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EXID 출신 배우 안희연(하니)이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감독 이환)로 관객 앞에 선다. /리틀빅픽처스
그룹 EXID 출신 배우 안희연(하니)이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감독 이환)로 관객 앞에 선다. /리틀빅픽처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이렇게 잘 해낼지 몰랐다. 무난히 제 몫은 할 거라 생각은 했지만, 그 이상의 존재감을 보여줄진 몰랐다. 첫 스크린 도전에서 아이돌 출신 연기자에 대한 ‘선입견’을 완전히 뒤집고, 배우로서 앞날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 배우 안희연을 두고 한 말이다.    

그룹 EXID 출신 배우 안희연(하니)은 오는 15일 개봉하는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감독 이환)로 관객 앞에 선다. ‘어른들은 몰라요’는 가정과 학교로부터 버림받은 10대 임산부 세진(이유미 분)이 가출 4년 차 동갑내기 친구 주영(안희연 분)과 함께 험난한 유산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

2018년 10대들의 리얼한 생존기를 그려낸 ‘박화영’ 이환 감독의 신작으로, 극 중 안희연은  세진의 유산 프로젝트를 돕는 가출 4년 차 동갑내기 주영 역을 맡아 데뷔 후 첫 스크린에 도전했다.

안희연은 2012년 아이돌 그룹 EXID로 데뷔한 뒤, 지난해 공개된 웹드라마 ‘엑스엑스(XX)’를 통해 ‘배우 안희연’으로 대중 앞에 섰다. 하지만 배우로서 그가 처음 연기를 경험한 작품은 ‘어른들은 몰라요’다. ‘엑스엑스’보다 앞서 2019년 초 촬영을 진행했고, 2년 만에 개봉을 하게 됐기 때문.

생애 첫 연기였던 ‘어른들은 몰라요’에서 안희연은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배우로서 가능성을 제대로 뽐냈다. 올해로 서른 살이 된 그는 지금도 어디선가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을 10대 청소년의 얼굴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흡연과 거친 욕설은 물론, 폭발하는 감정 연기까지 그동안 본 적 없는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며 성공적인 스크린 데뷔전을 치렀다.

배우로서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안희연. /리틀빅픽처스
배우로서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안희연. /리틀빅픽처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안희연은 “첫 연기 경험을 ‘어른들은 몰라요’를 통해 하게 된 건 큰 행운이자 축복”이라며 작품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배우, 그리고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각오를 밝혀 이목을 끌었다.   

-첫 영화에서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작품을 택했다.
“전 소속사와 계약이 끝나고 다음 단계를 생각하는데, 뭔가 결정할 수 없더라. 오랜 시간 활동하면서 무언가를 잃었던 것 같았다. 내가 내게 ‘뭐 하고 싶어? 뭐 할 때 제일 행복해?’라고 질문을 해도 대답을 해주지 않더라. 나 스스로 삐쳐있었던 것 같다. 너무 오랫동안 달리기만 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오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고, 계약이 끝나자마자 편도로 티켓을 끊고 여행을 갔다. 그 여행지에서 이환 감독님에게 연락을 받았다. 만약 내가 배우가 될 거라는 마음을 먹고 나서 제안을 받았다면 고민을 더 많이 했을 것 같다. 더 많은 걸 따졌을 것이고, 더 많은 것들이 고민됐을 거다. 하지만 그때는 미래에 대해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었고, 정할 수도 없었다. 이환 감독님의 제안이 날 두근거리게 했고, 그 두근거림이 충분히 동기가 될 수 있는 상태였다.”

-이환 감독이 뭐라고 제안을 했나. 
“시나리오 읽어봐 줄 수 있냐고 SNS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냈다.(웃음) (이환 감독의 전작) ‘박화영’을 보기 전이었는데, 관심 있던 영화였다. 그런데 그 작품을 쓴 감독님이라 ‘대박 박화영?’ 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되게 용감하다고 생각했고, 그 용감함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런데 당시 내가 연기 경험이 아예 없었고, 회사도 없어서 혼자 출연 여부를 결정하기엔 무리가 있겠다 싶었다. 회사 찾고 상의 후에 말하겠다고 기다려달라고 하기에는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거절했는데, 한국에 오면 직접 만나자고 해서 만났다. (이환 감독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느꼈고, 대화가 잘 통했다. 열려있고, 개방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내 안에 무언가를 끄집어낼 수 있는 기대감이 생겼다. 함께 작업해보고 싶더라. 그래서 결정하게 됐다.”  

-배우 안희연의 필모그래피에 굉장히 독특하면서도 특별한 경험이 됐을 것 같은데.
“연기라는 걸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난 건데, 이환 감독의 워크숍 시스템을 경험한 게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워크숍을 통해 많이 배웠다. 처음엔 그냥 했다. 맨땅에 헤딩하듯 깨질 걸 알고 그냥 부딪혔다. 처음엔 이게 뭐지? 어떡하지? 하다가 나중엔 감독님에게 ‘주영이라면 이런 마음으로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해보고 싶어, 저렇게 해보고 싶어’ 의견을 나누고 이야기하게 됐다. 그런 모든 과정을 통해 연기를 만나게 됐다. 캐릭터도 그렇고 극도 독특했지만, 그렇게 처음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게 축복이고 행운이지 않았나 싶다.”

‘어른들은 몰라요’에서 연기 호흡을 맞춘 이유미(왼쪽)과 안희연. /리틀빅픽처스 ​
‘어른들은 몰라요’에서 연기 호흡을 맞춘 이유미(왼쪽)과 안희연. /리틀빅픽처스 ​

-그 과정이 다음 작품을 하는 데 있어서도 영향을 미쳤겠다.
“어떤 현장에 가도 어떤 작품, 캐릭터를 만나도 ‘어른들은 몰라요’ 워크숍이 생각 안 날 수 없더라. 그리고 특히 (이)유미한테 많이 배웠다. 이 영화 이후에 여러 작품을 했는데, 그 현장에서 ‘어른들은 몰라요’를 통해 경험한 것과 유미에게 배운 것들을 따라 하고 있더라. 모든 워크숍을 함께해 줬고, 없을 땐 본인이 만든 반지를 대신 놓고 가기도 했다. 그 반지를 보면서 감정이 절로 올라왔다. 정말 좋은 배우다. 좋은 배우에게 좋은 걸 배울 수 있는 현장이었다는 게 진짜 감사하다. 이유미는 배우로서도 인간적으로도 정말 멋있는 친구다.”

-주영이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납득 안 되는 것들이 되게 많았다.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유대감이 생기지 내가 어른이라 이해가 안 되나 싶더라. 특히 세진과의 관계에서 주영이 보여주는 모습들이 이미 본인만의 생존방식이 있을 텐데 왜 이렇게까지 세진의 일에 열심인지 납득이 안 됐다. 그런데 감독님이 주영의 전사를 워드 파일로 정리해 주셨다. 주영은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학교에 갔더니 교실에 피가 낭자하고 친구들의 태도가 갑자기 냉랭해진 거다.

알고 보니 함께 다니던 단짝 셋이 있었는데, 주영 빼고 둘이 칼부림이 난거다. 그 관계 속에서 오해가 생기게 되고 주영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가 된다. 어떤 프레임이 씌워진 상황에서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어른들의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외면당한 경험이 있어 도망쳐있는 아이였던 거다. 그 전사를 토대로 워크숍을 하면서 내가 실제 경험한 것처럼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줬다. 그러고 나서 세진을 보니 그때 외면당했던 주영으로 보이고, 그 친구들의 모습도 보이고, 친구들로부터 도망쳐있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컸는데 그 죄책감이 반영이 되고 그렇더라. 그러면서 주영의 행동들에 당위가 생기더라.”

-요즘 10대 청소년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고민한 지점도 있는지.
“이환 감독님이 레퍼런스가 될 만한 영화나 다큐멘터리, 영상 등을 공유해 줘서 많이 봤고, 거리를 많이 다녔다. 술집도 가서 어떤 분위기인지 어떤 느낌이 날지 보고 고민하고 그랬다. 대사 자체 10대 어투로 돼있어서 시나리오가 더 어려웠던 것 같다. 특히 세진의 대사가 유독 10대스러워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유미가) 그걸 다 해내는 걸 보면서 나도 더 자신감 있게 할 수 있겠다 싶었다. 17세부터 연습생 생활을 했지만 학교엔 꾸준히 나갔다. 그래서 학교의 분위기나 느낌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박화영’을 보면서 아팠고, 놀랐다. 이 영화를 보면서도 놀랐고 아팠다. 반성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었다. 내가 나의 밖을 잘 못 살피고 살았던 게 아닌가 싶었다. 이환 감독님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작업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그 말에 공감을 많이 했다.”

‘어른들은 몰라요’에서 파격 변신을 시도한 안희연. /리틀빅픽처스
‘어른들은 몰라요’에서 파격 변신을 시도한 안희연. /리틀빅픽처스

-주영이 약에 취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장면도 인상 깊었는데, 쉽지 않았겠더라.
“대부분 감정적인 것들에 대해 왜 그랬을까 파고들었다면, 그 장면은 테크닉적인 부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워크숍을 정말 많이 진행하면서, 머리를 계속 쓸어 넘겨도 보고 담배를 계속 피우기도 하고 그걸 동시에 해보기도 하면서 이상하게 보이고자 했다. 눈은 어디까지 봐야 하고 어느 정도 초점이 흐려져야 하는지뿐 아니라 전사 이야기도 하고 감정적인 부분도 있어서 고민을 정말 많이 했던 신이다.”

-주영의 전사가 유일하게 드러나는 장면인데, 약에 취한 상태라 대사가 잘 안 들리기도 했다. 정도에 대한 고민도 했을 것 같은데.
“정말 많이 고민했다. 또박또박 말할 수 없는 상태고, 그렇게 말하면 분위기 자체도 일치하지 않으니까…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하는지, 분위기를 내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어떤 것이 맞는지 어려웠다. 고민하다가 무드를 맞추는 것을 택했다. 그래서 후시녹음도 안 했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데, 전달하는 것까지 살리는 것은 욕심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영이 세진의 배를 돌로 내려찍는 장면도 어려웠을 것 같은데.
“정말 제일 찍기 힘들었던 신이다. 내가 무너져야 했다. 내가 내 친구를 돌로 내리쳐야 하는데, 우리 모두는 그런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살잖나. 나를 존중할 순 있으려고 그렇게까지 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살아왔기 때문에, 그 선을 넘어가는 행위를 해야 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그 장면 역시 워크숍을 많이 했다. 도저히 못 내려치겠어서 고기를 사 와서 그 덩어리를 쳐보기도 했다. 얼이 빠지더라. 촉감이 너무 끔찍했다. 내 모든 신경이 손에만 가있었다. 그런데 막상 해내고 났을 땐 해방감을 준 신이기도 했다. 28년 동안 내가 세워놓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성과 틀을 부순 거잖나. 부서지면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 그런 계기가 된 작품이었다.”

안희연이 배우로서 각오를 밝혔다. /리틀빅픽처스 ​
안희연이 배우로서 각오를 밝혔다. /리틀빅픽처스 ​

-감정 소모가 워낙 커서 촬영 기간뿐 아니라, 끝난 후에도 후유증이 컸을 것 같다.
“같이 사는 우리 엄마가 힘들어했다.(웃음) 엄마에게 죄송한 기간이었다. ‘딸이 변했어’ 하시더라. 하하. 부산국제영화제에 엄마가 왔는데 이환 감독님에게 ‘그때 많이 힘들었다’고 하시더라. 난 잘 몰랐는데 사람들이랑 말도 잘 안 섞고 엄마한테 신경질도 내고 그랬나 보다. 나중에 물어보니까 되게 날서있었다고 하더라. 엄마가 내 눈치를 엄청 봤다고 하시더라. 정말 죄송했다. 연기가 처음이라서 그랬나 보다 하면서 죄송하다고 했다.(웃음) 이 영화 후에 ‘엑스엑스’를 찍었는데, 주영 캐릭터가 너무 붙어있어서 걱정이 좀 됐다.

그럼에도 ‘엑스엑스’를 꼭 해야했던 이유는 ‘어른들은 몰라요’에서 경험이 너무 좋았는데, 의미 있는 행위를 하는 게 좋았던 건지 아니면 연기라는 게 좋았던 건지 확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정반대 환경에 나를 둬봐야겠다 생각했고, 환경도 다르고 타깃층도 다른 웹 콘텐츠를 택했다. 이환 감독님에게 내가 다른 작품을 소화하는 데 주영이 방해가 되면 어떡하지 상담도 했었는데, 다른 캐릭터를 통해 멀어지는 것도 방법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도전하게 됐는데, 나와 잘 맞는 방법이었다. ‘엑스엑스’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또 해봐야지 해서 또 했고 그렇게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것 같다.”

-올해 서른이 됐다. 20대는 어땠고, 30대는 어떻게 쌓아가고 싶은지.  
“20대 안희연은 목표 지향적이고 미래지향적이었고 계획적인 사람이었다. 60세까지 계획이 있고, 신년 단위의 계획이 있고 거기에 맞는 1년, 월간 계획이 있고 그날 해야 할 일, 지금 해야 할 게 항상 있는 사람이었다. ‘쉼’이라는 것과 ‘여유’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나태한 거라고 생각했다. 굉장한 경주마였던 거다. 취미 중 하나가 러닝인데, 친구가 호흡에 집중해보라고 하더라. 목표 지점만을 향해서 뛰는 사람이었는데, 그 순간순간 호흡에 집중해서 달려갔더니 어느새 도착해있더라. 그 경험이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사는 사람이고 싶고 그렇게 살고 있다. 앞으로 큰 변화가 있기 전까지 그렇게 살지 않을까 싶다.”

-아이돌 멤버 하니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배우 안희연은 대중에게 어떤 모습이었으면 하나.
“직업적인 책임감이 있는 것 같다. 영향력이 있잖나. 그걸 좋은데 쓰고 싶다. 사람들이 내 연기를 보고 내가 나오는 작품을 보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고 희망을 가져갔으면 좋겠다. 그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고 그런 배우, 그리고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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