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폐기된 법안이 15,000여건에 달한다. 이 중에는 법안이 통과될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지만,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처럼 많은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는 이유는 이해당자들간의 첨예한 대립 때문이다. 일부 법안은 이해당사자들의 물밑로비로 논의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폐기되기 일쑤다. <시사위크>는 국회에 계류된 법안이 왜 처리되지 못했는지 그 과정을 쫓고자 한다. 법안이 발의된 배경과 국회에서 잠만 자야 하는지를 추적했다.

20대 국회에서 소년법 개정안이 40여건 발의된데 이어 21대 국회에서도 지금까지 6건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뉴시스
20대 국회에서 소년법 개정안이 40여건 발의된데 이어 21대 국회에서도 지금까지 6건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뉴시스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소년법을 둘러싼 논쟁이 또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지난 1월 경기 의정부경전철과 지하철 등에서 노인의 목을 조르고 폭행한 중학생들의 영상이 온라인에 공개되면서 소년법 논쟁은 다시 불거졌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폭행 혐의로 입건된 가해 학생들이 만13세로 형사처벌이 불가하다는 사실이 전해지며 촉법소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촉법소년은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10세 이상 14세 미만 소년으로 ‘형사미성년자’를 말한다. 이들은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상 처벌받지 않고 대신 소년법에 의해 보호처분을 받게 된다.

지난 1958년 7월 처음 제정·공포된 소년법은 반사회성이 있는 소년에 대해 환경 조정과 품행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 등의 조치를 하고 형사처분에 관한 특별조치를 행해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기 위해 제정됐다. 현행 소년법은 소년을 19세 미만인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청소년들의 흉악한 범죄가 사회적 논란이 될 때마다 소년법 폐지 또는 개정 필요성이 제기됐고 21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이 다수 발의됐다. 21대 국회에 발의돼 계류 중인 소년법 개정안은 총 6건이고, 이 가운데 처벌 강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은 3건이다.

지난해 7월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소년법 개정안은 살인, 상해, 과실치사, 강간, 준강간 등의 흉악 범죄의 경우 소년 범죄라 하더라도 검찰에 의무적으로 송치하도록 해 적정한 형사처벌을 받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법은 19세 미만의 소년이 범죄를 저지른 경우 형사처분이 아닌 감호위탁, 수강명령 등의 보호처분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어, 금고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범죄 사실이 발견되더라도 그 동기와 죄질이 형사처분을 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만 형사처분을 받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소년법 개정안은 현행 법 적용 상한 연령을 19세 미만에서 18세 미만으로 낮추고, 특정강력 범죄, 성폭력범죄 등을 범한 소년은 보호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이 골자다.

지난 2일 전용기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소년법 개정안은 형사미성년자 기준을 ‘10세 이상 14세 미만’에서 ‘10세 이상 12세 미만’으로 수정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또 특정강력범죄를 범한 소년은 보호사건 심리에서 제외하도록 보호처분 대상의 기준을 조정하고, 사형 및 무기징역에 관한 감형 조항도 삭제했다.

더불어민주당 양경숙‧전용기 의원과 국민의힘 윤영석 의원 등이 최근 소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그래픽=이현주 기자
더불어민주당 양경숙‧전용기 의원과 국민의힘 윤영석 의원 등이 최근 소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그래픽=이현주 기자

◇ 20대 국회선 14건 임기 만료 폐기 21대 국회서도 쟁점 법안 부상

앞서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촉법소년 연령 인하를 포함한 소년법 개정 또는 폐지에 관한 논의가 진행됐지만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40여건의 소년법 개정안 가운데 소년의 연령을 조절하거나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안은 모두 14건이었다. 그러나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국회에서 소년법 문제에 대해 쉽게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처벌 강화 주장과 처벌 강화만이 능사가 아니기 때문에 교화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기 때문이다.

최근 소년법 개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모두 소년법 문제가 합의점을 찾기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이번 21대 국회에서는 적극적인 논의 과정을 거쳐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영석 의원은 "청소년들의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찬반 의견을 고려해 양측의 주장을 아우르는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설명했다. 윤 의원은 “소년법 폐지 및 개정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기에 지금까지 국회에서도 쉽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며 “이 때문에 이번 소년법 개정안을 준비하면서 양측의 입장을 모두 아우르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이번 개정안은 살인과 상해 등의 흉악범죄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이고 흉악범죄들도 반드시 처벌이 강화되는 것이 아닌, 의무적으로 검찰에 송치만 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소년범도 검찰에 송치가 가능하다는 경각심을 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양경숙‧전용기 의원은 이제는 청소년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를 논의할 때가 됐다는 적극적인 입장이다.

양경숙 의원은 “법무부 등 관련 기관에서는 인격의 형성과정에 있는 소년에 대한 교화와 보호처분을 우선하는 것이 소년법의 취지인 만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며 “하지만 소년범죄가 갈수록 난폭하고 잔인해지고 있다는 것은 국민 모두가 동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과거 소년범죄가 철없던 시절 잠깐의 일탈로 인식되었다면, 오늘날에는 성인범죄와 동일 선상에서 인식되고 있다”면서 “21대 국회에서 소년범죄의 처분에 대한 의미 있는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 강력 범죄에 대한 단호한 대처로 범죄를 예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용기 의원은 “어려운 문제일수록 미뤄지는 경향이 있다”며 “법이 청소년들을 잘 교육시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하는데 처벌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 하는 점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막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고 해도 현행대로 유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봤다”며 “이제 소년 시기의 정신적, 육체적 성장속도가 가속화되고 있고 범죄 행위의 저연령화와 흉폭화가 병행되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국회에서 논의가 좀 강하게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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