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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인터뷰] 한지민, 낯설지만 특별한 ‘조제’를 완성하다
2020. 12. 08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배우 한지민이 영화 ‘조제’(감독 김종관)로 돌아왔다. /BH엔터테인먼트
배우 한지민이 영화 ‘조제’(감독 김종관)로 돌아왔다. /BH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미쓰백’(2018, 감독 이지원)을 통해 강렬한 변신을 선보이며 관객을 사로잡았던 배우 한지민이 영화 ‘조제’(감독 김종관)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원작에 대한 부담감은 물론, 신체적 장애를 가진 인물이기에 움직임도 제한적이었다. 여기에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그만의 언어로 감정을 표현하는 조제를 이해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지민은 천천히 조제에게 다가갔고, 그에게 닿을 수 있었다. 원작 캐릭터와 다르게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새로움을 찾으려 하지 않았고, 느낀 그대로 조제를 담아내는 데 집중했다. 때론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조제가 어렵고 답답했지만, 덜어내고 또 비워내며 조제와 온도를 맞춰나갔다. 그렇게 낯설지만 특별한 ‘조제’가 완성됐다.  

영화 ‘조제’는 처음 만난 그날부터 잊을 수 없는 이름 조제(한지민 분)와 영석(남주혁 분)이 함께한 가장 빛나는 순간을 그린 작품으로, 일본소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2003년 이누도 잇신 감독이 영상화해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등을 연출한 김종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특유의 감각적이고 깊은 감성을 더해 색다른 매력의 한국판 ‘조제’를 탄생시켰다.

극 중 한지민은 자신만의 세계에 사는 조제 역을 맡아 한층 깊어진 감성 연기를 보여준다. 조제는 우연히 만난 영석을 통해 처음 느껴보는 사랑의 감정에 설레면서도 낯선 변화 앞에서 불안을 느끼는 인물. 한지민은 사랑을 겪으며 변하는 조제의 내면을 섬세하게 담아내 호평을 얻고 있다. 특히 자신만의 해석을 더해 원작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매력의 인물을 완성, 짙은 여운을 안긴다.

‘조제’로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한지민. /BH엔터테인먼트
‘조제’로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한지민. /BH엔터테인먼트

최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화상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시사위크>와 만난 한지민은 ‘조제’를 통해 성장통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아프지만 굳은살이 생긴 것 같다”며 웃었다. 

-‘미쓰백’ 이후 2년 만에 돌아왔는데, 또다시 도전을 요하는 작품을 택했다.
“오랜만에 영화로 인사드리게 돼서 좋다. 내가 그동안 했던 캐릭터들은 명확한 색이 있었다. 그런데 조제는 독특한 세계, 정해져있는 공간 안에 살아간다는 부분이 특별했다. 조제가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캐릭터가 아니라 그 세계 안에 들어가 조제가 하는 말에 담겨있는 여러 감정을 이해하는 게 정말 어려웠다. 배우로선 설레고 재밌는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연기하면서 여러 감정들을 표출하지 않은 채 눈빛이나 공간, 소리로 기운을 전한다는 것에 있어서 어려움이 많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난 지금도 내가 조제의 세계를 다 알고 연기했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지만 새롭고 어려운 공간 안에서 뭔가 만들어간다는 재미도 분명히 있었다.”

-원작 캐릭터에 비해 조제는 진지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이 더 강하게 보였다. 캐릭터 구축 과정이 궁금하다.
“원작과 차이점을 두려고 포커스를 맞추진 않았다. 김종관 감독님이 그리고자 하는 조제의 이야기 안에 들어가고 싶었다. 조제가 어릴 때 어떤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는 점이 원작과 다른 점이고, 원작에서 20대 동갑내기의 사랑이었다면 이번엔 더 연령대가 높은 캐릭터라 조금 더 쓸쓸하고 외롭고 차분한 느낌을 더했다. 그 시작점이 트라우마였고, 더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채 생활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시나리오에 담기지 않은 이전의 서사를 만드는 데 있어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떤 작품을 하든 늘 필요한 작업이긴 한데, 조제는 제일 어려웠던 것 같다. 늘 한정된 공간에 있고, 사람과의 소통도 적고 할머니와의 관계 속에서도 많은 대화를 하지 않는 인물이다 보니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것에 낯섦이 있었을 거다. 고맙다는 표현도 밥 먹고 가라고 대신하지 않나. 그런 조제의 언어가 매력이자 어려움이었고, 그래서 특별했다.”

-본인의 아이디어가 더해진 부분이 있는지 궁금하다.
“내가 캐스팅되면서 김종관 감독님이 나의 결을 찾으려고 많이 노력해 줬고, 내가 기존에 갖고 있는 느낌의 색을 더 많이 입혀주면서 변화를 했다. 그 안에서 내가 아이디어를 낼 수밖에 없었던 건 조제의 움직임들이다. 아무래도 신체적 장애가 있는 인물이다 보니 레퍼런스 영상을 보면서 많이 공부했다. 내 몸에 가장 익숙하게 보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연습을 해보고, 그 결과물을 감독님에게 말했다. 휠체어에 올라타는 것이나 차에 올라타는 장면들은 내가 공부해서 말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라 그런 부분에서 아이디어를 냈다. 그 외엔 감독님과 끊임없이 이야기하면서, 만들어갔다. 조제는 늘 넘치지 않아야 하는 게 있었다. 물음표가 생길 때마다 김종관 감독님이 확신을 갖고 말해줬고, 공간이나 소리로 조제의 색을 더 많이 채워준 것 같아 감사했다.”

‘조제’에서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사는 조제를 연기한 한지민 스틸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조제’에서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사는 조제를 연기한 한지민 스틸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조제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어떤 고민이 있었고 어떻게 이해해 나갔나.
“조제가 색을 갖고 있지만, 한 가지 색이 아니라 표현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무엇보다 시나리오에 반영되지 않은 조제의 삶이 궁금했고, 그 서사들을 감독님과 쌓아올리는데 공을 많이 들였다. 감독님이 ‘취향이 있는 사람은 그렇게까지 쓸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었는데, 닫힌 세상 안에 있고 책을 통해 세상을 접하긴 하지만 위스키나 책을 수집하는 조제가 고마웠다. 외롭고 쓸쓸한 삶이지만 무언가를 좋아한다면 그렇게 또 어려운 세계만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하며 조금씩 접근해갔다. 조제와 차근차근 친해지고 싶었다. 조제의 세계가 어렵기도 했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조제는 잘 살고 있겠지?’라고 물음표를 던질 수 있는 지점이 색다른 매력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연기하면서 가장 인상 깊게 느껴졌던 조제의 감정이나 장면이 있다면.
“조제가 자신의 감정을 가장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영석을 붙잡았을 때다. ‘가지 마. 계속 내 옆에 있어줘.’ 조제에겐 큰 변화였다. 공들여서 찍으려고 집중했던 신이기도 하고, 가장 인상에 남은 장면이 됐다. 또 조제가 ‘호랑이가 담을 넘어왔어도 나는 이제 무섭지 않을 거야, 네가 옆에 있으니까’라고 말하는데 조제가 조제만의 언어로 마음을 표현했던 것이 기억에 남고, 물고기들을 보면서 ‘물고기들이 보기엔 우리가 갇혀있겠지’라는 말도 생각이 난다.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감정으로 하느냐에 따라 다 다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다름에 대한 것들을 관점의 차이로 두고 생각해볼 수 있는 대사였다.”

-남주혁과 JTBC ‘눈이 부시게’(2019) 이후 재회했다. 이번 현장에서는 어떤 호흡을 나눴나.
“남주혁은 ‘눈이 부시게’ 때 나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모든 선배들과 선생님들을 어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어려움과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극 중 나와 동갑내기로 나오고 부부 사이까지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녹여내야 해서 편하게 대해주기를 바랐고, 내가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한 부분이 있었다. 그렇게 내가 격려를 많이 해줬던 편이었다면, 이번 현장에서는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편했다. 김종관 감독님도 우리가 전작에서 편한 호흡을 보여줘서 다시 캐스팅하는데 좋았다고 말했다. 또 영석(남주혁이) 나의 눈을 가장 가까이 보고 있기 때문에 질문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줘서 너무 고마웠고 도움이 많이 됐다. 감독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의 어려움과 숙제, 고민들을 가장 먼저 들어주고 주고받은 부분이 있어서 많이 의지할 수 있었다.”

한지민이 사랑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BH엔터테인먼트
한지민이 사랑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BH엔터테인먼트

-제작보고회에서 남주혁이 눈물을 보였는데, 그런 남주혁을 보며 본인도 눈물을 흘렸다. 어떤 감정이었나.
“기본적으로 누가 울면 눈물 버튼이 같이 켜지는 사람이긴 하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진 편이다.(웃음) 제작기 영상을 보고 있는데 짧긴 했지만 그때의 순간들과 여러 감정들이 복잡 미묘하게 지나갔다. 조제는 잘 살고 있을까 싶더라. 그 여운이 슬프기만 하진 않았는데 갑자기 남주혁이 울어버리니 나 역시 조제와 영석이 헤어졌던 느낌이 진하게 왔다. 또 이 영화를 하면서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성장통을 동시에 겪었다. 촬영하면서도 그랬고 끝나고도 여운이 오래갔다. 그런 감정들이 올라오면서 눈물이 터졌다.”

-사랑에 대해 곱씹게 만든 영화였다. 한지민이 생각하는 사랑은 무엇인가. 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랑에 대한 시각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궁금하다.
“10대와 20대 때는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면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던 게 컸다. 내게 실망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많이 했고, 그러다 보니 나답지 않은 나로 살아가고 있었던 게 지나고 보니 느껴지더라. 지금의 나는 정말 자연스러운 나로 있을 수 있고 같이 있을 때 편안해질 수 있는 상대를 찾고 싶다. 외형적으로도 그렇고 성격적으로도 그렇다. 섭섭하고 서운한 얘기를 그전에는 못했는데 이제는 어떤 감정이 들고 그 감정으로 인해 갈등이 생기더라도 대화를 통해서 그때그때 잘 나눠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원작과 다른 ‘조제’만의 매력은 무엇인가. 관객들이 어떤 점을 새롭게 봐줬으면 하나.
“시대가 변할수록 빠르고 편한 것에 익숙해진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조제’는 잠시나마 내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화다. 잔잔하고 담담하게 소박하게 흘러가는, 속도감이 느린 영화다. 급하게 돌아가는 세상 안에서 숨을 고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조제의 숨소리나 공간에서 들려오는 바깥소리들도 섬세하게 담으려고 노력을 했다. 배우의 감정과 얼굴 표정, 대사뿐 아니라 공간과 계절, 소리로 전달해 주는 색이 굉장히 짙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느끼게 되는 여러 감정들을 느끼면서 쉬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금은 느리지만, 그래서 조금 다른 시각적인 것이나 청각적인 것들에 집중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2020년은 한지민에게 어떤 시간이었나.
“코로나19로 인해 편리하게 생활했던 소중함에 대해서는 모두가 느끼고 있을 거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난여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늘 어릴 때부터 걱정하던 한 가지가 ‘엄마 같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어떡하나’였다. 그런데 그날이 왔고, 할머니가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언니와 조카들은 외국에 있어서 만나지 못하는 일을 겪으면서 코로나19가 준 의미를 진하게 느끼고 있다. 감정적으로 힘든 시간이었는데, 가족에게도 표현하지 못한 마음들을 내 주변 사람들이 많이 알아줬다. 그 사람들 덕에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늘 두려워하는 것이 이별이긴 하나, ‘조제’ 그리고 2020년 덕에 아프지만 그래도 굳은살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화상으로) 인사를 드릴 수밖에 없어서 안타깝지만 다시 얼굴을 보고 인터뷰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