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송중기가 영화 ‘승리호’(감독 조성희)로 돌아왔다. /넷플릭스
배우 송중기가 영화 ‘승리호’(감독 조성희)로 돌아왔다. /넷플릭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캐릭터를 처음 접했을 때 ‘자포자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삶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아무 생각도 없고 정체돼 있는 인물이라 생각했다. 그건 당시 촬영할 때의 나, 송중기라는 사람의 마음과도 비슷했다.”

배우 송중기가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감독 조성희) 공개를 앞두고 진행된 라이브 컨퍼런스에서 자신이 연기한 김태호 캐릭터를 두고 내뱉은 말이다. 2019년 여름, 이혼의 아픔을 겪었던 그의 당시 심경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기도 하다.

2년이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송중기는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왔고, 걷고 있다. 숨거나 피하지 않고, 그저 지금 눈앞에 놓인 일들을 하나하나 충실히 해내며,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다. 결코 쉽지 않았을 그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 영화 ‘승리호’ 그리고 태호가 더욱 값지게 다가오는 이유다.  

지난 5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승리호’는 2092년,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의 선원들이 대량살상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한 후 위험한 거래에 뛰어드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영화 ‘늑대소년’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등을 연출한 조성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그동안 한국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우주 SF 장르를 완성하며 국내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영화 ‘군함도’(2017) 오랜만에 영화로 돌아온 송중기는 ‘승리호’에서 돈이 되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하지만 언제나 알거지 신세인 문제적 파일럿 태호 역을 맡아 극을 이끈다. 허술해 보이지만 천재적인 실력을 가진 인물로 분해 입체적인 매력을 선보이는 것은 물론, 데뷔 후 처음으로 절절한 부성애 연기를 펼쳐 한층 깊어진 내공을 보여준다.

송중기가 영화 ‘승리호’를 향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넷플릭스
송중기가 영화 ‘승리호’를 향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넷플릭스

최근 화상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시사위크>와 만난 송중기는 쏟아지는 호평에 “좋은데 얼떨떨하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이런 장르의 영화가 한국어 대사로 진행된다는 게 신선하고 반가웠고, 완성된 작품을 보고 자신감을 얻기도 했다”며 ‘승리호’를 향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완성된 영화를 본 소감.
“배우들 모두 크로마키 앞에서 촬영했기 때문에 어떻게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했다. 완성된 영화를 보고 정말 놀랐다. 물론 제작진에 대한 신뢰가 있었지만, 배우들이 부족해서 채우지 못한 부분까지 다 메꿔줄지 몰랐다. 정말 깜짝 놀랐다. 이렇게까지 잘해낼지 몰랐고, 결과물을 보면서 자신감도 얻었다.”

-공개 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여러 국가에서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 된 영화 1위에 오르기도 했는데, 기분이 어떤가.
“일단 너무 좋다. 어제 조성희 감독님과 통화하면서 ‘우리 영화 얘기가 맞냐’고 했다. 기사나 인터넷에 있는 반응을 보면서 조금씩 실감하고 있다. 해외에 있는 친구들이나 영화 관계자들이 직접 문자메시지도 보냈다. 또 해외에서 넷플릭스로 승리호를 보고 있는 외국 시청자들의 사진도 받았다. 그런 걸 보면서 많은 분들이 시청해 주시는구나 생각했다. 좋은데 얼떨떨하다.”

-한국 첫 우주 SF영화라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우주영화에서 고철 덩어리 청소선에 태극기가 붙어있고 한글로 ‘승리호’라고 쓰여있는 걸 시나리오로 확인했을 때 소름이 돋았다. 투박하지만 한글로 ‘승리호’라고 붙어있는데, 소름이 돋더라. 또 이런 장르의 영화가 한국어 대사로 진행된다는 것 자체가 신선하고 반가움이 컸다.”

-반응 중 기억에 남은 게 있다면.
“‘승리호’가 넷플릭스로 공개되기 전 먼저 접한 관계자 중 한 분의 말에 눈물이 찔끔 났었다. 모든 작품이 좋은 점이 있고 아쉬운 점이 있는데, 영화 중반부에서 그런 생각을 버렸다고 하더라. ‘어떻게 만들었나’라는 마음으로 봐왔는데, ‘승리호’는 그런 생각을 버리고 박수를 치면서 봤다고 말을 해준 적이 있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 준 것 같아서, 또 그런 작품의 구성원이 돼서 뿌듯했고, 좋았다. 공개된 다음엔 그냥 집에서 치킨 시켜놓고 맥주 마시면서 우리 작품을 보는 인증사진을 올려주시는 것만으로도 좋더라. 고생해서 만든 작품을 봐준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극장 개봉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극장에서 개봉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반응이 있는 걸 알고 있는데, 나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굳이 가정하고 생각하는 편이 아니라, 만족하고 있다. 바로바로 볼 수 있어서 좋더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후 TV로도 보고, 드라마 현장에서 태블릿을 이용해 보기도 했다. 네 번 정도 본 것 같다. 온전히 다 느꼈다. 그래서 아쉬움은 크게 없다.”

‘승리호’에서 조종사 태호로 분한 송중기 스틸컷. /넷플릭스
‘승리호’에서 조종사 태호로 분한 송중기 스틸컷. /넷플릭스

-‘아스달 연대기’에 이어 ‘승리호’까지 연이어 대작 판타지물에 출연했다. 이런 장르에 매력을 느끼나.
“‘대작’이라는 단어는 빼도 될 것 같다. 대작이라 끌리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아스달 연대기’만 말하자면, 나도 처음 보는 장르라 끌린 건 맞다. 그동안 사극은 많았지만, 고대사를 이야기한다는 게 새로웠다. 그런 의미에서 ‘승리호’도 우주 얘기를 한다는 것을 듣고 ‘대박’ 했다. 솔직한 나의 첫 반응이었다. 장르 욕심이 많은 건 사실이다. 지금도 현재도 그렇고, 안 해봤던 걸 하고 싶은 욕구가 굉장히 크다. 내가 기존에 했다는 느낌이 들면 끌리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두 작품에 참여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처음으로 부성애 연기를 소화했다. 어렵진 않았나.
“처음엔 어려웠다. 시작할 때 단순하게 접근해서 그랬던 것 같다. 실제로 경험을 안 해봤는데 어떻게 표현하지? 대중이 내가 아빠 역할을 맡았을 때 날 받아들여줄까? 그런 고민이 컸다. 하지만 나는 아빠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안 했던 것이라 신났는데 막상 하다 보니 막막하더라. 잘못 접근하기도 했는데, 촬영 들어가서는 조성희 감독, 동료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풀렸다. 태호는 그대로였는데 변화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가득 차서 막혔던 것 같다. 잠깐 정체된 것이지 변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대신 태호의 서사를 몽타주로 짧게 설명하기에 관객들에게 어떻게 콘트라스트를 줘야 할지 고민을 했다.”

-태호와 비슷하다고 느낀 지점도 있나.
“일단 태호는 굉장히 뻔뻔한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좀 있었으면 좋겠다. 태호를 두고 ‘츤데레’라는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나도 주위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듣긴 한다. 실제로 그렇게 다정한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태호도 겉으로 보면 전혀 다정하지 않은데, 그 안에 따스함을 항상 갖고 살아가려는 인물이다. 그런 면에서 나와 비슷한 것 같다.”

솔직한 심경을 전한 송중기. /넷플릭스
솔직한 심경을 전한 송중기. /넷플릭스

-앞서 진행된 라이브 컨퍼런스에서 촬영 전 태호와 마찬가지로 ‘자포자기’ 상태였다고 했는데, 어떤 심정이었나.
“이젠 다 아는 사실이니까. 촬영할 때 내 심정을 그대로 표현한 거다.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싶은 것도 있지만, 개인사이기도 하고 쑥스러워서 말씀을 못 드리겠다. 그 말로 다 표현되지 않았나 싶다.” 

-어떻게 극복했는지.
“극복했다기보다 내가 느끼는 지금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보자는 생각을 했다. 극복하려고 하진 않았다. 인위적으로 무언가 한다고 해서 극복되는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스며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보냈다.”

-김태리(장선장 역)‧진선규(타이거 박 역)‧유해진(업동이 역)과의 호흡은 어땠나.
“그들이 가진 인성 자체가 좋고, 마음이 넓은 사람들이라 ‘마음대로 해, 내가 다 받아줄게’라는 느낌이 있었다. 넷이 잘 통한 것 같다. 실수하는 게 있어도 다 메꿔줄 것 같은 믿음이 있었다. 파트너끼리 그런 게 없으면 현장에서 힘든데, 각자의 좋은 욕심과 배려심이 잘 균형을 맞췄던 것 같다. 영화를 홍보하면서 넷이 친해서 보기 좋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있는데, 실제로 그렇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현장에서도 그랬다.”

-‘늑대소년’ 이후 김향기와 재회한 소감도 궁금하다. 
“김향기가 캐스팅됐다고 했을 때 모두 박수를 쳤다. 김향기가 갖고 있는 퓨어한 색과 현재 업동이의 목소리가 입혀졌을 때를 상상만 해도 너무 웃음이 나왔다. 뭔가 어울리는 것도 같았다. 실제로 향기가 현장에 왔을 때 작품 찍다 와서 밤을 새우고 온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조성희 감독과의 인연으로 한 걸음에 달려와 줘서 너무 고마웠다. 여전히 사랑스럽더라. 끝까지 업동이를 잘 채워줘서 고맙다.”

송중기가 ‘승리호’에 이어 ‘빈센조’까지 열일을 이어간다. /넷플릭스
송중기가 ‘승리호’에 이어 ‘빈센조’까지 열일을 이어간다. /넷플릭스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무엇인가.
“배우들과 함께 한 장면은 힘든 게 없었다. 혼자 하는 장면이 힘들었다. 특히 조종실 세트에서 혼자 거의 몇 주를 촬영했는데, 그때 가장 힘들었다. 크로마키 앞에 서면 막막해질 때가 있다. 앞에는 그냥 초록색 천이 가려져있고, 눈앞에 실사로 보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려웠다. 특히 내 표정이 다음 장면과 이질적으로 연결되면 안 되기 때문에 어떻게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이 됐다. CG도 입혀야하고, 내 표정이 어느 정도로 표현돼야 하는지 막막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민했던 만큼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이기도 하다.”

-말한 것처럼, 배우의 상상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작업이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배우들도 처음엔 ‘나노봇이 뭐야?’ 했다. 눈에 보이는 게 없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막막할 때마다 감독님이 항상 준비해놓은 자료들로 현장에서 바로바로 궁금증을 해결해 줬다. 워낙 방대하게 자료를 많이 준비해 줘서 바로 이해하면서 찍어서 예상했던 것보다 힘들진 않았다. 나 혼자였다면 힘들었을 거다. 조성희 감독님이 피드백을 주고, 또 배우들과 상의하면서 할 수 있었다. 서로 도와가면서 해결해나갔던 현장이었다.”

-신파 설정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조성희 감독의 정서를 좋아해서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은 없었다.  여러 가지 반응들이 나오고 있는데, 드라마든 영화든 어떤 작품을 선보일 때마다 항상 다양한 반응은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런 게 대중문화예술을 하는 제일 큰 매력인 것 같다. 이 분은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저분은 저런 생각을 하는구나 최대한 즐기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그분들의 솔직한 감상평 아니겠나. 또 그걸 존중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뻔한 답변인 것 같지만, 진심이다.”

-‘승리호’에 이어 tvN ‘빈센조’까지 연이어 두 작품으로 대중과 만나게 됐는데.
“즐겁기도 한데 부담감도 있다. 두 작품을 동시에 선보이다 보니 부담감이 두 배 이상인 것 같다. ‘빈센조’ ‘승리호’ 모두 정이 많이 들었고, 즐겁게 작업한 프로젝트라 욕심도 크고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더 그런 것 같다. 재밌게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항상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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