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가기
李씨네
[인터뷰] ‘애프터’ 차인표를 주목하라
2021. 01. 08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배우 차인표가 영화 ‘차인표’로 돌아왔다. /넷플릭스
배우 차인표가 영화 ‘차인표’로 돌아왔다. /넷플릭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차인표의 필모그래피는 영화 ‘차인표’ 전과 후로 나뉠 것.”

배우 차인표는 1993년 MBC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으로 데뷔한 뒤, 이듬해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 ‘왕초’ ‘하얀거탑’ 등 출연하는 작품마다 좋은 성적을 거두며 시청자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대중에게 차인표는 ‘배우’보단 꾸준한 봉사활동으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연예인이자, 건강하고 자기관리가 철저한 ‘바른생활 사나이’로 깊이 인식돼왔다. 여기에 뭐든 열심히 하는 그의 연기는 ‘분노의 양치질’ ‘검지 흔들기’ 등의 이름으로 희화화돼 새롭게 해석되기도 했다.

분명 긍정적 이미지이지만, 배우로서 새로운 작품을 만나는 데 있어선 걸림돌이 됐다. 한 번 고착화된 이미지는 쉽게 깨지지 않았고, 선택의 폭은 점점 좁아졌다. 연기에 대한 갈증은 점점 커졌고, 변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성장하지 않고 정체된 자신과 마주해야 했고, 스스로 틀을 깨고 나아가야 했다. 그렇게 만난 작품이 영화 ‘차인표’(감독 김동규)다.

넷플릭스에서 단독 공개된 ‘차인표’는 대스타였던 배우 차인표(차인표 분)가 전성기의 영예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 작품으로, 지난해 ‘극한직업’에 이어 ‘해치지않아’까지 참신하고 유쾌한 기획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어바웃필름의 신작이다. 신예 김동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극 중 차인표는 본인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 차인표 역을 맡았다. 그동안 대중에게 보여준 유쾌하고 친근하면서도 열정적인 이미지를 극 중 캐릭터에 투영해 코믹하게 비튼 것은 물론, 지금껏 보지 못한 신선한 연기 변신으로 새로운 얼굴을 보여줘 호평을 얻고 있다.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차인표가 보여준 ‘진정성’에는 박수를, 배우로서 발견한 그의 또 다른 ‘가능성’에는 기대감이 감돈다.

‘차인표’에서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차인표. /넷플릭스
‘차인표’에서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차인표. /넷플릭스

최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화상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시사위크>와 만난 차인표는 자신을 향한 고착화된 이미지에 대한 생각과 배우로서의 고민 등을 솔직하게 털어놔 눈길을 끌었다. 그러면서 더 활발한 활동을 예고, 그의 앞날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첫 제안 거절 후 다시 만나게 된 작품인데, 완성된 영화를 본 소감과 만족도가 어떤지 궁금하다.
“영화를 전체적으로 다 본 건 1월 1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을 때였다. 코미디와 더불어 또 다른, 인간이 갖고 있는 마음의 굴레에 대해 조명했다고 생각을 했다. 저예산이고, 한 달 동안 촬영한 작품인데 여건을 감안했을 때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제안을 받았을 때, 다른 시각으로 작품과 마주했을 것 같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
“거절을 했던 가장 주원인은 영화에서 그려지는 차인표의 처지가 현실의 나와 괴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실의 차인표가 영화 속에 들어가서 저렇게까지 자발적으로 묘사를 할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해 거절을 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출연을 하기로 한 결정한 이유도 똑같다. 거절했을 땐 정체된 차인표가 못마땅했는데, 4년이 흘러봤더니 나 역시 영화 속 차인표처럼 정체가 돼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 작품을 통해 변신을 꾀하고 싶었다.”

-정체돼 있다고 느낀 계기가 있다면.
“하고 싶은데 작품이 안 들어온 게 제일 크다. 세월이 흘렸고, 나이가 들었으니 주인공 역할이 안 들어오는 건 당연하다. 본인의 호불호에 따라서 작품을 고를 수 있는 배우가 가장 행복한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 정도에도 못 미쳤다. 지난 4~5년 동안 그랬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다른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고착화된 내 이미지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변신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이미지를 점층적으로 바꿔가는 게 아니라, 한 작품을 통해 극단적으로 변신을 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다양한 작품을 통해 이미지를 조율하고 다재다능한 연기를 잘 하는 배우가 되면 가장 좋다. 나라고 왜 안 그러고 싶었겠나. 점진적으로 바꿔나가면 제일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정체돼있는 상황에서 ‘차인표’라는 작품을 만나게 됐고, 변신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차인표가 배우로서 고착화된 이미지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넷플릭스
차인표가 고착화된 이미지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넷플릭스

-극한으로 몰아가는 캐릭터였다. 연기를 함에 있어서도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가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주안점을 두고 연기했는지. 
“별로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했다. 뭔가 특별하게 준비한 게 없고, 감독도 그러길 바랐다.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대로 표현하고자 했다. 배우로서 현실에서의 차인표의 상황이 극 중 무너진 건물에 갇힌 차인표가 겪는 상황보다 더 극한이라고 생각했다. 몇 년째 작품이 들어오지 않고 놀고 있는 건 배우 생명이 끝났다는 것 아닌가.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학생이고 배우는 연기를 해야 배우인데, 배우가 연기는 안 하고 광고나 찍고 있고 다른 매체만 나오면 더 이상 배우라고 볼 수 없지 않나. 그냥 다른 일을 하는 연예인이다. 내 배우의 생명이 굉장히 극한에 처해있다는 감정이 이미 컸다.”

-변신을 시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이 또한 이미지에 대한 것이다. 변신하기 위해 이 작품을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붙잡으려고 하는 마음을 비워내는 게 제일 어려웠다. ‘구출될 때 뭐라도 입혀주지, 이것만 바꿔주면 편하게 할 텐데’ 수많은 생각이 들더라. 마지막까지 비워내는 게 가장 어려웠다.”

-대부분 무너진 건물 안에 갇혀있어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그에 따른 제한적인 배우의 활용에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그런 부분에 대해 의견을 내진 않았나.
“나도 아쉬운 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김동규라는 신인 감독이 본인이 상상한 차인표를 두고 작지만 실험적인 세계를 만든 거다. 허구와 현실이 공존하는 모호한 세계를 만들어놓고, 본인이 해석한 차인표를 주인공으로 앉혀서 대본을 써왔다. 내가 작품을 하게 됐을 때 만약 이건 내가 아니니 틀리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간섭하기 시작하면 그건 다큐다. 결코 영화가 될 수 없다고 나도 감독도 판단했다. 나 역시 만족하지 못한 부분도 있고,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김동규 감독이 창조하고 해석한 차인표라고 받아들였고, 어쩌면 많은 대중이 생각하는 차인표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연기에 임했다. 다만 정치인이 되고 싶어서 공천을 받으려고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건 팩트와 전혀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수정이 됐다.”  

-대중이 바라보는 차인표는 건강하고 바른 생활을 하는 배우다. 스스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 부분도 있을까. 
“처음부터 대중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비쳐야지 계산하고 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어느 순간 보니 나를 둘러싼 거대한 이미지가 있더라. 사람들이 나로부터 이런 이미지를 기대하는 구나라고 느껴졌다. 연예계에 오래 있으면서 하나씩 쌓여온 것 같다. 차인표는 기본적으로 바른 생활 사나이로 알려져 있으니 나쁜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 무의식적이든 비의식적이든 깔려있다. 역할도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기준을 정하고 스스로 통제하고 생활의 일부분처럼 살아왔던 것 같다. 일부러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살다 보니 그렇게 됐고 그런 것들이 내 이미지를 더 공고히 만들었던 것 같다.”

역대급 변신으로 자신의 틀을 깬 차인표. /넷플릭스
역대급 변신으로 자신의 틀을 깬 차인표. /넷플릭스

-분노의 양치질이나 흔들리는 검지 등의 ‘짤’은 젊은 층에게 차인표라는 배우가 인지되는 포인트로 작용하기도 했다. 고착화된 이미지가 긍정적인 영향을 준 측면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충분히 그렇게 생각한다. 모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양면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긍정적인 면이 있었고, 그런 이미지 덕분에 사람들에게 더 잘 기억되는 부분도 있었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고착화된 부분에 있어서는 바꾸고 싶고 그런 마음이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얻은 큰 소득은 젊은 층에게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는 거다. 내 나이대 연기자들이 젊은 층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역할을 통해 갈 수밖에 없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젊은 분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팬들도 생겨서 너무 좋았다. 또 나를 잊었다고 생각했던 예전 팬들이 좋아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감사했다.”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다면. 
“아무 생각 없이 웃으려고 봤는데, 영화를 본 뒤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글이 있었다. 젊은 남자분이 그런 글을 남겼더라. 영화를 만든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소감이었다. 우리가 의도했던 부분이 잘 전달된 것 같아 정말 감사했다.” 

-이번 작품이 앞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는 데 있어서 어떤 영향을 미칠까.
“내 필모그래피에 있어서 이번 작품이 ‘차인표’전과 ‘차인표’ 후로 나뉘는 분기점이 됐으면 좋겠다. 그동안 내 이미지에 대한 통제나 여러 조건들을 다 생각한 후 역할을 선택했다면, 조금 더 자유롭게 다양하고 넓은 스펙트럼의 연기를 해보고 싶다.”

-연기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배우로서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평생 연기자가 된다기보다 이 업계에서 어떤 일이든 같이 하고 싶다. 창작을 하든 제작을 하든 연기도 하고 두루두루 일을 하면서, 이제는 청년들이나 소질 있는 분들이 많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하고, 작품을 일으키는 일에도 일조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