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승리호’(감독 조성희)로 흥행불패를 이어가고 있는 김태리.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감독 조성희)로 흥행불패를 이어가고 있는 김태리. /넷플릭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데뷔 6년 차 배우 김태리가 걸어오고 있는 길은 가히 독보적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2016)로 단숨에 ‘충무로 신데렐라’에 등극한 그는 영화 ‘1987’(2017), ‘리틀포레스트’(2018) 등을 연이어 흥행시키며 ‘믿고 보는 배우’ 반열에 올랐다. 첫 브라운관 도전작인 tvN ‘미스터 션샤인’(2018)까지 성공을 거두면서 ‘흥행불패’를 이어오고 있다.

단지 ‘흥행 파워’만 입증한 건 아니다. 귀족 아가씨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접근하지만 결국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숙희로, 권력의 부당함에 침묵으로 외면하다 버스 위에 올라가 목소리를 내는 연희로, 조선 최고 명문가 영애이자 해방을 위해 싸우는 독립투사 애신으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배고픈 청춘의 해원으로, 전형성을 벗어난 캐릭터를 통해 끊임없이 변주하며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이번에도 새롭다.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를 이끄는 선장으로 분해, 지금껏 보지 못한 신선하고 매력적인 여성 선장을 탄생시켰다. 매 작품,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김태리. 이젠 대체불가다.

지난 5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승리호’(감독 조성희)는 2092년,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의 선원들이 대량살상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한 후 위험한 거래에 뛰어드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 ‘늑대소년’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등을 연출한 조성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그동안 한국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우주 SF 장르를 완성하며 국내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극 중 김태리는 승리호의 젊은 리더, 장선장을 연기했다. 장선장은 한때 악명 높은 우주 해적단의 선장이었지만, 신분을 바꾼 후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를 이끄는 인물. 안하무인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비상한 두뇌와 남다른 리더십으로 결정적 순간마다 빛을 발한다.

김태리는 단단한 카리스마로 진취적이고 매력적인 장선장을 완성해냈다. 올백 단발 헤어스타일에 선글라스, 레이저 건을 겨누는 당당한 외적 모습뿐 아니라, 인물이 지닌 서사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 호평을 얻고 있다.

독보적인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김태리. /넷플릭스
독보적인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김태리. /넷플릭스

최근 화상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시사위크>와 만난 김태리는 “장선장의 당당함을 닮고 싶다”며 “나는 ‘유리 멘틀’”이라는 의외의 고백을 털어놔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보여준 꾸밈없고 솔직한 모습과 호탕한 웃음, 밝고 당찬 에너지는 장선장만큼 멋졌고, 장선장  못지않게 매력적이었고, 장선장 보다 더 빛났다.    

-공개 후 해외에서도 반응이 뜨겁다. 호평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SF 장르라고 하면 할리우드나 외국영화에서 봤던 이미지가 각인돼있는데, ‘승리호’는 일단 언어가 한국어이고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자국의 말을 하고 있다. 그런 점이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가지 않았을까 싶다. 누가 구멍 난 양말을 우주에서 신고,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다니고 딸을 데리고 구걸하러 다니겠나. 하하. 그동안 이런 이야기가 없었으니까, 신선함이 어필되지 않았을까 싶다.”

-앞서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적 정서가 많이 담긴 작품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세트나 소품들이 우리가 실생활에서 쓰는 것들이 놓여있다. 나무 테이블이나 삐거덕거리는 소파, 냉장고나 주전자 등 전부 지구에서 쓰던 실생활 소품들이다. 심지어 더 녹이 쓸고 때가 탔다. 그런 것에서 오는 정감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가족, 인류애, 사람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런 곳에서 우리의 정서가 많이 보이지 않나 싶다. SF라고 해서 미래라는 시간에 집중한 게 아니라,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집중하고 있는 이야기라는 점이 한국적이라고 생각했다.”

-조성희 감독이 장선장 역에 김태리를 캐스팅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시나리오가 너무 좋았고, 캐릭터도 좋았는데 내 얼굴로 그 인물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감독님에게 어떤 면에서 내 얼굴을 거기에 입히고 싶은 거냐고 물어봤더니, 선장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전형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모두를 통솔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 으레 생각하는 이미지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특히 내가 장선장이라는 캐릭터에 앉아있으면 기능적인 인물이 앉아있는 것보다 오히려 다른 힘이 나올 것 같다면서 더 포스 있어 보일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감독님을 믿고 시작한 부분이 크다.”

영화 ‘승리호’에서 매력적인 여성 선장 캐릭터를 완성시킨 김태리.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에서 매력적인 여성 선장 캐릭터를 완성시킨 김태리. /넷플릭스

-장선장은 어떤 인물이었고,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는지.
“신념이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대의를 가진 사람. 그리고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는 사람. 그런 인물이기 때문에 선장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연기하면서 선장이라는 타이틀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크루들과 어떻게 소통하는지와 인간적인 인간에 초점을 맞췄다. 장선장의 콘셉트만 보면 완전히 엘리트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선내에서 크루들과 호흡하면서 살아가는 한 인간을 잘 보여주고자 고민을 많이 했다.”

-장선장의 분위기나 톤은 어떤 스타일로 설정했는지.
“감독님의 의도에 따르려면 조금 더 벗어나게 했을 수 있는데, 직접 연기를 하려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인물이더라. 복잡한 인물을 어떻게 최대한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고, 그러다 보니 조금은 묵직하게 나온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아쉬웠던 게 조금 더 막 나갔으면 좋았겠다는 거다. 더 만화적으로 표현하고, 활기찬 모습을 더 보여줬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후반 CG 작업이 많은 작품이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크루들이 활동했던 선내 같은 경우는 세트로 실제 다 지어진 부분이다. 실제 작동하는 것처럼, 버튼도 다 있었다. 하지만 크로마키 촬영이 있었다. 허공에 대고 안 보이는 적을 향해 총을 쏴야 했고, 안 보이는 폭탄에 반응해야 했다. 그런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모두 다 처음이고 도전이었기 때문에 위안을 느끼면서 으쌰 으쌰 했다. 뻔뻔하게 했다. 영화 초반 ‘비켜라, 이 무능한 것들아’라는 대사와 함께 쓰레기를 탈취하는 장면이 있는데, 선내에서 그 대사만 뱉었지 외부는 다 CG 작업이 필요했다. 완성된 장면을 보니 정말 너무 좋더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그 이상으로 좋았다. 그걸 보면서 이제 만들 수 없는 이야기가 없겠다 싶으면서 감동을 느꼈다.”

-장선장이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이었는데, 실제 본인과 닮은 부분이 없다고. 어떤 지점이 다르다고 느꼈고, 그래서 더 닮고 싶은 부분도 있었는지.
“무슨 소리냐고 할 것 같지만, 당당함이 닮고 싶다. 내가 겉으론 당당해 보이지만, 집에 가서 이불킥도 하고 오늘 했던 얘기를 곱씹어 본다. ‘유리 멘틀’이다. 아마 오늘 인터뷰한 것도 집에 가서 ‘아이고 이런 얘기를 왜 했지’하며 내 입을 치고 있을 거다. 그런데 장선장은 한결같이 당당하다. 하나도 꿀릴 게 없다. 그런 모습이 닮고 싶다. 멀리 볼 줄 아는 자에게서 나오는 여유로움인 것 같다. 그 여유로움이 닮고 싶다.”

-반대로 장선장에겐 없는 김태리의 장점이 있다면.
“한 번도 생각 안 해봤는데. 뭘까… 웃음? 장선장은 나처럼 안 웃는다. 하하. 호탕한 웃음? 다른 사람들에게 ‘힘든데 태리 웃음을 들으니 힘이 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웃음!”

김태리가 달라진 변화에 대해 언급했다. /넷플릭스
김태리가 달라진 변화에 대해 언급했다. /넷플릭스

-가장 김태리다웠던 캐릭터를 꼽자면.
“‘아가씨’ 숙희였던 것 같다. ‘아가씨’는 상업영화에 첫 발을 들인 작품이다. 그래서 가장 나로부터 답을 많이 찾은 캐릭터였다. 이럴 때 나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이럴 때 나라면 어떤 목소리를 낼까 그런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했다. 나로부터 연기한 캐릭터라 숙희가 가장 닮아있는 것 같다.”

-2017년 ‘아가씨’를 통해 단숨에 충무로 신데렐라로 떠오른 뒤, 이제 ‘믿보배’로 자리매김했다. 그때와 지금, 마음가짐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승리호’를 큰 부담감과 긴장 속에서 찍었다. 그렇게 찍고 나서 많이 느끼고 배운 게 있다. 주변을 잘 돌아보자,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생각하자라는 거다. 그렇게 눈을 뜨니, 나를 사랑해 주고 응원해 주고 아껴주시는 분들이 하는 말씀들이 손끝으로 다 전달이 되더라. 전달이 다 되니, 현장에서 마음이 풍요로워졌달까. 불안감이나 긴장들에서 많이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음이 예전보다 편해졌다. 그런데 이것은 성장해서 이뤄진 게 아니라, 그냥 지금이 그런 때인 것 같다. 다시 불안의 시기가 올 거다.(웃음)”

-스타성에 비해 스캔들이 없는 배우로 꼽힌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기관리법이 있다면.
“사람을 대할 때 진심으로 대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사실 배우라는 직업이 되게 거짓말하기 쉬운 입장에 있다. 나쁜 의미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좋게좋게 에둘러 말하기 위해서, 혹은 이미지를 위해서 거짓말을 해야 하는 지점들이 있지 않나. 그런데 그래도 그 안에서 최대한 나의 진심이 보일 수 있게 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배우로서 김태리의 신념은 무엇인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 주변도 사랑했으면 좋겠고 그 외에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도 사랑을 나눠줄 수 있는 그런 인간이고 싶다. 배우로서도 그렇고 사람 김태리로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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