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민생경제연구소 공동기획

소처럼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는 듯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민생 경제’ 위기는 단 한 가지 원인으로 귀결될 수 없다.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 중에는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각종 불공정한 시스템도 중심축 역할을 한다. <본지>는 시민활동가인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주요 민생 이슈를 살펴보고,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말이다. [편집자주]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에 이어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조치까지 더해지면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서울의 한 먹자골목 모습 / 뉴시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에 이어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조치까지 더해지면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은 ‘임대료’ 조정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의 집회 모습  / 뉴시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된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격언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실행이 쉽지 않다. ‘손익’과 관계된 사안이면 더욱 그렇다.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소상공인·중소기업 ‘임대료 인하’ 문제가 대표적이다. 방역조치로 영업이 제한된 중·소상공인들의 임대료 고통을 임대인의 일방적인 희생과 양보에만 기대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최근 중소기업유통센터의 행보는 주목할 만 하다. 공공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연동한 임대료 감면안을 내놔서다. ‘상생(相生)’을 위한 자발적·선제적 조치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 거리두기 단계 연동한 중·소상공인 임대료 인하 선행 

코로나19 사태로 대한민국은 유례없는 위기를 겪고 있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경제 관련 수치들은 차치하더라도, 불 꺼진 거리와 자영업자들의 잇단 폐업 소식은 경제 위기의 현주소를 가늠케 하기 충분하다.

사진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서울의 한 먹자골목 모습. 코로나 확산세가 거세지면서 중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 뉴시스
사진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서울의 한 먹자골목 모습. 코로나 확산세가 거세지면서 중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 뉴시스

실제 코로나 확산세가 거세지면서 중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조치에 따라 영업이 제한 또는 금지된 탓이다. 매출은 멈췄지만, 세금과 대출이자 등 지출은 멈추지 않았다. 영업이 중단됐지만, 임대료 납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방역조치에 따른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지게 된 중·소상공인들은 생존권까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발 벗고 나선 건 중소기업유통센터(대표 정진수)다. 자발적 임대료 인하로 중·소상공인의 경영난 해소와 고통 분담에 나섰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기관인 중소기업유통센터는 자사가 운영하는 ‘행복한백화점’ 입점업체를 대상으로 임대료 인하를 결정, 12월 16일부터 인하안을 적용하고 있다. ‘거리두기 단계 연동형 임대료 감면’이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올 초 시작된 ‘착한 임대인 운동’에서 한단계 진일보한 정책인 셈이다.  

중소기업유통센터가 운영하는 ‘행복한백화점’은 중소기업 판로 지원이라는 공익적 목적을 위해 1999년 서울 목동에 설립된 백화점이다. 품질이 우수한 제품을 생산하고도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의 유통판로 개척을 위해 힘쓰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기관인 중소기업유통센터는 자사가 운영하는 ‘행복한백화점(사진)’ 입점업체를 대상으로 임대료 인하를 결정, 12월 16일부터 인하안을 적용하고 있다. / 사진=정소현 기자
중소벤처기업부 산하기관인 중소기업유통센터는 자사가 운영하는 ‘행복한백화점(사진)’ 입점업체를 대상으로 임대료 인하를 결정, 12월 16일부터 인하안을 적용하고 있다. ‘거리두기 단계 연동형 임대료 감면’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정소현 기자

센터 측에 따르면 임대료 인하 대상은 18개 임대매장이다. 지하부터 6층까지 입점돼 있는 동물병원, 미용실, 음식점 등 소상공인 15개사와 중소기업 3개사 등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적용으로 영업이 어려워진 이들 매장은 최대 30% 임대료를 감면받게 된다. 소상공인은 30%, 중소기업은 20% 인하율이 적용됐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3단계로 격상되면, 임대매장 모두 임대료가 절반으로 인하된다. 만일 영업중단이 한 달 이상 지속되면 임대료를 전액 면제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방역단계가 올라갈수록 임대료를 더 많이 깎아주는 방식이다. 국내 공공기관 중에선 처음 시도되는 사례다.

중소기업유통센터는 지난 2월에도 한시적으로 임대료 감면을 하는 ‘착한 임대인 운동’의 선봉에 섰다. 당시 중소기업유통센터는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임대매장을 대상으로 3개월간 임대료 20%를 감면해주는 제도를 시행했다. 임대매장의 경우 임대료가 영업비용의 20% 정도로 상당한 수준인 만큼 임대료 인하 조치는 소상공인들의 고통 분담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이후 다른 공공기관들의 참여가 이어지기 시작했고, 정부는 착한 임대인 운동에 참여한 임대인에 대한 세제 혜택을 지원책으로 내놨다. 착한 임대인 운동이 사실상 제도화되는데 중소기업유통센터가 마중물이 된 셈이다.

◇ ‘상생’ 선봉에 선 중소기업유통센터

‘거리두기 단계 연동형 임대료 제도’ 시행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적극적인 독려와 정진수 중소기업유통센터 대표의 강력한 결단이 컸다. 자율적인 의사결정이 어려운 공공기관의 구조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책임’에 우선순위를 뒀다는 게 센터 측 설명이다.

이 같은 행보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적극적인 독려와 정진수(사진) 중소기업유통센터 대표의 강력한 결단이 컸다. 자율적인 의사결정이 어려운 공공기관의 구조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책임’에 우선순위를 뒀다는 게 센터 측 설명이다. / 중소기업유통센터
이 같은 행보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적극적인 독려와 정진수(사진) 중소기업유통센터 대표의 강력한 결단이 컸다. 자율적인 의사결정이 어려운 공공기관의 구조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책임’에 우선순위를 뒀다는 게 센터 측 설명이다. / 중소기업유통센터

김현성 중소기업유통센터 상임이사(유통사업본부장)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유통판로 전문 기관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혹자는 ‘당연한 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정진수) 대표이사의 강력한 의지가 없었다면 실행이 어려웠을 일”이라면서 “아무리 공공기관 장이라 하더라도 기관 운영의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사업을 추진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공적기관으로서 사회적 책무 실천에 모범이 돼야 한다’는 대표의 결단이 선제적 대응을 가능케 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센터 측은 ‘거리두기 단계 연동형 임대료 제도’에서 나아가 중·소상공인들의 매출 증대 방안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 비용감면과 매출 증대가 동시에 작동해야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어서다. 이에 라이브커머스나 미디어커머스 등 신(新) 유통 흐름을 오프라인과 결합할 수 있는 방법들을 다각도로 시도하고 있다. 중·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비롯해 매출 활성화를 위한 내부 아이디어 공모 등 각고의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김 이사는 “상가는 임차인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임차인들이 잘 돼야 임대인도 잘 될 수 있다는 얘기”면서 “대기업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은 ‘투자’라고 생각하는 반면, 소상공인들 지원은 ‘비용’이라고 생각하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중·소상공인들이 살아야 모두가 살 수 있다. 정부-공공기관-금융-임대인-임차인, 모두가 함께 작동해야 상생할 수 있는 최적의 지점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진걸 소장은 “최근 ‘임대료 멈춤법’이 화제인데, 중소기업유통센터는 자체적으로 멈춰주신 것”이라면서 “힘든 시기에 한시적 조치가 아닌, 이를 제도화 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사진 좌측 두번째부터)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이성원 사무총장,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 김현성 중소기업유통센터 상임이사, 이병구 중소기업유통센터 대외협력실장, 윤상석 중소기업유통센터 안전지원실 팀장 / 사진=정소현 기자
안진걸 소장은 “최근 ‘임대료 멈춤법’이 화제인데, 중소기업유통센터는 자체적으로 멈춰주신 것”이라면서 “힘든 시기에 한시적 조치가 아닌, 이를 제도화 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사진 좌측 두번째부터)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이성원 사무총장,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 김현성 중소기업유통센터 상임이사, 이병구 중소기업유통센터 대외협력실장, 윤상석 중소기업유통센터 안전지원실 팀장 / 중소기업유통센터 

◇ 안진걸 “합리적인 고통분담과 상생 제도화 시급”

21일 기자와 함께 현장을 찾은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중소기업유통센터의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대응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중소기업유통센터의 ‘거리두기 단계 연동형 임대료 감면안’을 이른바 ‘임대료 멈춤법’에 견줬다.

‘임대료 멈춤법’으로 불리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일부 개정법률안’은 감염병 방역조치로 영업이 어려워진 임차인의 임대료를 면제하거나 절반만 내는 것을 골자로 한다. 임대인에게 담보대출 상환기한을 연장해주는 내용도 포함됐다. 지난 12월 13일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했다. 쉽게 말해 장사를 멈추면 임대료도 멈춰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중기유통센터가 발표한 ‘거리두기 단계 연동형 임대료 제도’와 결이 같다.

방역조치에 따른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지게 된 중·소상공인들은 생존권까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은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3월 2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가임대인과 임차인 상생, 정부 및 지자체의 임대료 조정 지원행정 등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 / 뉴시스
방역조치에 따른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지게 된 중·소상공인들은 생존권까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은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3월 2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가임대인과 임차인 상생, 정부 및 지자체의 임대료 조정 지원행정 등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 / 뉴시스

안진걸 소장은 “최근 ‘임대료 멈춤법’이 화제인데, 중소기업유통센터는 자체적으로 멈춰주신 것”이라면서 “힘든 시기에 한시적·시혜성 조치가 아닌, 이를 제도화 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실제 중소기업유통센터는 ‘거리두기 단계 연동형 임대료 감면 제도’를 중장기적인 계획으로 수립해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단기간 내에 코로나 상황 해소가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 따른 결정이다.

안 소장은 그러면서 ‘위로부터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필요성은 말할 것도 없고, 나아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한 상생 노력이 먼저 확산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임대인이 공공기관인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위에서부터 의지를 보이고 나서 법과 제도가 만들어져도 늦지 않다. 하지만 상당수 공공기관은 제도가 만들어진 후에 행동하려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것 같다. 그렇게 미적거리는 동안 중·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은 더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안 소장은 이어 “착한 임대인 운동이 굉장히 활성화 된 것처럼 알려졌지만 실제로 동참이 저조하다는 분석이 있다”면서 “전국의 대부분의 중소상공인들이 해당 법안(‘임대료 멈춤법’)을 강력히 지지하는 것도 이런 배경이다. 이미 해외에서는 소상공인·자영업자 임대료 지원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우리도 합리적인 고통분담과 상생을 제도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부디 중소기업유통센터의 사례가 착한 임대인 운동을 다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상생(相生)’.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다. 한쪽의 일방적인 노력만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고,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된다. 더 늦기 전에 ‘맞들고 나누어야’ 한다. 중소기업유통센터의 선한 영향력이 보다 확산될 수 있도록 각계가 힘을 보태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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