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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계류법안
[포괄적 차별금지법 갈등②] 찬성 측 ″법의 공백 메우는 법 필요″
2021. 03. 10 by 권신구 기자 sgkwon28@sisaweek.com
전문가들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극적인 효과를 가져오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사회 전반의 변화를 이끌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래픽=김상석 기자

시사위크=권신구 기자  지난 4일 고(故) 변희수 하사의 죽음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국회의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강하게 촉구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혐오와 차별로부터 보호받아 평등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국회가 적극적인 자세로 논의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사위크>가 만난 전문가들은 차별금지법이 ‘분명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곧바로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의 제정으로 달라지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존재할 것이란 낙관을 보였다.

◇ ‘상징적 효과’가 더 커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서 온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확실히 뭐가 달라지냐 하면 사실 그런 것은 없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벌칙조항을 넣을 경우)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묻는다면 감옥에 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 법안은 가장 수위가 약하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현행 차별금지법 역할을 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과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획기적인 차이가 없다는 게 홍 교수의 견해다. 물론 이행 강제금,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을 통해 강제력을 높였고 피해자 구제를 확대 했지만, 현행 인권위법으로도 대다수의 것들이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그렇다고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다. 홍 교수는 “상징적인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며 “일차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우리는 차별이 금지돼 있다고 선언하고, 소수자의 인권과 안전을 보호하는 국가라는 선언이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권위법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홍 교수는 “인권위법은 조직법이다. 인권위가 이런 일을 한다고 적어 놓음으로 간접적으로 차별이 금지된다고 정해진 것일 뿐, 선언이라 하기는 어렵다”며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우리가 확실히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는 점을 확고히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법’의 조혜인 변호사도 이에 공감했다. 그는 “외국에서도 법이 만들어진다고 드라마틱하게 변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많은 단체가 함께하고 있는 이유는 차별금지법이 평등의 원칙을 확인하고, 국가가 이를 실현할 책무가 있고, 그에 관한 기본적 정책을 이행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라며 “국가가 어떤 책무를 실현할 것인가, 차별이 발생했을 때 공적인 제도들이 차별의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들을 것인가 등의 기반이 만들어지는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이러한 토대가 만들어졌을 때 변화도 일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홍 교수는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난 후 장애인 관련 진정이 극적으로 늘어났다”며 “법이 없어도 진정할 수 있었지만, 상징적인 효과가 소수자들이 자기 권리를 옹호하는 것을 고무시킨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 변호사 또한 “기반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당장 소송을 제기하고 한다는 건 어렵겠지만, 잘 얘기할 수 있는 흐름을 만드는 기본 출발이 될 것”이라며 “아주 극적인 변화는 아니지만, 상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존재하지만, 전문가들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으로 입법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 봤다. /뉴시스

◇ 기존 법률 보완 역할

물론, 상징적인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현행법의 보완적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개별적으로 이뤄진 차별금지법의 공백을 메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현재 우리나라는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을 비롯해 ‘양성평등기본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연령 차별금지법’, ‘재한 외국인 처우 기본법’ 등 다양한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논쟁의 축을 담당하기도 한다.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조 변호사는 “한국에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여러 가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유가 몇 가지 안 되고 그나마 법도 고용영역에 한정돼 있다″며 ”법의 공백 상태가 있는 부분들을 다 포괄하는 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람의 정체성 자체가 복합적이기 때문에 현실에서의 차별도 하나의 사유가 아닌 여러 사유로 이뤄진다”며 “복합적인 차별을 다루기 위해선 포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개별적 차별이 발생할 때마다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 하는 것 자체가 경제적 측면에서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권위법과는 달리 차별의 사유를 더 구체화한 것도 현행법을 보완하는 측면 중 하나다. 현행 인권위법은 19가지 차별 사유를 담고 있지만,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23가지를 포함한다. 더 많은 차별을 담은 셈이다.

차별의 개념을 더 명확히 규정하기도 했다. 홍 교수는 “인권위법에는 간략하게 차별의 개념이 정의돼 있지만, 차별금지법에는 훨씬 자세하다”며 “아무래도 법이 집행되기 용이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