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다인이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감독 이태겸)로 관객 앞에 선다. /프레인TPC
배우 유다인이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감독 이태겸)로 관객 앞에 선다. /프레인TPC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우연히 부당 해고를 당했던 KTX 승무원들의 복직 기사와 그들에 관해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그동안 미처 몰랐던 이야기에 단숨에 빠져들었고, 화면 속 그들이 짓던 표정,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콕 박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당 해고와 노동인권을 다룬 영화의 시나리오를 받게 됐고,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헤아릴 순 없겠지만,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위로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배우 유다인은 ‘사망보다 해고가 더 무서운 현실’을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노동자가 됐다.

유다인은 오는 28일 개봉하는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감독 이태겸)로 관객 앞에 선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권고사직을 거부하던 중 하청 업체로 파견을 가면 1년 후 원청으로 복귀시켜주겠다는 제안을 받은 정은(유다인 분)이 1년의 시간을 버텨내고 자신의 자리를 되찾기 위한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그린 단편 ‘복수의 길’, 아버지의 벽화를 간직하기 위해 필름을 구하러 가는 순수한 소년의 여정 ‘소년 감독’을 연출한 이태겸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으로, ‘사무직 중년 여성이 지방 현장직으로 부당 파견이 됐는데, 그곳에서 굉장한 치욕을 겪었음에도 결국 버텨냈다’는 실화를 모티브로 제작됐다. 

극 중 유다인은 주인공 정은 역을 맡아 진정성 있는 열연으로 마음을 흔든다. ‘내 자리’를 빼앗는 세상에 지지 않고 맞서 도약하는 인물을 단단한 내공으로 그려낸다. 특히 이유도 없이 부당하게 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분노와 좌절,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담아내 호평을 얻고 있다.

2005년 드라마 ‘건빵 선생과 별사탕’으로 데뷔한 유다인은 영화 ‘야수와 미녀’(2005), ‘신데렐라’(2006), ‘용서는 없다’(2009) 등 다양한 작품에서 조단역으로 활약하며 인지도를 쌓았다. 이후 2010년 영화 ‘혜화, 동’에서 주인공 혜화 역을 맡아 섬세한 연기를 보여주며 제31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을 수상, 충무로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드라마 ‘아홉수 소년’(2014), ‘한번 더 해피엔딩’(2016), ‘닥터스’(2016), ‘역도요정 김복주’(2017), ‘출사표’(2020) 등과 영화 ‘속물들’(2019)을 통해 내공 있는 연기와 부드럽지만 단단함이 느껴지는 특유의 매력으로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사로잡아왔다.

배우 유다인이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를 택한 이유를 밝혔다. /프레인TPC
배우 유다인이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를 택한 이유를 밝혔다. /프레인TPC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그런 유다인의 강점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최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화상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시사위크>와 만난 유다인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향한 긍정을 잃지 않는, 내면의 단단함을 지닌 정은을 누구보다 잘 표현해낼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있었다고 밝혔다.

-사회적 메시지를 다룬 작품이었다. 책임감과 부담감이 남다를 것도 같은데.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감독님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관객들과 같이 나누고 공감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어려운 시기에 개봉하게 됐는데, 시기가 지나서라도 관객과 함께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이 아니더라도) 관객들과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작품에 참여한 계기는 무엇인가.
“나는 어떤 인물이나 사람에게 매료됐을 때 그 작품에 빠지고 꼭 해야겠다고 느낀다. 이번에는 실제 어려운 싸움을 긴 기간 동안 해온 분들의 모습이 담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분들의 절박함이나 절망감이 너무 와닿았다. 이후 시나리오를 받게 됐는데, 다큐멘터리 화면을 통해 느낀 그분들의 얼굴이나 표정, 하는 말들을 이 영화를 통해 표현해보고 싶었다.

내가 하면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라는 배우가 이 영화에 참여하면 더 깊이 있게 더 잘 표현이 될 것 같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은의 감정을 쭉 따라가는 작품이다. 표현을 과하게 하지 않고 따라가다 마지막에 빵 터진다. 내가 그런 감정선의 영화들에서 강하다고 생각을 했고,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은은 단단한 인물이었다. 유다인을 만나 어떻게 확장됐는지 궁금하다.
“시나리오 초반 캐릭터는 조금 더 와일드한 여자였다. 그런데 감독님이 내가 연기를 하면서 더 섬세해졌다고 하시더라. 내가 잘하는 연기톤, 잘하는 표현들 때문에 정은의 감정선이 조금 더 디테일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에서 단단한 내면을 지닌 인물 정은으로 분한 유다인 스틸컷. /영화사 진진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에서 단단한 내면을 지닌 인물 정은으로 분한 유다인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정은이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됐는지, 자세히 설명되지 않는다. 답답하면서도 실제 이유도 모른 채 부당 해고를 당하는 많은 노동자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나도 영화를 다 보고 정은의 전사가 어떤 식으로든 표현이 조금 더 됐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있었다. 또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이 인물의 전사를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 감독님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감독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라. 정말 말도 안 되는, 이해할 수 없는 부당한 이유로 손발이 묶이는 것처럼 일할 수 없게 만든다고.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도 그렇다고.”

-배우라는 일을 하는 직업인으로서 특히 더 공감한 지점이 있다면.
“‘일을 줘야 일을 하죠’라는 대사가 특별히 공감이 됐다. 내가 배우로 살아온 것이 햇수로 17년이라고 하는데, 그 시간 동안 1~2년 쉬었던 기간도 있었다. 일을 하고 싶은데 누가 나를 써주지 않으면 못하니까 거기에 대해 공감을 했던 것 같다.”

-송전탑 앞에 공포감을 느끼던 정은이 ‘지키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라’는 막내의 말에 용기를 내 송전탑에 오른다. 어떤 생각을 하고 올랐을까.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료를 생각하며 올라갔을 거라고 생각했고, 감독님도 아마 같은 의견이었을 거다. 내가 지켜야만 했던 사람. 내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다면, 내가 뭔가 행동을 취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들을 끊임없이 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갖고 연기했다.”

-정은이 표정의 거의 없는 인물이었는데, 송전탑에 처음 오르고 난 뒤 홀로 돌아오는 길에 미소를 짓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정은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하청 업체로 파견 와서 성과를 내거나 칭찬을 듣거나 뭔가를 이루거나 인정을 받은 건 아니지만, 나 스스로 움직이고 있고, 나 스스로 뭔가를 이루고 있다 하고 있다 실천하고 있다 행동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미소라고 생각했다. 그 장면 촬영할 때 정은의 무표정한 모습만 보던 촬영 감독님이 ‘정은에게 이런 표정도 있었냐’는 말을 툭 하시더라. 나 역시 되게 좋았다.”

-오정세와 호흡은 어땠나. ‘아홉수 소년’ ‘시체가 돌아왔다’에 이어 세 번째 만남이었는데.
“다시 한 번 좋은 배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이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모든 촬영장에 필요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유쾌하고, 현장을 편안하게 만들고 스태프들이나 배우들이 금방 적응할 수 있게 하고 금방 친해질 수 있게 만든다. 아이디어도 굉장히 많다. 닮고 싶은데 내겐 없는 부분인 것 같기도 하다. 부러운 배우다.”

-감정적으로 힘든 작품이기도 했을 것 같다. 특히 더 힘들었던 장면이 있다면.
“장례식장 신이 그랬다. 원래 다 컷이 나눠져 있던 장면이었는데 촬영 당일 갑자기 한 번에 원테이크로 촬영하는 것이 결정이 났다.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이 초집중한 상태였다. 한 명이라도 실수하면 다시 찍어야 하는 상황이니까. 그때 몸싸움도 있었고, 감정적으로도 그렇고 가장 힘들었던 촬영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에서 진정성 있는 열연을 보여준 유다인. /프레인TPC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에서 진정성 있는 열연을 보여준 유다인. /프레인TPC

-나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를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정은을 연기하면서 스스로를 아끼는 법도 배웠을 것 같은데.
“사실 영화를 기점으로 바뀐 것은 아니고 최근 변하고 있다. 나는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 오면 금방 일어서고 의지가 강한 성격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자신감이 없는 타입이다. 그런데  내가 너무 좋아하고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를 자꾸 괜찮다고 좋아해 주고 잘 하고 있다고 잘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니 나도 진짜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고 그로 인해 바뀌게 되더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를 다 좋아해 주니까 내 상태가 계속 좋아지더라.”

-정은에게 송전탑이 그랬듯, 유다인에게도 공포감이 들게 하는 무언가가 있을까. 있다면 어떻게 극복했는지.
“배우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촬영장에서 내가 연기를 잘 못하니까 스태프들이 무시하는 듯한 말투로 얘기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게 트라우마가 돼서 지금도 대사 NG를 내거나 실수를 하면 갑자기 식은땀이 나는 순간들이 있다. 신인 때 겪은 그 기억이 크게 자리 잡았다. 아무 일도 아니라고 괜찮다고 계속 다독이고 있다. 그런데 결국 내가 받았던 상처, 마음들이 캐릭터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내겐 아프지만.”

-배우, 그리고 연기란 어떤 의미인가.
“예전에는 연기가 전부였다. 만약 배우를 안 하면 뭘 하지 뭘 잘할 수 있고 어떤 의미가 있지 생각했다. 연기 아니면 나는 생각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문제에 대해 가벼워졌다. 여의치 않으면 또 다른 거 하면 되는 거지 뭐 이렇게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다. 가벼워진 마음이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된다. 너무 잘 하려고 하면 아무래도 힘이 들어가니까. 예전에는 굉장히 가깝게 들여다봤다면 지금은 멀리 떨어져서 보게 되는 게 있는 것 같고, 전체적으로 이 캐릭터가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보이는 것 같다.”

-연기에 어떤 재미를 느끼는지.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변함이 없는 것 같은데, 사람의 표정에 관심이 많다. 어렸을 때부터 일반적인 웃는 모습이나 찡그리는 모습이 아니라, 막 웃다가 어느 순간 울컥한다든지 그런 것들에 관심이 많았다. 저 사람이 저런 표정을 하는 건 뭘까 그 뒤에는 어떤 사연들이 있을까 그런 호기심에서부터 출발했던 것 같다. 지금도 그것에 빠져있다.”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희 영화가 조금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고,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극장을 나가는 발걸음에는 힘이 생길 거다. 나 역시 많이 공감하고, 위로를 받았다. 우리가 느끼고 표현하고 싶었던 것들을 같이 공감하고, 위로를 받고 돌아가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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