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함 입증 책임, 한국은 소비자 몫… 미국은 제조사가 결함 유무 입증해야
미국 징벌적 손해배상 존재, 천문학적 과징금… 한국은 관련제도 전무
교환·환불 사례 존재하나 소비자가 제조사 측 요구에 합의한 것… 세부내용 파악불가

올해 본격 도입된 ‘한국형 레몬법’은 강도 높은 소비자보호 장치지만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지난해 1월, 본격 도입된 ‘한국형 레몬법’은 강도 높은 소비자보호 장치라고 정부 측이 광고를 했지만 그간 실적을 보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시사위크=제갈민 기자  국내에 레몬법(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이 도입돼 시행된 지 1년10여개월이 지났다. 도입 취지는 좋다. 자동차 구매 시 차량에 중대 결함이 2회 이상 발생하거나 일반 하자가 3회 이상 발생했을 시 차량 구매자는 제조사에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레몬법으로 인한 자동차 교환·환불 사례는 전무해 법을 전반적으로 수정·보완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레몬법은 미국에서 가장 먼저 시행됐으며, 국내에는 지난해 1월 도입돼 시행됐다. 미국의 레몬법과 한국의 레몬법은 문제가 있는 차량에 대해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할 수 있으며 제조사는 이를 행해주는 것으로, 큰 틀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세 가지 정도 차이점을 보인다. △결함 입증을 누가 해야 하는지 △차량 결함에 대해 제조사의 조사가 철저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한지 △강제성이 있는지 등이다.

미국은 자동차 결함 입증 책임에 제조사에 있다. 이는 자동차에 대해서 소비자보다 자동차 제조사가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제조사가 결함의 원인 규명을 하지 못한다면 교환이나 환불을 해줘야 한다.

한국은 차량 결함이 제조상의 문제인지, 소비자의 과실로 인한 것인지를 소비자가 직접 증명해야 한다. 차량 결함이 소비자 본인의 과실이 아니라 제조과정의 문제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고스란히 소비자의 책임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또 미국에서는 차량 결함에 대해 제조사 측에서 철저한 조사를 진행하지 않는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 이 경우 제조사에는 천문학적인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으며, 미국의 레몬법은 강제성이 있다. 소비자 중심으로 법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한국 레몬법은 결함에 대해 자동차 제조사 측이 원인을 밝힐 필요가 없다 보니 조사도 면밀히 이뤄지지 않는다. 강제성 또한 없다.

이러한 차이 때문일까, 한국교통안전공단(TS)으로부터 제출받은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 레몬법이 시행된 이후부터 지난 9월 30일까지 528건의 중재 신청이 들어왔음에도 교환·환불 판정은 단 한 건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모두 528건의 신청 건수 중 접수 또는 중재가 진행 중이거나 요건 미비 등으로 중재가 개시되지 못한 건들을 제외하면 128건의 중재가 종료됐다. 이 중 30건이 판정으로 이어졌으나 25건은 각하·기각됐고, 5건은 정밀점검 등을 조건으로 화해 판정이 확정됐다. 특이한 점은 중재가 취하된 98건 중 교환이나 환불이 진행된 건이 26건 존재했다는 점이다. 취하된 내용으로는 △교환 11건 △환불 15건 △추가수리 33건 △기타(하자없음 인정 등) 39건이다.

이를 토대로 국토부 측에서는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교환이나 환불이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레몬법에 따라 정부의 명령으로 교환·환불, 추가 무상수리 등이 이뤄진 것이 아닌 차량 제조사 측과 소비자 간의 합의를 통해 이뤄진 것이다. 레몬법으로 인한 교환·환불 판정은 0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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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레몬법이 시행된 후 레몬법으로 인해 제조사가 소비자에게 차량 교환이나 환불을 해준 사례는 단 한 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 픽사베이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분쟁이 취하된 사건에 대해서는 자동차 제조사 측이 국토부나 TS 등으로 소비자 측과 합의 내용을 제출하는데 이는 업무상 기밀로 외부로 자료 제공이 불가능하다”며 “실제로 교환이나 환불, 추가 수리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는 제조사와 분쟁을 신청한 소비자 당사자만이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교환이나 환불이 어떠한 브랜드가 언제 어떻게, 실제 이뤄졌는지 등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허점에 대해 지적하며 한국의 레몬법은 수정·보완이 시급하다면서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한국에서 레몬법이 탄생하기 전인 2018년부터 ‘레몬법이 만들어 질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되지 않으면 의미가 전혀 없다’고 수차례 지적해 왔다.

김필수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시행 중인 레몬법은 미국의 레몬법을 흉내만 낸 것으로,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손봐야 한다”며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차량 결함이 발생하면 원인을 소비자가 밝혀내야 하고, 정부가 업체에게 강제로 차량 결함 조사를 명령하거나 교환·환불을 요구 할 수도 없어 차량 제조사 측이 먼저 나서서 할 해결할 필요가 없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레몬법도 국내에서 판매하는 자동차 브랜드 모두에게 자동적으로 적용되게 해야 함에도 정부 측에서 수입차 브랜드를 찾아다니며 레몬법에 동참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아직까지 한국 레몬법에 동참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실제로 배짱장사를 하고 있는 수입차 브랜드가 존재해 한국형 레몬법은 유명무실한 법”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최근 레몬법을 강제할 수 있는 상위법이 발의된 점에 대해서는 불행 중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법 중 하나가 레몬법의 상위법으로, 신차를 사면 국산이나 수입차 모두 레몬법을 무조건적으로 적용 받도록 하는 내용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러한 점은 상당히 의미가 깊다. 그러나 아직 미국처럼 제조사가 소비자에게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수천억원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하거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등 강제성이 다소 부족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 지속적으로 수정보완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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