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빛과 철’(감독 배종대)이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찬란
영화 ‘빛과 철’(감독 배종대)이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찬란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두 여자가 한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었다. 희주(김시은 분)의 남편은 죽었고, 영남(염혜란 분)의 남편은 2년째 의식불명이다. 2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희주는 우연히 영남을 맞닥뜨리고, 영남의 딸 은영(박지후 분)은 희주의 주위를 의뭉스럽게 맴돈다. 그리고 이들은 빛과 빛, 철과 철이 부딪히던 그날 밤의 비밀과 마주한다.  

영화 ‘빛과 철’(감독 배종대)은 남편들의 교통사고로 얽히게 된 두 여자와 그들을 둘러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담은 미스터리로, 단편영화 ‘고함’(2007), ‘계절’(2009), ‘모험’(2011)으로 주목받은 배종대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가장 큰 미덕은 배종대 감독의 섬세하고 날카로운 연출력과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력이다. 영화는 각자의 이유로 교통사고의 진실과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는 인물들의 감정을 깊이 탐색한다. 중반까지 교통사고의 진실을 좇는 희주를 따라가는데, 하나둘씩 드러나는 사건의 단서와 그날의 진실이 촘촘하게 얽히고설켜 미스터리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배종대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과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가 빛난 ‘빛과 철’ 스틸컷. /찬란
배종대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과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가 빛난 ‘빛과 철’ 스틸컷. /찬란

배종대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특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뒤바뀌기도 하고, 거짓보다 뼈아픈 진실과 마주하는 과정에서 더 이상의 침묵을 거부하는 가해자의 부인 희주와 피해자의 부인 영남, 그리고 영남의 딸 은영의 감정을 섬세하면서도 치밀하게 담아내 몰입도를 높인다.

배우들은 그야말로 소름 끼치는 열연으로 스크린을 압도한다. 먼저 피해자의 아내 영남으로 분한 염혜란은 묵직한 연기로 이름값을 한다. 교통사고 후 의식불명이 된 남편과 남은 딸을 위해 고단한 삶을 괜찮은 척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부터, 말 못 할 사정을 품은 인물의 미스터리한 내면을 깊이 있게 담아낸다. 그동안 보지 못한 그의 새로운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가해자의 아내 희주 역을 맡은 김시은도 선배 염혜란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고통 속에 살아가는 희주를 섬세하게 담아내는 것은 물론,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담담한 모습부터 진실과 마주하며 폭주하는 감정까지 폭넓게 소화한다.

‘빛과 철’에서 압도적인 열연을 펼친 염혜란(왼쪽)과 김시은(오른쪽 위), 박지후 스틸컷. /찬란
‘빛과 철’에서 압도적인 열연을 펼친 염혜란(왼쪽)과 김시은(오른쪽 위), 박지후 스틸컷. /찬란

영화 ‘벌새’(2019)로 주목받은 박지후는 영남의 딸이자 모두가 침묵하고 있는 아버지의 교통사고에 대한 비밀을 품고 있는 은영 역을 맡아 한층 성장한 연기력과 깊어진 표현력을 보여준다. 감정적으로 크게 격돌하는 영남과 희주 사이를 유연하게 오가며 미스터리의 열쇠를 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다만 다소 허무한 결말은 아쉽다. 진실의 끝엔 무엇이 있을지 호기심을 동력 삼아 힘 있게 나아가던 이야기는 결말에 다다라, 맥이 풀리고 만다.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열린 결말로 끝나는 탓에, 찝찝함이 남기도 한다.

연출자 배종대 감독은 “‘빛과 철’은 인물의 영화”라며 “이 인물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무엇을 찾고 싶은지 마음을 열고 봐주길 바란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 인물들의 앞으로 행방에 대해 생각해 주면 좋겠다. 정답을 뚜렷이 정해놓지 않았다. 관객 각자의 마음속에서 그 인물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러닝타임 107분, 오는 1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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