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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인터뷰] ‘물 만난’ 전종서가 무섭다
2020. 12. 07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배우 전종서가 강렬한 빌런이 돼 돌아왔다. /넷플릭스
배우 전종서가 강렬한 빌런이 돼 돌아왔다. /넷플릭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거장 이창동 감독은 8년 만에 선보인 신작 ‘버닝’(2018)에서 연기 경험이 전무한 신예 전종서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배우’라고 극찬했다. 그리고 2년 후 넷플릭스 영화 ‘콜’(감독 이충현)로 돌아온 전종서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역대급’ 캐릭터를 완성시키며 이창동 감독의 말에 더 큰 힘을 실었다.

전종서는 데뷔하자마자 이창동 감독의 ‘버닝’ 여주인공 자리를 꿰찬 데 이어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까지 밟으며 주목을 받았다. 극 중 종수(유아인 분)의 어릴 적 고향 친구이자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자유로운 매력을 지닌 해미 역을 맡아 신인답지 않은 아우라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해당 작품으로 주요 영화제에서 신인여우주연상 후보로 이름을 올린 것은 물론, 애나 릴리 아미푸르 감독의 ‘모나 리자 앤드 더 블러드문’로 할리우드 진출까지 확정지으며 ‘대세’ 행보를 이어갔다.

넷플릭스 영화 ‘콜’로 돌아온 전종서는 이창동 감독의 선구안이, ‘버닝’ 속 해미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해냈다.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해석을 더해 섬뜩하면서도 매력적인 영숙을 완성시켰다. ‘반짝 스타’ 전종서가 아닌, ‘진짜 배우’ 전종서의 한걸음 한걸음에 기대가 쏠리는 이유다.

지난달 27일 공개된 ‘콜’은 한 통의 전화로 연결된 서로 다른 시간대의 두 여자가 서로의 운명을 바꿔주면서 시작되는 광기 어린 집착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로,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와 독보적인 미장센, 강렬한 캐릭터로 공개 직후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배우들의 열연 역시 호평의 이유인데, 그중에서도 전종서는 단연 독보적이다. 자신의 끔찍한 미래를 알고 폭주하며 연쇄살인마가 되는 영숙으로 분한 그는 아이 같은 천진한 얼굴부터 광기를 뿜어내는 섬뜩한 모습까지 완벽하게 그려내 호평을 얻고 있다. 특히 그가 완성한 영숙은 단순히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폭발적인 힘을 뿜어내며, 한국영화 사상 가장 강력한 ‘빌런’의 탄생을 알렸다.

영화 ‘콜’(감독 이충현)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낸 전종서. /넷플릭스
영화 ‘콜’(감독 이충현)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낸 전종서. /넷플릭스

최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화상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시사위크>와 만난 전종서는 쏟아지는 호평에 “영숙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 준 스태프 덕”이라며 함께 한 제작진에게 공을 돌렸다. 

-‘역대급 빌런’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기분이 어떤가.
“이런저런 평가와 리뷰들을 접하면서, ‘콜’이 완성되기까지 정말 너무 많은 분들의 노고가 있었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시나리오는 5년 전부터 개발됐다고 알고 있다. 그렇게 피 땀 노력이 들어가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그 농도가 그대로 전해졌다고 생각이 든다. 제작사부터 촬영감독님들, 의상과 분장팀, 조명팀 나머지 스태프들까지 모든 분들이 서연은 서연에게, 영숙은 영숙에게 모든 배우들이 다 본분에 집중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해 줬다.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하나가 돼서 만든 작품이다. 관심을 뜨겁게 받고 하니 사실 배우보다 더 고생을 많이 한 스태프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영숙이 사이코패스에 연쇄살인마였다. 인물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했나.
“연기를 하려면 먼저 이해가 돼야 하는 게 순서였다. 그래야 타당성이 생기고 보는 관객도 납득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반대로 접근을 했다. 도리어 서연을 나쁜 아이라고 생각하고 연기에 임했다. 영숙이 서연에게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타당성을 만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흐름상 설득력이 생겼고, 거기서 만들어진 힘이 눈덩이처럼 커져서 폭발 지경까지 이르는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설계가 된 것 같다.

영숙의 강함보다 약함에 중점을 두고 연기했다. 인간적인 부분과 엄마와의 관계, 서연과의 관계 아니면 서연의 아빠에 대한 집착 등에 조금 더 많이 파고들었다. 파워풀하고 역동적인 영숙의 모습도 있지만, 반대로 살짝만 쳐도 깨져 부서져버릴 것 같은 얇은 유리 같은 영숙의 모습도 표현될 수 있는 장면을 찾아보려고 노력을 했다.”

-영감을 받은 작품이나 캐릭터가 있다면.
“따로 참고를 했던 캐릭터나 영화는 없었고, 음악이나 사진, 그림에 기댔다. 또 현장에서 입었던 옷이나 분장, 공간에 영향을 받았고, 상대 배우가 나를 어떤 눈빛으로 보고 어떤 표정을 짓는지 나는 그 상황에서 어떤 말투로 어떤 대사를 치는지 집중했다. 사진은 포털사이트와 어플을 총동원해서 시간 날 때마다 찾아 저장했다. 마치 몸을 만들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것처럼 사진을 수집해서 자주 봤다. 자주 봐야 생각도 닮아가고 굳어지니까. 특히 새 빨간색을 많이 봤다. 분수처럼 피가 쏟아지는 장면이나 샤워기에서 피가 물줄기로 흘러내린다는지 같은 아주 자극적인 사진들을 봤다. 사람의 형태는 아니지만 작은 악마 같은 모습도 봤고, 독방에 갇혀있는 여자아이의 모습도 참고했다. 또 노란색 우비를 입고 비를 맞으면서 빨간 배낭을 메고 뛰어가는 작은 여자아이의 뒷모습도 있었다. 하도 많이 보다 보니 나중엔 그 모든 게 영숙 같아 보이더라. 그 시점에서 사진 보는 것을 멈췄다.”

‘콜’에서 연쇄살인마가 되는 소녀 영숙으로 분한 전종서 스틸컷. /넷플릭스
‘콜’에서 연쇄살인마가 되는 소녀 영숙으로 분한 전종서 스틸컷. /넷플릭스

-이충현 감독이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배우만 할 수 있는 대사나 동작, 애드리브가 많았다고 했다. 어떻게 구상했나.
“사전 분석을 철저하게 하는 편이다. 정말 세세하게 하나부터 열까지 대본을 쪼개서 세밀하게 보는 편이다. 충분히 머릿속으로 이 영화의 분위기나 캐릭터의 느낌을 직감적으로 받아들이고 구체화시킨 상황에서 현장에서는 바로 입수하는 스타일이다. 영숙은 그런 과정이 조금 더 많이 필요했던 역할이었다. 확 빠져나오고 돌아버리고 아주 극단적으로 변해버리는 시도가 필요했던 인물이기 때문에 많은 생각을 갖고 촬영에 임하는 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거라고 판단했다. 이충현 감독도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는 한 문장의 디렉팅이라도 그 틀 안에 갇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것을 잃어버리고 강박에 사로잡힐 정도로 촬영할 때 예민해진다. 나의 그런 성향을 완벽하게 (이충현 감독이) 파악하고 내게 맞는 디렉팅을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촬영이 진행됐고, 합의 안에서 능숙하게 진행됐다.”

-서태지가 영숙을 표현하는 상징적 인물로 나왔다. 어떻게 공감했나.
“서태지는 내 세대의 가수가 아니라 생소하긴 했다. 전설 같은 이름이라 알고는 있었는데, 조금 더 가까이 접해야 했던 상황이기 때문에 동영상을 많이 찾아봤고, 항상 노래를 들었다. 잔잔하고 서정적인 노래보다 역동적이고 비트가 세고 빠른 노래를 들었고, 그중 하나가 실제 영화 속에도 추가됐던 ‘울트라맨이야’였다. 또 당시 라이징하고 있었던 미국 가수가 빌리 아일리쉬인데, 그의 음원과 뮤직비디오에서 내가 영감을 받을 수 있었던 요소들이 많았다. 기괴하지만 장난꾸러기 같고 악동 같은 매력이 담겨있었다.”

-영숙의 욕이 차지다는 평가가 있는데, 발음이나 뉘앙스 등 어떻게 연습하고 준비했는지 궁금하다. 
“욕을 연습하진 않았다. 대본에도 욕이 있긴 했는데 지금 영화에 나온 욕들은 거의 다 애드리브였다. 테이크를 가면서 어떤 욕이 추가되고, 이렇게 가보고 저렇게 가보고 하면서 결국에는 원래의 대사처럼 자연스러운 톤으로 맞춰갔다. 그렇게 하면서 연습이 됐던 것도 같다. 들었을 때 자연스러울 수 있고 영숙의 과격함, 감정선과 맞아떨어지는 욕을 택했다.”

전종서가 자신의 진가를 증명했다. /넷플릭스
전종서가 자신의 진가를 증명했다. /넷플릭스

-20대 영숙과 40대 영숙을 모두 표현했다. 40대 시절을 연기하면서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시나리오를 보고 40대 영숙도 내가 연기를 하는 것인지 이충현 감독에게 질문을 했었다. 20대와 40대를 동시에 한다는 것이 보편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외국영화에서는 한 배우가 몇 십 년 후의 모습도 연기를 한다고 하더라. 그런 부분에서 내가 40대를 표현한다는 것에 설렘도 있었다. 그런데 40대라는 나이가 애매하긴 했다. 나이가 확 든 것도 아니고 어린 나이도 아니었다. 그래서 굳이 40대가 어떤지 표현하려고 하진 않았다. 그냥 이런 상태로 20년이 지난다면 어떤 느낌일까 초점을 맞췄다. 영숙의 현재 행동들에서 단서를 찾았다. 의상이나 얼굴의 흉터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렇다 보니 조금 여유로워진 모습과 문드러진 것 같은 여성의 모습이 떠올랐다. 살이 많이 빠지고 조금 더 차갑고 어두워진, 동작이 조금 느려지고 표정이 조금 더 없는. 단순하고 시크하게 가져갔다.”

-신엄마 이엘에게 폭행당하는 신도 인상적이었다. 온몸에 경기를 일으키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는데, 어떻게 준비했나.
“그 신을 위해 한 2주 정도 레슨을 받았다. 몸을 어떻게 쓰고, 관절을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인지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았다. 실제로 현장에 선생님이 오셔서 몸동작이나 디테일을 많이 살펴주기도 했다. 이틀에 걸쳐 촬영을 했다. 그런데 그 장면에서 중요한 건 몸 모양이 어떻고, 어떻게 때리는지 보다 신엄마가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영숙을 처벌하고 억압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거기에 대한 합을 맞추는 과정이 있었다.”

-영숙을 연기하면서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도 타격이 컸을 것 같은데.
“촬영장에서 연기를 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면 온몸이 뜨거울 정도로 열이 났었다. 각성돼있는 상태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잠이 많이 안 오기도 했고, 몸이 굉장히 불같이 뜨거워지고 그랬었다. 그렇게 2주 정도 지나니까 조금 적응이 되면서 괜찮아졌던 것 같다. 과격하고 역동적이고 에너지를 많이 써야하는 부분이 초반 한 달에 걸쳐서 많은 회 차를 찍었기 때문에 나머지 2달 정도는 그렇게까지 몸이 뜨거워지고 그렇진 않았다.”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전종서. /넷플릭스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전종서. /넷플릭스

-‘버닝’ 해미에 이어 영숙까지 연이어 세고 강렬한 캐릭터를 보여줬다. 부담감이나 우려 없나.
“나는 계속 창의적이고 싶다. 뭔가를 계속해서 만들고 싶고 그게 연기여야 하고, 캐릭터 곧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나고 싶다. 주어지는 캐릭터에 ‘나다움’을 넣어서 새롭고 신선하고 파격적인, 때로는 잔잔하고 은은하고 부드러운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스릴이든 코미디든 뭐든 상관없이,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고 누군가 시도하지 않았던 혹은 조심스러워했고 조바심을 냈던 것들에 있어 거침없이 해보고 싶은 도전의식이 있다.”

-‘버닝’ 이창동 감독에게 배운 것이 이번 작품을 촬영하는 데 도움이 된 부분이 있을까.
“이창동 감독님이 ‘버닝’이 앞으로 할 모든 현장의 기준이 될 거라고 말했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버닝’ 못지않게 ‘콜’ 현장도 너무 좋았다.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이 자기 본분에 충실할 수 있는 환경이었고 모두가 하나 될 수 있었던 현장이었다. 이창동 감독님이 강조한 것 중 하나가 매 테이크 모니터링을 하고 다음 테이크를 찍는 습관을 가지라는 거였다. ‘콜’ 때도 그걸 적용해서 매 장면 모니터링을 하고 다음 테이크를 가고 그렇게 했다. 그래서 자기 객관화가 될 수 있었다. 눈에 거슬리거나 과하거나 약하다고 생각한다면, 다음 테이크에서 바로 고쳐서 찍고 그랬다.”

-‘콜’은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까.
“코로나19로 인해 딜레이가 되면서 결국 이 시점에 개봉하게 됐다. 나 역시 많이 기다렸던 작품이다. 마치 김장하듯 묵혔다가 제일 맛있을 때 보여드리는 느낌이다. 공백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더 완벽하게 편집하고 만들고 다듬고 하면서 ‘콜’이라는 영화가 탄생했다. 모두가 노력한 만큼 빛을 발하고, 단발성으로 사라지는 영화가 아니라 많이 회자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영화지만, 거기에 국한되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 회자되고 파격적이고 섹시한 영화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나에게도 그런 영화로 기억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