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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이준익 감독, ‘자산어보’로 하고 싶은 이야기
2021. 02. 26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영화 ‘자산어보’(감독 이준익)으로 뭉친 (왼쪽부터) 배우 설경구‧변요한‧이준익 감독.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자산어보’(감독 이준익)으로 뭉친 (왼쪽부터) 배우 설경구‧변요한‧이준익 감독.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벗을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 이준익 감독이 조선시대의 학자 정약전과 어부 창대의 신분을 뛰어넘는 우정을 조명, 극장가에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연기 장인’ 설경구가 첫 사극에 도전, 힘을 더한다. 영화 ‘자산어보’다.

‘자산어보’는 흑산으로 유배된 후, 책보다 바다가 궁금해진 학자 정약전(설경구 분)과 바다를 벗어나 출셋길에 오르고 싶은 청년 어부 창대(변요한 분)가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벗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시대극의 대가’ 이준익 감독의 열네 번째 연출작이다.

이준익 감독은 조선 왕조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를 다룬 정통 사극 ‘사도’, 평생을 함께 할 친구이자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시인 윤동주와 송몽규 열사의 청년 시절을 담아낸 ‘동주’,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이념을 따랐던 독립투사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강렬한 삶을 그려낸 ‘박열’ 등을 통해 사람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담아내며 세심한 연출력을 선보여왔다.

특히 ‘사건’이 아닌 ‘사람’에 집중해 역사 속 인물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현시대까지 관통하는 가치를 찾아내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과 깊은 신뢰를 받아왔다. ‘자산어보’ 역시 그 시대에 몸부림치며 살아왔을 사람들의 흔적을 보여주고 싶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

‘자산어보’로 돌아온 이준익 감독.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자산어보’로 돌아온 이준익 감독.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지난 25일 진행된 ‘자산어보’ 온라인 제작보고회에서 이준익 감독은 “내가 보고 싶어서 찍은 영화”라며 “5년 전 동학이라는 학문에 관심 갖게 됐고, 왜 동학인지 따라가다 보니 서학, 천주학이 있더라. 정말 훌륭한 분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정약전이라는 인물에 꽂혔다. 개인의 근대성을 <자산어보>라는 책을 통해 영화로 담으면 좋을 것 같았다”고 영화의 시작을 밝혔다.

왜 정약전이었을까. 이준익 감독은 “보통 영화에서 시대의 인물을 그릴 땐 대부분 영웅, 위대한 분들을 주인공으로 한다”면서 “나 역시 그랬던 적이 있다. 그런데 반대로 유명하진 않지만 같은 시대를 버티고 이겨낸 사소한 개인을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와 그 주변을 그리다 보면 그 안에 내가 있고, 나의 마음이 담긴 사람이 보인다”며 “윤동주가 있었으면 그 못지않게 위대한 잘 모르는 누군가 있고, 박열이 있는가 하면 잘 모르는 후미코가 있다. 정약용이 있는가 하면, 그 옆에 정약전이 있고 정약전 옆에 창대가 있다. 가공된 영웅보다, 그 시대의 진정한 모습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이준익 감독은 ‘자산어보’에서 조선시대의 학자 정약전을 조명하고, 어류학서 <자산어보> 서문에 등장하는 창대라는 인물을 새롭게 발견함과 동시에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갈 예정이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정약전이 추구한 그 시대의 가치관에 관심을 가졌다”며 “유배를 가서도  그 가치관을 포기하지 않고 구현해내려는 과정 안에서 창대라는 어린 친구를 만나는데, 나이 차이뿐 아니라 신분의 차이, 역할의 차이가 컸다. 둘은 엄청난 간격을 메꾸고 친구가 된다. 추구하던 가치관을 끝까지 지켜내다 보니 친구가 된 거다. ‘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는 명대사 나오게 된 배경”이라고 말했다.

‘자산어보’는 색채를 덜어내고, 흑백으로 조선시대를 담아낸다. 무채색의 미학을 담은 수려한 영상미로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한 황홀감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전작 ‘동주’를 통해 흑백 미장센을 선보인 바 있는 이준익 감독은 “‘동주’와 ‘자산어보’는 정반대의 흑백”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감독은 “‘동주’는 일제강점기가 갖고 있는 암울한 공기를 담아 ‘백’보다는 ‘흑’이 더 차지하고 있었다면,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만난 새로운 세상, 자연이 있고 자연 속 하늘과 바다 그리고 아름다운 관계를 담아 ‘백’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을 연기하는 설경구.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을 연기하는 설경구.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

충무로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들의 만남도 기대를 모은다. 특히 매 작품 대체할 수 없는 연기력을 선보이는 설경구가 정약전 역을 맡아 연기 인생 처음으로 사극에 도전해 이목을 끈다.

설경구는 “첫 사극인데 이준익 감독과 해서 다행이었고, 흑백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 것도 좋았다”며 “한 번의 결정으로 여러 가지를 얻은 것 같은 느낌”이라고 소회를 전했다.

또 “처음에는 조금 떨어져서 시나리오를 봤는데, 두 번째는 마음을 넣어서 읽었더니 눈물이 핑 돌더라”면서 “이준익 감독에게 읽으면 읽을수록 와닿았고, 따뜻하면서도 아프고 여운이 있었다고 했더니 ‘그것이 이 영화의 맛’이라고 하더라. 강한 여운이 있을 거라 확신한다”고 작품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역사 속 인물을 연기하게 된 것에 대한 부담감도 털어놨다. 설경구는 “정약전이라는 선생의 이름을 배역의 이름으로 쓰기가 부담스러웠다”며 “내가 털끝만큼이라도 정약전 선생을 따라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유로운 사상을 가졌지만 실천이 안 됐던 인물이 유배로 떠난 섬에서 거친 민초들을 만나 가르침을 얻고 자기의 사상을 실천하게 된 거라고 생각했다”며 “이 이야기에 더 섞이고 튀지 않게 묻혀 가려고 노력했다”고 이야기했다.

이준익 감독은 설경구의 진정성 있는 열연에 감탄을 보냈다. 특히 “정약전 분장을 하고 나온 설경구를 보면서 선비 정신을 간직했던 나의 할아버지가 떠올랐다”며 “내게는 너무 아련했다. 정약전과 설경구, 나의 할아버지가 일치된 지점이 감동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설경구는 조선 선비 그 자체였다”며 “잘생겼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는데, 심지어 잘생기기까지 했더라”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자산어보’로 4년 만에 스크린 행보에 나선 변요한.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
​‘자산어보’로 4년 만에 스크린 행보에 나선 변요한.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

정약전과 서로의 지식을 나누며 가치관의 변화를 겪는 어부 창대는 변요한이 분한다. 영화 ‘하루’(2017) 이후 4년 만에 관객 앞에 서게 됐다. 변요한은 “전라도 인물이라 사투리를 구사해야 했고, 어부라서 그 시대에 맞게 고기를 낚는 법도 알아야 했다”며 “장치적으로 준비해야 할 게 많았는데 어느 순간 중요하지 않아지더라. 변요한이 아닌 창대의 시각으로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가 중요하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창대는 정약전과 달리, <자산어보> 서문에서의 언급 외에는 정보가 거의 없던 인물. 변요한은 인물의 전사를 세우고, 비워둔 부분을 채워나가며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완성해냈다는 후문이다.

이준익 감독은 변요한에 대해 “말로 꾸미지 않고 행동하는 배우”라며 “창대라는 인물은 기록이 거의 없다. 시나리오 상에서 만들어낸 거다. 시나리오에서도 반밖에 없었다. 변요한이 하나의 온전한 인간으로서 창대의 부족한 부분을 다 채웠다. 정말 고마웠다”고 칭찬했다. 설경구도 “변요한은 가진 게 많은 배우”라며 “동물적인 감각, 섬세함 그리고 따뜻함이 있다. 눈물이 곧 떨어질 것 같은 매력적이 눈도 있다. 무엇보다 사람이 좋다”고 보태 눈길을 끌었다.

두 배우 외에도,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기대를 더한다. 배우 이정은이 정약전을 살뜰히 챙기는 흑산도 여인 가거댁 역을 맡아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민도희가 창대의 소꿉친구 복례를 연기한다. 흑산도 주민 풍헌은 차순배가 분하고, 정약용의 수제자 이강회 역은 강기영이 맡았다. 여기에 동방우‧정진영‧김의성‧방은진‧류승룡‧조승연‧최원영‧조우진‧윤경호 등이 우정 출연으로 힘을 더해 기대감을 높인다. ‘자산어보’는 오는 3월 31일 개봉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