 감소했다. 결국 1800년대만해도 유럽 전역에서 아주 흔한 동물이었던 유럽밍크는 19~20세기에 걸쳐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했고, 멸종 직전까지 내몰리게 됐다. 

이같은 인위적인 요인 때문에 현재 유럽밍크는 국제 자연 보전 연맹(IUCN)가 멸종위기종 관리를 위해 작성한 레드리스트(Red rist)에서 ‘절멸 위기(CR: 야생에서 멸종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음)’ 등급에 분류돼 있다. IUCN 측은 유럽밍크가 3세대에 걸쳐 50% 이상의 개체수가 감소했으며, 향후 3세대가 지나면 약 80%의 개체수가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심각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유럽밍크는 ‘유럽 ​​야생 동물 및 자연 서식지 보존에 관한 협약’에 따라 국제적으로 엄격하게 보호되고 있는 종으로 포함돼 독일, 스페인, 에스토니아 등 국가들에선 인공수정 및 사육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에 있다. 특히 현재 유럽밍크 500여마리가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스페인에서는 2004년부터 환경 보전 프로그램을 통해 유럽밍크의 보호구역을 지정하고 서식지 복원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유럽밍크의 상황은 그나마 ‘양호’하다는 점이다. 아메리카 밍크속에 속해있던 ‘바다밍크(Sea mink)’는 심각한 남획으로 인해 완전히 멸종당했다. 1860년대부터 시작된 유럽과 미국의 모피 무역에 바다밍크의 숫자는 급격히 줄었고, 1894년 캐나다 뉴 브런스윅 지역에서 마지막 사냥이 이뤄진 후 모습을 감췄다. 그 이후에도 종종 목격담 등이 돌았으나 1903년 이후에는 이마저도 사라지며 바다밍크는 북미 지역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유일한 족제비과 동물이 되고 말았다.

현재 유럽밍크는 국제 자연 보전 연맹(IUCN)가 멸종위기종 관리를 위해 작성한 레드리스트(Red rist)에서 ‘절멸 위기(CR: 야생에서 멸종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음)’ 등급에 분류돼 있다. IUCN 측은 유럽밍크가 3세대에 걸쳐 50% 이상의 개체수가 감소했으며, 향후 3세대가 지나면 약 80%의 개체수가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IUCN 홈페이지 캡처

◇ 사육되는 밍크, 생후 7·8개월이면 도살… 코트 한 벌에 80~200마리 희생

불행 중 다행으로 유럽밍크와 함께 대표적인 밍크종으로 분류되는 아메리카 밍크들은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진 않고 있다. IUCN에 따르면 아메리카 밍크는 현재 ‘관심대상(LC)’ 등급에 속한다. 멸종 위험이 낮아 범주에 속하지 않는 양호한 생물군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어쩌면 멸종위기의 유럽밍크나 완전히 사라져버린 바다밍크보다 훨씬 고통받는 쪽은 아메리카 밍크일지도 모른다. 숫자는 이들보다 훨씬 많지만 현재 의류 제작에 사용되는 밍크 모피의 거의 대부분이 아메리카 밍크의 털가죽이기 때문이다. 

1866년 미국에서 처음 인공사육이 시작된 아메리카 밍크들은 모피를 얻기 위해 약 30cm² 정도 넓이의 매우 비좁은 사육장에서 수천~수만마리가 대량으로 사육되고 있다. 아름다운 색상을 얻기 위해 이종 교배 등의 품종 개량을 거쳐 짙은 블루 그레이, 화이트, 스탠다드 다크 등 다양한 색상의 밍크가 탄생한다. 

약 30cm² 정도 넓이의 비좁은 사육장에서 길러지는 밍크는 털이 가장 풍성하고 아름다운 때인 겨울철 12월~1월 사이에 도살된다./ 뉴시스

이렇게 탄생한 밍크들은 털이 가장 풍성하고 아름다운 때인 겨울철 12월~1월 사이에 도살된다. 한국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 최일택 팀장의 설명에 따르면 성장속도가 빠른 밍크는 생후 7·8개월이 되면 모피를 얻기 위해 도살한다. 밍크의 평균 수명이 7~10년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사람 나이로 약 7~8살의 어린 나이에 죽임을 당한다고 볼 수 있다.

밍크 도살 후 시간이 오래 지나면 사후경직(사망한 뒤 몸이 굳는 현상)으로 가죽을 벗기기 어렵고, 자칫 찢어지거나 늘어나 상품가치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 때문에 농장에서는 밍크의 목을 부러뜨려 즉사시킨 후 사후경직이 발생하기 전에 가죽을 벗겨낸다. 미국동물보호단체 IDA(In Defense of Animals)의 통계에 따르면 밍크코트 한 벌을 만들기 위해 희생되는 밍크의 숫자는 작게는 80마리에서 많게는 200마리에 이른다. 

이런 잔인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밍크의 모피는 세계 각지의 고급 의류 제작회사로 전달된 후 우리가 알고있는 밍크코트, 밍크 목도리 등이 되어 소비자들에게 고가의 제품으로 판매된다. 이것이 우리가 그동안 밍크 모피의 아름다움에 취해 외면하고 있던 불편한 진실이다.

유럽밍크의 아름다운 털가죽은 심각한 멸종위길
유럽밍크의 아름다운 털가죽으로 만들어진 코트(좌측)와 원단의 모습(우측). 밍크코트 한 벌을 만들기 위해선 80~200마리의 밍크가 희생돼야한다./ Getty images

◇ 세계적 밍크 모피 금지 운동, 그러나 코로나19로 또다시 고통받는 밍크

유럽밍크 멸종위기에 대한 관심도 증가, 글로벌 동물단체들의 밍크 농장에서의 끔찍한 모피 제조 과정 등에 대한 잇단 폭로가 이어지면서 밍크 모피 사용을 금지하자는 세계적 움직임이 거세다. 

세계 최대의 모피 생산국 중 하나인 노르웨이는 지난 2018년 약 100만 여개에 달하는 밍크 농장과 여우 농장을 오는 2025년까지 순차적으로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패션의 나라로 불리는 프랑스도 지난 9월 29일에 모피를 얻기 위해 밍크를 사육하는 농장들을 오는 2025년까지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프랑스 여론 조사기관 IFOP가 올해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7%가 밍크 모피 거래에 반대한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적 패션 브랜드도 밍크 모피 사용 금지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명품 브랜드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코치(COACH)는 지난해 가을부터 출시되는 제품에 밍크, 여우 등의 모피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 영국의 명품 브랜드 버버리(Burberry)와 이탈리아의 베르사체(Versace) 역시 지난 2018년부터 향후 제품 제작에서는밍크 모피 사용을 일절 금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밍크들에게도 큰 재앙으로 다가왔다. 유럽에서는 현재 코로나19에 감염된 사육농장 밍크들 100만여마리가 살처분당하고 있다./ 뉴시스

다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밍크의 수난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전 세계에 큰 타격을 주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마저 밍크를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다. 밍크에게서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는 밍크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위험한 상황이다.

지난 4일 CNN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덴마크 밍크 농장에서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최초 인간 감염 사례가 보고됐다. 덴마크 북부에 위치한 밍크 농장에서 총 12명이 밍크로부터 돌연변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밍크발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현재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덴마크 정부는 1,500만~1,700만 마리에 밍크들을 모두 도살하라는 행정명령을 농장에 내렸다. 덴마크 정부는 지난 10월에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밍크 100만여마리를 살처분 한 바 있다. 다만 코로나19와 무관한 농장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지자 12일 해당 명령을 철회했다. 덴마크 이외의 프랑스, 스웨덴 등 유럽 주요 밍크 농장이 위치한 국가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밍크를 대량으로 살처분하고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동물보호단체 휴메인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IS) 조안 스웨브 이사는 “밍크 모피 농장은 거대하고 불필요한 동물들의 고통 원인일뿐만 아니라 치명적인 질병에 대한 시한 폭탄”이라며 “이는 코로나19의 돌연변이를 유발할 수 있는 잠재적인 바이러스 공장이며, 코로나19 백신 개발 등을 저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금도 백화점 명품관에 방문하면 고급 밍크코트를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마네킹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 뒤에 숨은 잔인한 진실들을 알게된다면 과연 그 밍크코트가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을까. 밍크는 코트로 만들어졌을 때 보다, 살아있을 때 더 아름다운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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