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스트맨’(감독 김나경)이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트리플픽쳐스
영화 ‘더스트맨’(감독 김나경)이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트리플픽쳐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먼지의 사전적 의미는 ‘가늘고 보드라운 티끌’이다. 흔히 하찮고 보잘것없는 존재를 두고 ‘먼지 같은 무엇’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존재라 할지라도 각자의 이야기가 있고,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의미는 달라진다. 영화 ‘더스트맨’(감독 김나경)은 먼지도 빛을 받으면 ‘반짝’인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노숙자 집단 속에서 살아가는 태산(우지현 분)은 굴다리에 벽화를 그리는 미대생 모아(심달기 분)를 만나 조금씩 삶의 활기를 찾게 된다. 태산은 모아를 만난 뒤 먼지 낀 거리의 자동차와 기물들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모아는 그런 태산을 보고 졸업 작품의 영감을 얻는다.

‘더스트맨’은 스스로 떠도는 삶을 선택한 태산이 먼지 위에 그림을 그리며 상처를 치유하고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단편영화 ‘지금 당장 보건증이 필요해!’(2014), ‘도깨비불’(2015), ‘내 차례’(2017), ‘대리시험’(2019) 등으로 국내외에서 호평을 이끌어냈던 김나경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더스트 아트라는 신선한 소재로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주는 ‘더스트맨’ . /트리플픽쳐스
더스트 아트라는 신선한 소재로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주는 ‘더스트맨’ . /트리플픽쳐스

새롭다. 지금껏 보지 못한 색다른 소재, 그동안 조명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렇다고 현실과 동떨어진,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누구나 가슴속에 상처 하나씩 품고 살 듯, 마음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싶은 이들이라면 깊이 공감할 수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더스트 아트라는 신선한 소재다. 더스트 아트는 먼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예술로, 국내에서는 아직 친숙하지 않은 분야다. 영화는 스마일 그림이나 망토를 두른 먼지맨 같은 작은 낙서부터 ‘올빼미’ ‘기도하는 손’ ‘모아의 숲’ 등 예술작품까지 다양한 더스트 아트를 선보이며 시선을 붙잡는다.

영화 속 더스트 아트는 단순히 하나의 예술 행위로만 그치지 않는다. 상처받은 이를 위로하기도 하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기도 한다. 차마 전하지 못한 마음을 전달해 주기도 한다. 켜켜이 쌓인 먼지 위 태산의 손끝에서 완성되는 그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유다.

‘더스트맨’에서 진정성 있는 열연을 보여준 우지현(왼쪽)과 심달기(오른쪽 위), 강길우 스틸컷. /트리플픽쳐스
‘더스트맨’에서 진정성 있는 열연을 보여준 우지현(왼쪽)과 심달기(오른쪽 위), 강길우 스틸컷. /트리플픽쳐스

다수의 독립영화를 통해 탄탄히 연기 내공을 쌓아온 배우 우지현‧심달기‧강길우(도준 역)는 진정성 있는 열연으로 ‘더스트맨’을 빛낸다. 먼저 태산으로 분한 우지현은 겉으로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인물의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면서도 세밀한 연기로 담아내 몰입을 높인다. 심달기는 자연스러운 연기로 생동감 있는 모아를 완성했고, 발달장애가 있는 도준을 연기한 강길우는 전작과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김나경 감독은 “먼지 위에 남겨져 있는 그림은 금방 지워지고, 없어져 버리겠지만 그래서 그 그림이 남아 있는 순간이 더 소중하고 가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더스트 아트는 ‘끝’이 있는 우리의 삶과 비슷한 모습이라 생각했고, 이를 통해 삶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러닝타임 92분, 4월 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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