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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인터뷰] 김남희의 존재감
2021. 01. 04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매 작품 분량을 씹어 먹는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는 배우 김남희. /디에이와이엔터테인먼트
매 작품 분량을 씹어 먹는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는 배우 김남희. /디에이와이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과로사한 의사부터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 같은 일본군, 지질한 바람둥이, 남을 위해 목숨까지 거는 종교인까지. 맡은 역할마다 캐릭터 그 자체로 분한다. 단역이든 조연이든 임팩트 있는 연기로 주연 못지않은 존재감을 드러낸다. 매 작품 같은 배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천의 얼굴’ 김남희를 두고 한 말이다.

김남희는 2013년 영화 ‘청춘예찬’으로 데뷔한 뒤 2017년 tvN ‘도깨비’로 브라운관에 첫 모습을 드러냈다. 극 중 과로사한 의사 역을 맡은 그는 단역이었지만, 임팩트 있는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작품을 통해 이응복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는 이 감독의 ‘미스터 션샤인’(2018)에서 일본군 모리 타카시 역을 맡아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유창한 일본어와 함께, 일본인 특유의 억양으로 조선말과 어설프게 영어를 하는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짧은 등장에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완벽한 캐릭터 소화력과 낯선 얼굴 탓에, 실제 일본인이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후 ‘봄이 오나 봄’(2019),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2019)에서는 전혀 다른 결의 연기를 펼쳤다. 특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에서는 바람둥이 표준수로 분해 지질한 코믹 연기로 새로운 얼굴을 보여줬다.

이번에도 새롭다. 이응복 감독과 세 번째 만남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으로 전 세계 시청자와 만나고 있는 그는 국어교사이자 독실한 개신교 신자 정재헌 역을 맡아 액션부터 멜로, 휴머니즘까지 담아내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에서 재헌 역을 맡아 열연한 김남희 스틸컷.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에서 재헌 역을 맡아 열연한 김남희 스틸컷. /넷플릭스

‘스위트홈’은 은둔형 외톨이 고등학생 현수(송강 분)가 가족을 잃고 이사 간 아파트에서 겪는 기괴하고도 충격적인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지난해 12월 18일 공개된 뒤 4일 만에 해외 13개국에서 1위, 70개국에서 TOP 10 순위 안에 들며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김남희가 연기한 재헌을 향한 반응 역시 뜨겁다. 재헌은 선과 정의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가진 인물. 조용하고 얌전한 말투에 어딘지 모르게 묘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남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이타적인 인물로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깊이 담아내는 역할을 한다.

재헌은 김남희를 만나 빛을 발했다. 자칫하면 오글거릴 수 있는 만화적 대사를 특유의 중저음 목소리로 담백하면서도 안정적으로 소화해 몰입감을 높였고, 평온해 보이는 표정 뒤 숨겨진 비장미와 진검을 활용한 호쾌한 진검 액션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기에 생사고락을 같이한 윤지수(박규영 분)와의 감정선까지 섬세하게 담아내며 입체적인 매력으로 시청자를 끌어당겼다.

최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화상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시사위크>와 만난 김남희는 재헌을 향해 쏟아지는 호평에 “원작보다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준 이응복 감독과 작가의 덕”이라며 겸손한 소감을 전했다.

이응복 감독에게 세 번의 부름을 받은 김남희. /디에이와이엔터테인먼트
이응복 감독에게 세 번의 부름을 받은 김남희. /디에이와이엔터테인먼트

-완성된 작품을 본 소감은.
“한 번에 다 봤다. 시리즈물을 한 번에 본 적이 없는데, 10화까지 정말 재밌게 다 보게 되더라. 속도감도 빠르고 액션도 많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잘 봤다.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상당히 즐겁고 만족스럽게 봤다. 물론 내 연기를 보는 건 부끄러웠다.”

-작품과 함께 재헌도 큰 인기를 끌었다. ‘원작을 뛰어넘는 캐릭터’라는 극찬도 나오고 있는데.
“좋은 원작이 있었고, 그걸 바탕으로 조금 더 나아진 인물이 됐다. 작가님들과 감독님이 재헌이라는 캐릭터를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준 게 원작을 뛰어넘는 캐릭터라는 평이 나올 수 있게 된 것 같다. 재헌은 고리타분한 기독교 신자에 국어선생님이다. 재미도 없다. 초반에는 나쁜 사람 같은 묘한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결국엔 남들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캐릭터다. 참된 종교인 혹은 하늘에서 갑자기 내려온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표현할 수 있는 입체적인 부분들도 많았다. 검술도 했고, 재미없는 모습이나 묘한 분위기, 결국엔 선역으로 끝나는 것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처음 대본을 봤을 때부터 제일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다.”

-이응복 감독과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추게 됐다. 본인의 어떤 점을 좋게 평가했다고 생각하는지.
“내가 연기를 잘한다기보다 이응복 감독님이 보기에 마음에 드는 연기적인 코드가 있는 것 같다. 이 정도 역할이면 남희가 잘 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하고 제안을 해주시는 것 같고, 너무 감사하다. 개인적인 성격은 안 맞을 수도 있다. 일적으로만 두고 프로페셔널하게 애착을 가져주시는 것 같다. 그래서 세 작품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재헌과 지수의 러브라인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응복 감독은 둘의 감정이 사랑은 아니라고 했는데, 지수를 향한 재헌의 감정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그린홈에서 생존을 하면서 우연히 지수와 동선이 맞춰지고 같이 움직이게 됐다. 알게 모르게 마음이 가게 됐는데 그 마음을 표현할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 그 와중에 사랑까지 한다는 건 무리였던 것 같다. 재헌은 남들을 도와주고 나 혼자만의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다. 지수 역시 겉으론 거칠어 보이지만, 위기 상황에서 남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근육 괴물을 향해 먼저 달려나가는데, 그 모습에 재헌도 조금씩 마음을 열지 않았을까 포인트를 잡았다.”

-재헌이 지수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는데, 담담해서 더 좋았다.
“재헌은 어쩌면 이 순간 이후로 죽을 수 있겠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것 같다. 주님이 부르시는 구나라고 생각해서 마지막으로 지수에게 일말의 따뜻함을 남겨주고 떠나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담백하게 표현해서 좋았다고 했는데, 사실 그 장면에서 처음엔 더 감정적으로 갔다. 그런데 이응복 감독님이 ‘재헌이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는 사실을 지수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최대한 억누르고 담백하게 표현하고 나가서 싸우자’라고 했다. 그 해석이 더 좋더라. 내 말만 하고 떠나는 것보다 듣는 사람의 감정도 중요하니까, 고백은 고백대로 하되 불안함은 주지말자는 생각으로 담백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김남희가 꼽은 ‘스위트홈’ 명장면. /넷플릭스
김남희가 꼽은 ‘스위트홈’ 명장면. /넷플릭스

-재헌이 경비아저씨 괴물과 싸우며 죽음을 맞는 장면이 ‘스위트홈’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어떤 감정으로 연기했는지.
“상욱(이진욱 분)이나 현수가 빨리 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드라마를 보면서 더욱 간절해지더라. 괜히 옥상에 올라가는 바람에 빨리 돌아오지 않아 재헌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었다.(웃음) 시즌1에서 가장 하이라이트 장면이라 제작진과 모두 한마음으로 기대하고 촬영을 했다. 집중도 있게 촬영했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나 역시 최선을 다해서 연기했다. 액션의 동선 정도만 연습을 하고,  감정적인 부분은 계획하지 않고 그때 감정에 충실해서 장면을 만들었다.

-재헌을 통해 많은 명대사들이 나왔다.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면.
“상욱과 재헌이 술에 취해 대화하는 장면을 좋아한다. ‘주님께서는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주지 않는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인간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같아요’라는 대사를 통해 재헌이 처음으로 나약해지면서 진심을 이야기하고, 상욱에게 자신의 힘든 모습을 보여준다. 재헌의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상욱에게도 다시 한 번 깨닫고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포인트였다고 생각한다. 그 대사를 꼽고 싶다.”

-실제 상황이었다면, 재헌과 같은 선택을 했을까.
“사람들을 도와주고 다 같이 생존하고자 하는 마음은 내게도 있다. 하지만 따뜻하게 표현하지 못했을 거다. 또 재헌처럼 답답하게 조용히 있진 않았을 것 같다. 은혁(이도현 분)처럼 조금 더 나서서 했을 것 같다. 싱크로율로 치면 상욱이나 은혁의 모습과 더 가깝다. 사람이 사람을 돕는 건 본능적인 것 같다. 원래 남을 도와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고, 아닌 사람은 아닌 대로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간다. 재헌 역시 죽음을 의식하고 내가 희생해서 이 세상을 구해야지라는 특별함을 갖고 있다기보다 당연한 일이고, 해야 할 길을 그냥 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감명 깊고 큰 감동을 줬다고 생각한다.”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배우 김남희. /넷플릭스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배우 김남희. /넷플릭스

-시즌2에 대한 욕심은 없나.
“당연히 있다. 하지만 배우가 대본의 흐름을 역행해서 욕심을 부릴 순 없다. 재헌은 시즌1에서 완벽하게 죽은 인물로 끝났다. 바람은 있으나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 재헌의 부러진 칼을 갖고 생존해서 남은 지수가 시즌2에서 어떻게 풀어나가게 될지 궁금하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비결이 있다면.
“자기관리를 안 해서 그렇다. 꾸준히 관리하는 배우가 돼야 하는데 그때그때 상황과 컨디션에 맞게 살다보니 다르게 나온 것 같다. 또 캐릭터가 다르니까,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 것뿐인데 그렇게 좋게 봐주신 것 같아 감사하게 생각한다.”

-‘미스터 션샤인’으로 주목을 받고, ‘스위트홈’까지 배우로서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오고 있다. 돌아보면 어떤지 궁금하고, 앞으로 각오도 덧붙이자면.
“배우로서 마냥 잘 되거나 스타가 되고 성공하겠다는 욕심보다, 좋은 연기를 하고 싶고 좋은 역할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컸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런 작품들을 많이 만나지 못했고, 아쉽고 서운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다. 삶이 내 마음처럼 쉽게 흘러가지 않다는 것과 시기와 때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담금질을 했던 시간이다. 앞으로도 큰 기대를 하고 있진 않다. 그때그때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하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그래도 연기는 참 잘하는 친구’라는 평가를 들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렇게 살 수 있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