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열 전 코오롱 그룹 회장의 장남 이규호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웅열 전 코오롱 그룹 회장의 장남 이규호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그동안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 입을 앙 다물었다. 입이 다 금이 간듯하다. 여태껏 턱이 빠지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다. 이제 그 특권도, 책임감도 내려놓겠다.”

2년 전인 2018년 11월 28일,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 사내 임직원 행사에서 깜짝 은퇴를 발표하며 한 말이다. 그는 “나이 마흔에 회장 자리에 올랐을 때 딱 20년만 운전대를 잡겠다고 다짐했었다. 지금이 아니면 새로운 도전의 용기를 내지 못할 것 같아 떠나려 한다”며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새롭게 창업의 길을 걷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이웅열 전 회장은 탈세혐의와 410억원에 달하는 퇴직금 수령, 그리고 인보사 사태 등이 이어지며 ‘아름다운 퇴장’을 이루지 못했다. 또한 재벌 총수치고 다소 파격적이었던 발언도 그 진정성이 훼손됐다.

◇ 2012년 입사해 2020년 부사장 등극한 금수저 장남

최근 단행된 코오롱그룹의 임원인사는 이웅열 전 회장의 진정성에 또 다시 물음표를 붙이고 있다.

코오롱그룹은 지난 26일, 안병덕 부회장을 지주사 코오롱 대표이사에 내정하는 것을 필두로 한 2021년도 정기 임원인사를 발표했다. 승진 명단 중 단연 눈길을 끈 것은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고 있던 이규호 전무다. 그는 이번 인사를 통해 코오롱글로벌 자동차사업부문으로 자리를 옮기며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규호 부사장은 이웅열 전 회장의 장남이다. 이웅열 전 회장은 슬하에 1남2녀를 두고 있는데, 이규호 부사장이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꼽히고 있다.

이규호 부사장은 1984년생으로 올해 우리 나이 37세다.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에 차장으로 입사한 그는 2014년 코오롱글로벌 부장, 2015년 코오롱인더스트리 상무보, 2017년 코오롱 전략기획담당 상무, 2018년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COO 전무로 초고속 승진가도를 달려왔으며 이번에 또 다시 부사장으로 승진하게 됐다.

이는 초고속 승진이 빈번하게 나타나는 재계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속도다. 32세의 나이로 처음 임원 반열에 올랐던 당시엔 국내 100대 기업 최연소 임원이기도 했다.

◇ 경영성과 물음표… 명분 쌓기용 자리 이동 지적도

이를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다. 능력과 무관하게, 오로지 오너일가라는 이유로 이뤄진 승진이란 지적이 어김없이 제기된다. 보통 일반 직원들에게 임원 승진은 ‘꿈’으로 여겨진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선 통상 40대 후반~50대 초반까지 20년 가까이 고군분투해야 한다. 그런데 이규호 부사장은 그 꿈을 불과 3년 만에 이룬 뒤 계속해서 거침없는 승진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뚜렷한 성과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규호 부사장이 COO로 부임한 2019년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은 9,729억원의 매출액과 13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부진한 성적표를 내놓은 바 있다. 이규호 부사장이 부임하기 직전인 2018년과 비교해 매출액은 7%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3분기까지 매출액 5,814억원, 영업손실 272억원으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뤄진 이규호 부사장이 자리 이동이 ‘명분 쌓기용’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이규호 부사장은 이번 인사를 통해 코오롱글로벌 자동차사업부문을 담당하게 됐다. 수입차 유통 및 정비사업을 영위하는 곳이다.

수입차 시장은 꾸준하고 가파른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무색하게 올해도 성장세가 뚜렷하다. 코로옹글로벌은 이러한 수입차 시장에서 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는 BMW와 오랜 세월 함께해온 최대 딜러사다. 이미 구축해놓은 네트워크가 상당하다. 특히 최근 2년간 다소 부진에 빠졌던 BMW는 올해를 기점으로 재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년엔 큰 폭의 성장세를 이룰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또한 코오롱글로벌은 아우디, 볼보 등의 딜러사이기도 하다. 두 브랜드 역시 수입차 시장에서 뚜렷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내년 전망도 밝다.

즉, 이규호 부사장은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에서 저조한 실적을 남긴 채 안정적이고 실적 성장세가 예상되는 코오롱글로벌 자동차사업부문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이규호 부사장의 이러한 행보가 전형적인 금수저 행보라는 데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 금이 간 것 같다던, 그리고 금수저를 내려놓겠다던 이웅열 전 회장의 장남이 또 다시 전형적인 금수저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셈이다. 이로써 이웅열 전 회장의 파격적이었던 발언은 또 한 번 그 진정성이 흔들리게 됐다. 

이웅열 전 회장은 은퇴 발표 당시 승계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다. 아들에 대한 승계는 능력이 있다고 판단돼야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규호 부사장은 승진가도를 달려오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지분 보유는 전무하다. 승계를 완성하기 위해선 반드시 이웅열 전 회장의 지분을 넘겨받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모습이 이어진다면 승계를 완성하는데 있어 세간의 싸늘한 시선과 상당한 부담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규호 부사장의 향후 행보가 더욱 주목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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