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사업에 있어서 세금 낭비를 막기 위해 시행되는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 무용론이 일고 있다. 예타는 기획재정부에서 관장하며 조사도 국가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하기 때문에 정부의 통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한전이 인도네시아에서 추진하고 있는 ‘석탄발전소 자와9‧10호기 사업’도 예타 무용론에 힘을 싣는 사례로 지적된다. 이 사업은 예타에서 ‘경제성’ 충족시키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통과됐다. 국책금융기관들의 천문학적 자금 투자로 대규모 투자손실 발생이 예상된다. 이는 결국 국민 세금과도 맥이 닿아있다.   

이 같은 문제를 막고자 최근 국회 차원에서 예타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여당은 예타의 ‘개정’을, 야당은 예타 ‘폐지’를 주장하며 맞서고 있는 상태다. [편집자주] 

사진은 △인도네시아 환경단체 왈히 △그린피스 인도네시아 △트렌드 아시아 등 활동가들이 지난해 6월 자카르타 한국 대사관 앞에서 석탄발전소 자와9‧10 건설에 대한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 트렌드아시아

시사위크=최정호 기자  한전이 투자하고 국내 기업이 시공에 참여하는 인도네시아 ‘자와 9‧10호기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에서 두 번이나 ‘적자’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정책성’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지난해 6월 심사에서 통과됐다.  

과거 예타심위위원회로 활동했던 한 교수는 <시사위크>와 인터뷰에서 “세금 낭비를 막기 위해 예타를 통해 경제성 부분을 평가하는데 기술적‧정책적 부분을 높게 평가해 졸속으로 통과키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이 같은 사례는 현 정부 들어 증가해 문제”라고 지적했다. 

◇ “인니 사업, 추가손실 위험” 평가… 한전‧국책금융 2조원 투자

예타는 예산 낭비 방지 및 재정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공공기관의 경우 총사업비가 1,000억원 이상이고, 500억원 이상의 국가 예산(또는 공공기관 부담금)이 투입될 경우 예타를 받게 돼 있다.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발전성 측면에서 타당성을 검토해 국가사업을 진행한다.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 재무경영과 관계자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해외사업의 예타 평가 기준은 총 10점 만점 중 수익성이 6.5점, 공공성이 3.5점”이라고 설명했다.  

국가 예산을 쓰고자 하는 국가 기관이 예산 심위를 신청하면 기획재정부가 KDI에 예타를 의뢰해 사업을 검토한다. 해당 사업이 일종의 평가수치인 AHP 지수에서 0.5를 넘을 경우 예타가 통과돼 기획재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게 된다.

자와9‧10호기 사업의 경우 1차 예타에서 0.481를 받아 탈락했다. 재조사에서는 0.5를 받았으나 ‘회색영역’으로 분류돼 재심사를 거친 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0.549를 받아 예타가 통과한 것으로 알졌다. 회색영역 분류는 심사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차 범위를 줄이기 위해 심사위원들이 재심사하는 제도다.

인도네시아 석탄발전소 자와9‧10호기 사업은 한전이 600억원의 지분을 투자하고 추가적으로 3,000억원 규모의 채무보증을 섰다. 이 사업은 인도네시아 전력공사가 추진하며 지분 51%를 보유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내 발전 및 석유화학 생산기업인 ‘Barito Pacific’이 지분 49%를 보유하고 있는데, 한전은 이 지분의 15%의 인수하는 방식으로 사업에 참여했다. 

총 사업비 4조4,530억원(34억9,000만달러) 중 자본투자 1조647억원(9억6,000만달러) △금융대출 2조8,060억원(25억3,000만달러)이 투입됐다. 이 중 △인도네시아전력공사 △Barito Pacific △한전 등의 지분 투자로 1조632억원(9억6,000만달러)를 마련했다. 금융대출 중 1조7,000억원은 우리나라 국책 금융기관 △수출입은행 △한국무역보증보험공사 △산업은행 등과 시중은행이 투자했다.

총 사업비 4조4,530억원(34억9000만달러) 중 1조7,000억원은 우리나라 국책 금융기관 △수출입은행 △한국무역보증보험공사 △산업은행 등과 시중은행이 투자(금융대출)했다. / 최정호 기자 

한전 및 국책 금융기관 등이 2조원 이상 투자한 자와9‧10호기 사업이 1차 예타에서 ‘적자’ 판정을 받았다. 국회 김성환(더불어민주당‧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의원실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자와9‧10호기는 2019년 10월 KDI가 실시한 예타에서 “수익성이 없으며 추가 손실 발생 위험이 큰 것”으로 판단돼 탈락됐다. 

당시 KDI는 자와9‧10호기는 25년간 전력사업으로 총 1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KDI가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저가수주로 인해 천문학적 손실을 볼 것으로 예측했다. 발전소 설비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은 공사비를 1조3,329억원(12억2,888만달러)로 예상했지만 KDI는 7,000억원 가량 예산이 더 투입될 것으로 내다봤다.  

자와9‧10호기는 2020년 6월 예타 재조사에서도 적자 판정을 받았다. KDI는 한전이 전력 판매 수익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전제했다고 지적했다. 한전은 25년간 발전사업으로 총 86억원의 수익이 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전력 판매의 기초가 되는 송전비율을 고려하면 발전소는 269억원의 적자가 날 것으로 KDI는 내다봤다.   

◇ 예타 재신청 ‘불법’… 시민단체 “위법” 

자와9‧10호기 사업이 적자로 예상된 상황임에도 예타가 통과된 이유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국가기관이 진행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예타 평가 기준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즉 경제성 평가 보다는 기술적‧정책적 부분을 높이 평가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강력하게 비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책감시사업단 관계자는 “예타 보고서는 믿지 못하는 수준”이라며 “예타가 정부의 입김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한전이 두 차례나 예타를 받은 게 불법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공기업 준정부기관 사업 예비타당성조사 운용지침’에 따르면 예타는 재신청할 수 없게 돼 있다. 다만 경제‧사회적 여건 또는 사업 계획이 현저히 변동될 경우 재신청할 수 있다. 단순한 사업비 조정 및 일부 사업 계획 보완은 재신청 사유로 볼 수 없다는 게 운용 지침에 명시돼 있다.

한전의 예타 재신청을 담당했던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 재무경영과 관계자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보증수수료, 기술자문료, 설비변경 등의 사유가 있었기 때문에 재신청 대상이 됐다”며 “자문위원회 자문과 KDI와 협의를 통해 결정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위법하다고 보고 있다. 인도네시아 환경단체 등과 함께 석탄발전소 건립 반대 운동을 진행해 온 국내 시민단체 ‘기후솔루션’ 윤세종 변호사는 <시사위크>와 인터뷰에서 “지침에 따르면 사업비 조정 및 일부 사업 계획 보안은 높은 수준의 변화일 때만 가능하다”며 “수수료 조정은 단순 변경 수준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2차 예타 통과를 위해 한전이 수수료를 조정한 것이며, 법 자체가 이 같은 일부 조정을 통한 재심사를 막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자와9‧10호기는 지난해 6월 한전 이사회에서 사업 승인 통과 후 현재 착공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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